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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나물 May 24. 2021

너의 우울은 뭐야?

친구 K가 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나 일년 쯤 뒤 함께 동고동락하며 친해지기 시작했고, K가 우리 회사 근처로 이직을 하고 서로 비슷한 고민을 나누며 비슷한 삶의 단계를 밟아가는 과정에서 점점 더 찐한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소수의 인간관계를 갖고 있는 나에게 K는 손에 꼽는 절친이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스스로가 너무나 평범하다고 생각해서 평범하지 않으려 주기적으로 미친짓을 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 90년대생의 특징인건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고 싶지 않으면서도 남들의 눈에 너무 튀는 이상한 사람이고 싶지도 않아 한다. 왜 ‘90년대생’으로 좁히는건가 묻는다면(정확히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그저 성실하고 모범적인 사람으로 자라나라는 부모 세대의 가르침과, 미드와 유튜브가 가르쳐준 ‘진짜 나’를 찾아 떠나는 것이 쿨하고 힙한 것이라는 의식이 짬뽕된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K의 저울은 ‘범인이고 싶지 않은’ 쪽으로 추가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는 것 같긴 하다.


처음 그녀를 알게 되었을 ,  눈에는 그녀가 굉장히 이성적이고 냉철해보여 나와는  반대의 부류인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녀도 나처럼 ‘남들은 똑부러진다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헐렁헐렁하고 말랑말랑하기 그지없는 타입이었다. 심지어 MBTI 나와 똑같다는  알고 나는 그녀를  운명의 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느날 그녀가 나에게 문보영 작가의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선물했다.  속에서 작가는 본인과 본인의 절친의 관계를 ‘서로가 서로의 복선이라 말했고,  표현은 나와 K 관계를 정의하는  마음속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K가 만나던 남자가 있었다. 그녀가 그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진 직후였고, 그녀가 자신의 남자친구에 대해 탐구하며 알아가고 있던 연애 초중반 시기에 나는 그야말로 극심한 이별 후유증과 우울을 앓고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이전 연애의 단상들을 꺼내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녀 역시 본인의 연애에서 느끼는 문제점들을 나에게 자주 털어놓곤 했다.


어느 날은 ‘우울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우울할 때 하는 생각들(그 때는 매일, 매순간이 우울했으므로 일상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이를 듣던 K가 소리쳤다.


“어, 내 남자친구가 했던 말이랑 진짜 똑같아.”


K와 K의 남자친구, 그리고 나. 세명의 MBTI는 모두 같았다. 그런데 K가 이해할 수 없는 남자친구의 감정선의 일부를 내가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몇 번의 대화에서 그녀의 남자친구와 내가 똑같은 말, 즉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스스로의 성격을 싫어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야, 나는 걔랑 사겼으면 큰일났겠다. 나랑 똑같은 성격이라니. 서로 힘들어서 죽을듯.”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나는 디폴트 감성이 우울이야.” 그 당시 내가 자주 했던 말이다. 지금도 부정할 수는 없다. 특히 그 때는 이별 이후 미련과 상처가 뒤섞여 틈만 나면 우울에 빠지기 딱 좋은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의 우울이 사색적이라면 그 때의 우울은 꽤나 자기파괴적이었다.


K와의 대화를 통해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우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그 당시 나의 우울은 스스로를 좀먹는 형태였으며, 한 단어로 표현하면 ‘무기력’이었다. 자취방에서 옆으로 누워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유튜브나 스트리밍 서비스만 주구장창 보곤 했었다. 배가 고파지면 음식을 시켜서 먹고 곧바로 다시 누워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영상매체를 마주봤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 가끔 있는 약속 외에는 언제나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K의 우울은 나와 정반대 양상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그것을 ‘권태’라고 불렀다. 그녀는 우울해지면 머리를 자르고 미친듯이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섰다. 새로운 곳을 가고, 새로운 남자를 만났다.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난 뒤, 우리는 그녀의 권태감과 그 감정이 불러오는 행위의 기저 감정을 ‘외로움’으로 판단했다. 외로움이 우울을 불러오고, 그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찾아나섰던 것 같다.)


듣자하니 K의 남자친구는 나와 같은 무기력 유형이었다. 나처럼 혼자 산 세월이 길었던 그는, 우울이 찾아옴을 직감하면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면서 미친듯이 웃곤 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의 기분이 땅끝으로 떨어지지 않게 컨트롤하면서,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 무기력이 자신을 휘감지 않도록 노력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우울한 그 남자는 더이상 K의 남자친구가 아니게 되었고, 내 우울의 양상도 조금 변했다.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나는 자주 우울감을 느낀다. 다만 그 때의 나는 정말 ‘우울증’에 가까운 우울을 겪고 있었고 지금은 가끔 마음이 저릴 뿐인 평범한 ‘우울감’이다. 가만히 누워있기보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요리든 청소든 일기쓰기든, 무언가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 혹은 의식적으로라도 밖을 산책하는 날들이 그렇지 않은 날과 비슷한 비중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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