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로부터의 독립
이번 주 토요일에 내가 사는 동네로 올 테니 만나서 얘기하자던 대전 아재에게, 큰 용기를 내어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다. 과하게 말하면, 이건 아버지에게 맞서는 일이기도 했다. 어쩐지 그 사람이 밥을 사주고 뭐라도 해줄 때, 마음이 불편했다. 댓가가 있는 느낌. 정확했다. 그래서 철저히 계산했다. 만날 때마다 공짜 밥을 얻어먹지 않으려고, 쿠키든 뭐든 들고 나갔다. 그렇게 공짜가 아니게 만들었다.
ChatGPT에게 도움을 청해, 간결하고도 단호한 메시지를 보냈고, 그 뒤로 전화가 올까 봐 휴대폰도 꺼놨다. 그만큼 공포가 심했다. 이 사람에 대한, 그리고 아버지를 거절하는 것에 대한 공포. 하지만 결론은 해냈다! 내가, 해냈다.
웃긴 건, 휴대폰을 다시 켰더니 아빠에게 매너콜이 와 있는 거다. 친구들이랑 장가계로 여행 가기 위해 공항에서 전화를 하신 거였음.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우연인지.
소개팅남을 통해 아버지를 투사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무서웠던 거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거절을 보내고 나서 아빠와 통화하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실제계의 아버지는 나에게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무의식과 상상 속에서의 아버지가 훨씬 강력하고, 훨씬 두렵다. 막상 부딪히면 아무것도 아닌데. 소개팅남도, "말씀 이해했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하고는 매너 있게 답장을 보내왔다. 결국 내 머릿속에서 난리였던 거다.
이번 사건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느끼는 공포는 실재가 아니라는 것. 상상이 만든 허상이라는 것.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내가 떨고 있었구나. 직접 부딪혀보기 전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상상과 실재는 다르다는 것. 이건 정말 귀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는 안전에 대한 불안도가 매우 높은 사람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 불안의 정체는 '나는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이었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일 년에 한두 번씩 만취한 아버지가 물건을 던지며 화를 냈고, 어머니는 나를 보호하기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한 방패로 삼았다. 그렇게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자랐다. 당연히 안전하지 않은 감각이 몸에 남았겠지.
쌍문동으로 이사 와 혼자 살게 되면서, 그런 불안은 더 구체적으로 올라왔다. 샷시가 떨어지고, 이상한 택배가 오고, 여러 타인들이 내 집에 오게 될 때, 나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긴장했다. 어린 희연이가 겹쳐 올라왔다. 애썼다, 나. 혼자서 잘 버텼다. 잘 해결했고, 최근 문이 떨어졌을 때도 내가 직접 다 처리했다. 이런 내가 밤에 잠드는 게 힘들었던 건 당연한 일일지도. 잠은 긴장을 풀어야 오는데, 나는 늘 경계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나는 나를 달래주고 있다. "나는 안전하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지키고 있다. 나는 나에게로 돌아오는 중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리고 이번의 소개팅사태를 겪으며, 나는 연애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여자로 15년을 살아온 나는, 어떤 관계의 타이틀을 떠안는 것이 끔찍하다. 딸, 며느리, 아내... 그런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내가 싫다. 연애도 결국 그 연장선에 있다. 지금은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겁도 나고, 지겹고, 거부감이 든다.
이혼으로 생긴 여백은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공백으로, 구멍으로.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아프다. 오늘도 아프다.
그래서 포기했다. 섹스를..... 아직 젊고, 한때 활발했던 몸은 요동치지만, 아무리 응답하려 해도 안 되더라. 연애를 포기하면 섹스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순 없으니까. 움켜쥐고 있으면 오히려 무거워진다. 그래서 나는 인정하고, 포기하기로 했다. 내가 원한다고 다 이뤄질 수는 없다는 걸.
기대도 지우는 중이다. 누굴 만나서 스킨십을 하고, 애정을 나눌 거란 기대도. 당분간은 드라이하게 살아야겠다. 일하고, 폴 타고, 들뢰즈 공부하고, 프랑스어 강의 듣고, 세미나 가고, 친구들 만나면서. 그렇게 수절하는 삶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ㅋㅋㅋ
내 몫인 것은 내가 안고 간다. 전남편과 헤어져 아픈 것, 제일 친한 친구를 잃은 것, 이혼했다는 것, 불안이 높은 것,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 이것이 지금의 나다. 이 중 내 몫인 것은 내가 잘 안고 가기로 했다. 나를 키워야 하니까. 내 것은 내가 안고 가야지. 그렇게 오늘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