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약속도, 어떤 일정도 없는 평일 저녁이다. 그동안은 매일 걸려오는 전화, 누구의 연락, 카톡 답장들로 어수선했다. 감정도 휘몰아쳐서 집에 있어도 노래나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있었다. 그 빈공간을 어떻게든 뭘로 채워놓으려고 했달까.
그런데 오늘밤은 처음으로, 그 모든 소음과 불안에서 오는 연락들에서 떨어진 기분이다. 심지어 휴대폰도 꺼놨다. 그러자 많은 것들이 보인다.
가장 먼저, 전남편과 헤어진 일로 울면서도 소개팅을 하고 다녔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 시간들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나에게 얼마나 큰 자극이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몸은 쾌락으로 반응했을지 몰라도, 나는 슬픔과 긴장 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감정의 소용돌이에 나를 집어넣고 있었던 거다. 쌍문에서 용인, 대전까지 지역을 옮겨다니며 오만 난리를 쳤다. 그렇게 울음과 설렘이 엉켜있던 시간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다. 그 모든 격렬한 순간이 필요했다고. 겪었기에, 시도했기에 오늘의 이 고요함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그리고 나는, 내가 여리여리한 몸과는 다르게 꽤 강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유복한 집 외동딸로 태어났어도, 나는 그걸 다 버릴 만큼 '나로 살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내 삶엔 너만 있으면 돼'라고 말하는 남자이자 베프와 결혼해서 살고 있다가도, 그 사람이 내 성장욕구나 독립성을 방해하는 신호가 보이면 떠날 줄 아는 사람이다. 실제로 나는 떠났다. 아픔과 고통도 감수하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지만.)
지금은 내가 나로 살고자 하는 것이 가족을 비롯해 전남편까지 힘들게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이지만, 그것은 나중의 문제로 남겨두기로 했다. 일단은 내가 나로 바로 서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나를 더 키운 뒤에야 엄마, 아빠를 품을 수 있다면, 부디 그런 날이 오기를.
중요한 건, 이런 선택들이 결코 능동적으로 "나 이렇게 살 거야!"라고 하며 이뤄진 건 아니라는 거다. 수동적으로 사건에 사건이 겹치며 떠밀려 온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그 사건들 속에서 나는 타협하지 않았다. '나로 사는 것'이 어떤 형태인지 명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그때그때마다 나를 위해 옳다고 느끼는 선택을 해왔다. 수동성 속에서 능동성을 발휘해온 셈이다. 이런 지점에서, 삶은 어쩌면 필연적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나를 위해 옳은 선택을 할 것이다. 나는 나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고, '나로 사는 것'에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책임도 온전히 내가 지고 갈 것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 멈추자, 내가 보인다. 그런 수요일 밤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