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기 반장 Jul 15. 2024

|강연 시작| 구독자 100만 명↑ 유튜브 출연


어릴 때는 분명 "꿈을 크게 꾸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크면서는 "꿈을 빨리 깨라"는 말에 더 익숙해졌다. 소명에 이끌려 허겁지겁 글쓰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책 두 권을 출간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꿈은 확실히 크게 꾸어야 하나보다. 2022년 만다라트 계획표에 버킷리스트인 '100만 구독자 유튜브 출연'을 적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버킷리스트를 적었지만, 거의 이뤄진 것들이 없었다. 꿈을 빨리 깨라는 뜻인가.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는 어느 날 신이 된 인간이 유토피아를 꿈꾸며 모든 사람의 기도 내용을 들어주었다가 오히려 세상이 무질서와 혼돈에 빠진 디스토피아가 되는 것을 목격한다. 버킷리스트도 적는 족족 이뤄진다면 분명 아름답기만 한 인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날, 두 번째 책 <서른, 진짜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의 출판사 더퀘스트 편집자에게 연락이 왔다. 


"작가님, 구독자 150만 명(2022년 당시) 유튜브 채널 '스터디언'에 책 홍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홍보팀에서 애를 썼더니 스터디언 쪽에서 연말이니까 새해를 준비하는 30대에게 좋은 자극이 될만한 책이라고 좋아했대요. 출연 가능하시겠어요?"


연초에 꿈을 꾸며 만다라트 계획표를 썼고 연말이 다가오며 꿈을 깨는 중이었는데 꿈같은 소식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당연히 출연하겠다고 답했다.


녹화 일정이 급하게 잡히는 바람에 녹화일 2~3일 전에 사전 질문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파일을 열어본 나는 그만 뜨악하고 말았다. 5부로 구성된 질문이 무려 40개에 육박했다. 도대체 녹화 시간을 얼마나 잡길래 이럴까 궁금해지면서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슬슬 겁이 났다. 역시 1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은 괜히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구나!


시간이 부족했지만, 성심성의껏 답안지를 작성해 보고 카페에서 혼자 모노드라마를 찍듯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했다. 드디어 녹화 당일, 긴장된 마음으로 촬영장을 찾았다. 남자 PD가 나를 맞이해 주었는데 편안한 인상과 부드러운 말투로 얼어붙은 나의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었다. 지금까지 소소하게 여러 유튜브에 출연했지만, 이때 만난 PD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걷기만 해도, 말만 해도 땀이 나는 체질인지라 걱정이 많이 됐지만, 시간이 지나며 열였던 땀구멍은 점점 닫히고 입구멍은 점점 열리며 준비했던 답변을 열심히 말했다. PD는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너무 흥미로워서 더 들어보고 싶은데요."라면서 사전 질문에 없던 질문을 계속 만들어냈다. 질문도 그렇게 기분 좋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게 1시간, 2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3시간 가까이 되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PD와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고 뿌듯한 마음으로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편집된 영상이 언제 올라올지 기대하며 며칠을 기다렸다. 드디어 PD에게 1편이 업로드되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1편? 그럼 2편, 3편도 있다는 말이네? 대박이다!'라고 생각하며 부리나케 유튜브를 켰다.


그런데 이상하다? 1편 영상의 길이는 9분 남짓이었다. '그래, 2편은 더 길겠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편집된 영상을 시청했다. 촬영을 앞두고 급하게 다이어트를 한다고 했는데 광어처럼 넓적하게 나오는 내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눈은 또 왜 이리 작은 거야? 시선을 카메라 렌즈에 뒀어야 하는데 PD를 보며 이야기하느라 가뜩이나 작은 눈이 더 작게 보였다. 우와, 진짜 연예인은 실제로 보면 얼마나 잘생겼다는 말이야? 내 얼굴과 어색한 시선처리, 소심한 손동작을 보며 현타가 왔다.        


며칠 뒤 2편이 업로드되었다. 이번에는 16분 남짓. 1편보다는 훨씬 더 길었다. 3시간 촬영하고 1, 2편 합쳐 25분짜리 영상이라...  그래, 3편도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2편을 시청했다. 1편을 볼 때 외형적인 모습에만 잔뜩 관심이 쏠렸었다면, 2편을 볼 때는 내용에 집중해 모니터 했다. 아, 저렇게 말하니까 임팩트가 없구나, 이 질문에는 이런 답변을 했어야 했는데 아쉽다, 등등 나도 모르게 탄식이 섞여 나왔다.


그제야 PD가 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졌는지 알 수 있었다. 나한테 궁금했던 게 아니라 방송 분량, 즉 '유튜브각'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예능에서 왜 연예인들이 '방송 분량'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이고,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순진하게 PD와 스무고개를 하고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PD는 내가 그럴싸한 문장, 신선한 표현을 사용할 때 눈이 커지며 입꼬리가 올라갔던 모습이 떠올랐다.


생리를 알고 갔다면 3시간이 아니라 1시간 만에 촬영을 마칠 수도 있었겠지만, 이것도 경험해 봐야 깨달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일할 때 그토록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중요하게 생각했건만, 정작 유튜브 촬영 때 나는 '내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빠져있었다. 역시나 3편은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도 만다라트 계획표에 적었던 꿈이 이뤄진 게 어딘가. 


소명을 찾으며 그 소명에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책도 쓰고 유튜브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불안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설레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나는 다시 봐도 이불킥하며 킥킥거리게 되는 영상을 남겼지만, 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내 삶이 기대된다.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끝)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이전 22화 평생 운동을 꿈꾸며 30대 후반에 시작한 검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