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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Jul 08. 2024

평생 운동을 꿈꾸며 30대 후반에 시작한 검도


담임 목사님의 권유로 서른 후반에 뒤늦게 검도를 시작했다. 검도는 축구에 비해 부상 위험이 낮고 평생 지속 가능한 운동이다. 게다가 심신을 수련하는 '도'이기에 건강한 삶의 균형을 유지하게 해 준다. 무엇보다 검도는 남녀노소 가능한 가족 운동이라는 점이 가장 끌렸다. 


피구왕 통키에게도 훌륭한 피구 선수 아버지가 있었고 손흥민에게도 대단한 축구선수 아버지가 있지 않은가. 내가 무슨 검도 선수가 될 건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과 함께 심신을 교류할 수 있는 매개체로 이만한 운동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020년 겨울, 검도를 시작했다.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은 검도장에 신규 회원은 나 혼자였고 새벽반에 운동하는 사람도 점점 줄더니 결국 나 혼자였다. 처음 한 달은 이렇게 진도가 빨리 나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관장님의 1:1 지도를 받았다. 그러나 관장님은 어려워진 검도관 운영을 위해 밤새 쿠팡 택배 알바를 뛰었고, 내가 운동하러 갈 때면 관장님은 사무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코를 골고 있었다. 


혼자 운동하면서 난로를 켜는 것이 미안해 얼음장같이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지압판 위를 걷듯 따끔거리는 발바닥을 달래 가며 홀로 기본 동작을 연습했다. 검도는 왜 맨발로 하는 운동인지 화가 나기도 했다. 샤워실 수도 시설도 얼어서 씻지 못하는 날이 다반사였다. 


얼음장 위에 서서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지 거울 속의 나에게 반문했다. 고독하게 다섯 달을 보내는 동안 관장님은 더욱 택배에 매달렸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라도 힘이 되어드리고 싶어 버텼지만 점점 이건 아니라는 각이 들었다. 초심자가 첫 달을 제외하고 네 달 동안 홀로 방치되어 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었다.


고심 끝에 검도를 권유한 담임 목사님과 상의를 했고 집에서는 멀더라도 목사님이 수련하고 있는 검도관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났다.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면서 관장님과 시간 약속을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발걸음을 검도관으로 옮겼다. 역시나 관장님은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있었다. 


흔들어 깨워도 깊이 잠들어 일어나지 않았다. 그 추운 날들을 밤낮이 바뀐 채 밖에서 노동을 하며 보냈으니 몸이 성할 리 없었다. 점점 더 심해지는 관장님의 코골이를 들으며 그 옆에서 나는 편지를 썼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고 떠나게 되어 죄송하다고, 항상 건강하길 바라며 속히 일상이 회복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맨발로 얼음장을 견뎌내자 찾아온 따스한 봄날에 새로운 검도관에서 다시 검도를 시작했다. 이전 검도관에서 방치된 몇 달 동안 나도 모르게 타격할 때 안 좋은 습관이 들어버렸다. 마침 새 검도관에 새로 부임한 여사범님의 꼼꼼한 지도 덕분에 나는 처음부터 다시 배워나갈 수 있었다. 


새 검도관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검우들의 열정과 끈끈한 정이 그동안 얼어붙었던 내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었다. 새 검도관의 환경은 이전보다 더 열악했다. 지하에 위치해 습하고 냄새가 났으며 하수도가 역류해 바닥이 젖기도 했다. 하지만 겨우내 고독하게 얼음장 위에서 나도 모르게 단련되었던 것일까. 이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매번 반복되는 지루한 기본기 훈련, 계속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실력에 회의감을 느낄 때도 많았다. 부모의 원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벨 것도 아닌데 이 힘든 운동을 왜 하고 있는지 현타가 올 때도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에 핑곗거리까지 더해지니 운동을 할 이유가 하나둘씩 사라졌다.


"무조건 초단은 꼭 따봐. 그래야 나중에 혹시 그만두더라도 후회를 안 할 거야. 나는 검도 단을 못 따고 그만둔 게 계속 후회로 남더라고." 


검도를 하다가 지금은 마라톤으로 전향한 멘토가 내 멘탈을 잡아주었다. 검도를 시작한 지 만 2년. 2022년 초에 만다라트 계획표에 적었던 '마흔 전에 검도 유단자 되기'라는 목표가 이뤄졌다. 이제 겨우 초단이지만, 무식하면 용감하기에 용기 내어 한 마디 하자면 검도는 삶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인 것 같지만, 충실함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작은 일상이 언젠가 큰 이상이 되는 것처럼 검도의 길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평생 운동으로, 아이들과 함께 가족 운동으로 검도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끝)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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