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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Jul 29. 2024

아니, 올해의 최우수 사원이라니!


한 분야에 10년간 일하면 전문가가 된다고 한다. 이를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온/오프라인 커머스 MD로 일한 지 10년이 넘어가면서부터 내겐 하나의 의문이 계속 따라다녔다. '내가 이룬 성과가 정말 나의 100% 실력으로 달성한 게 맞나?' 


지난 10년 이상 대기업 MD로 일하며 내 안에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어느 정도 효용성이 있는지 궁금했다. 정확히 말하면 성과가 대기업 빨이었는지 순수한 내 실력이었는지 검증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새로운 일을 벌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늘 혼자서 프로젝트를 해오던 터였다. 나는 '내 능력의 한계 검증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매출 1등은 여러 번 해봤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는 등수를 넘어 달성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정량적 매출 성과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매출 하위권의 한 업체를 2년 만에 연 매출 180억으로 만들었다. 이에 힘입어 나는 팀별 매출 성장률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달성했다. 무려 사업부 전체 매출 성장률의 2배가 넘는 실적으로 말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먼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즉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업체를 선별하고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하나를 파야 한다는 사실. 진짜 이 업체 하나만큼은 내가 성공시킨다, 내가 이 업체 하나로 끝을 본다,라는 생각으로 몰입해야 한다. 불씨 하나가 산불을 일으키듯 좋은 성공 사례 하나가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MD에게는 분석력, 설득력, 실행력 이 세 가지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른 실행력이다. 고객의 마음이 실시간으로 변하고 시장이 빠르게 요동치는데 분석과 설득에 머무르다가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 소용없기 때문이다. 우선 빠르고 다양하게 테스트를 하고 가능성이 보이는 쪽으로 집중하고 보완해 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빠른 실행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는데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실행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 동기부여가 매출 1등 협력사를 만드는 비결의 핵심이다. 커머스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종합예술의 장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갖고 움직이느냐가 결국 성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코로나 19 사태가 터졌을 때 둘째 아이가 태어나서 6개월 육아휴직을 했다. 복직하니 나보다 늦게 입사한 젊은 MD들의 업체가 전부 매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입지가 좁아진 나는 하위권의 업체들을 배정받았고 선임 MD로서 부끄럽지 않게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회사에서도 내가 담당하고 있던 여성복의 시장 점유율 확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가장 효율적으로 성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데이터를 분석했다. 보통 여성복 시장은 원피스의 매출이 상위권이고 파이도 큰데 당시 내가 있던 플랫폼에서는 여성 바지 매출이 상위권이었고 원피스는 상대적으로 파이가 작은 상황이었다. 뒤집어보면 원피스의 성장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었다. 키워드 분석을 해보니 사계절 내내 패션 검색 키워드 상위권에 원피스가 빠지지 않았고 검색량이 증가하는 상황이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올해에는 원피스에만 올인하면 되겠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원피스라는 하나의 아이템을 정했으니 원피스 매출을 리딩하며 빠르게 치고 나가는 하나의 업체를 발굴해야 했다. 불현듯이 육아휴직 전에 유일하게 내게 복직하거나 이직하더라도 꼭 연락을 달라고 했던 업체 A가 떠올랐다. 바로 연락했더니 A 대표가 너무 반가워하며 그동안의 고충을 한참 쏟아냈다.


내가 휴직 전에 A를 담당했을 때는 A가 입점 후 반년 만에 월 매출 1억을 바라보며 상승세를 타고 있었단다. 그런데 내가 휴직하면서 담당 MD가 바뀌었고 그 후로 A가 아무리 노력해도 담당 MD와 소통이 잘 안 되어 반년 만에 다시 매출이 바닥을 치게 되었단다. 그래서 절망 가운데 타 채널들로 방향을 틀었고 채널별로 인원까지 다 세팅해 놓은 타이밍에 내 연락을 받게 되었다고 한 것이다. A 대표는 업력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눈빛에서 절박함과 간절함이 남다른 분이었다. 


“대표님, 저는 십여 년간 MD를 해왔는데 과연 제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요. A는 지금 아무도 안 알아주는 브랜드이고 매출도 하위권이지만, 제가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1등으로 만들려고 해요. 절대 쉽지 않겠지만, 저와 함께 도전해 보시겠어요? 리스크 햇징을 위해 타 채널 운영도 중요하지만, 리스크가 커야 성과도 큰 법이잖아요. 저를 한번 믿어주시고 저희 채널에 올인해 주세요! 제 모든 걸 걸고 도와드릴게요!”      


나 역시 두 아이의 아빠이자 외벌이 가장으로서 그동안의 공백으로 좁아진 입지를 회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내 진정성이 통했는지 A 대표도 비장하게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감사하게도 A 대표는 나를 믿고 리스크도 감수하겠다며 타 채널 전환을 포기한 채 우리 플랫폼에 올인했다.


A와 원피스 셀렉션 확대를 위한 회의를 반복하다 마침내 4가지 콘셉트의 원피스 브랜드를 동시에 론칭하여 다양한 연령대의 타깃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20~40대를 위한 오피스·하객룩, 40~50대를 위한 하이퀄리티 명품룩, 30~40대를 위한 저가 이지·데일리룩, 20~30대를 위한 섹시·파티룩을 각각 콘셉트로 브랜드 4개를 만들고 속도를 내기 위해 국내외 바잉을 통해 최대한 많은 상품을 등록하도록 독려했다.

      

나는 유사 상품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적중률 높은 상품을 소싱할 수 있도록 A 대표에게 수시로 디자인, 사이즈, 컬러, 가격 등의 가이드라인과 피드백을 주었다. 동시에 모든 마케팅 구좌에서 최우선적으로 A가 노출되도록 리더와 유관부서를 설득했다. A 대표는 해외에 바잉팀을 꾸려 밤낮없이 일하며 최선을 다해 팔로업했다. 주마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스타일의 원피스를 등록하며 미친 듯이 셀렉션을 확장해 갔다.


나는 신상품의 데이터를 체크하며 매출 반응이 좋은 상품들은 빠르게 A와 소통해서 재고를 확보하는 동시에 효율이 높은 구좌에 노출하여 선순환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또한, 마케팅 테마에 맞게 4개 브랜드의 우선순위를 조율하며 매출 최적화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한 시즌이 끝나면 디자인별, 컬러·사이즈별 매출 데이터 분석을 통해 디자인별 적정 셀렉션 수, 적정 가격과 적정 물량 등을 다음 시즌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인사이트 리포트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사계절을 한 바퀴 돌며 데이터가 쌓이면 다음 해에는 직접 생산도 가능해지므로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중요했다.     


거짓말같이 2년 만에 A는 매출 1등을 달성했다. 단순히 1등이 된 것뿐만 아니라 2위와의 격차를 2배 이상으로 벌려서 압도적인 1등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A 대표는 2년 만에 건물주가 되었고 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올해의 최우수사원'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상품을 확보하기 이전에 사람을 먼저 확보하는 것, 이것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커머스라는 종합예술의 핵심이 아닐까.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끝)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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