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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Oct 04. 2024

생명, 물건이 될 수 없다(상)

'아빠'로 살아가는 빠들남

물고기를 키우고 싶다는 아들 성화에 못 이겨 2주 전 동네 수족관을 찾았다. 유튜브로 기초 지식을 학습한 나는 열대어 구피에 눈길이 갔다. 초심자도 안전하게 키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족관에는 떼 지어 다니는 앙증맞은 치어와 홀로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베타 물고기, 물달팽이와 각종 새우, 거북이까지 다양한 생물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구피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나와 달리 아들은 가만히 서서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들 눈동자가 파랗게 물들어갔다. 시선을 강탈한 주인공은 파아란 빛이 영롱한 가재 ‘플로리다 허머’였다. 생명력이 강해 최소 5년 이상 산다는 설명에 네 식구는 한쪽 구석에서 잠시 머리를 맞댔다. 이미 신비로운 생명체에 매혹된 우리는 애초 손바닥만 한 어항에 손톱만 한 구피 두어 마리를 키우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결국 품 안에 한가득한 수조와 손가락만 한 파란 가재 암수 한 쌍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예상보다 일이 커지자 귀갓길에 2차 가족회의를 열었다. 새로운 식구의 자리를 집안 어디에 마련해 줄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나는 복도 서랍장 위를 제안했지만, 아끼는 가구에 물이 튀면 안 된다며 아내가 반대했다. 아내는 거실 책장 위를 추천했지만, 나는 전자기기가 몰려있어 위험하다고 했다. 머리에 이고 있을 수도 없고 어디에 놓는 게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 어떤 장면이 번쩍 스쳤다. 어린 시절 내가 밥 먹으며 금붕어를 관찰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여보, 우리 수조를 식탁에 두면 어떨까? 아이들이 밥 먹으면서 관찰하면 재밌는 이야깃거리도 생기고 자연스레 TV도 덜 보게 되지 않을까?”     


아내는 진짜 좋은 아이디어라며 따봉을 날렸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묻길래 우쭐해진 나는 어린 시절 추억을 들려주었다. 말하다 보니 당시 <금붕어>라는 산문으로 10살 때 난생처음 상을 받고 교지 첫 면에 글이 실린 기억도 돋아났다. 아내는 또다시 놀라며 대박을 외쳤고 내 어깨는 차 천장에 닿을 기세로 잔뜩 솟구쳤다. 생각난 김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래된 앨범을 뒤졌다. 누렇게 빛바랜 교지를 찾아 30년 만에 <금붕어>를 다시 읽어보았다.           


금붕어 - 문정초등학교 3-3 김현중     


어느 날, 집 앞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밖으로 나가 보니 금붕어를 팔고 있었다. 난 당장 집으로 들어가 어머니께, “엄마, 금붕어 사주세요.”하고 말씀드리자,      

“아휴, 네가 집에서 잘 키울 수 있겠니?”
“엄마, 아저씨 가실려고 그래요. 빨리요.”
“그래, 그럼 아저씨 모시고 와.”      

난 그 말에 뛸 듯이 기뻐 얼른 아저씨를 모시고 왔다. 이리하여 이만원을 들여 중간 금붕어 네 마리, 새끼 금붕어 한 마리를 샀다. 난 너무 신기해 공부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싶었다. 열심히 물을 갈아 주고, 먹이도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마리가 피부병에 옮아 중간금붕어 네 마리가 죽고, 간신히 새끼금붕어만 남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도 한 군데만 있고, 너무 외로워하는 것 같아서 오늘 새끼금붕어 여섯 마리를 사 넣어 주었더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를 보는 것이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만 같았다.     

난 금붕어를 보고 많은 것을 알았다. 동물이나 사람은 자기와 즐길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살짜리가 ‘많은 것’을 알았다니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하긴 한 식구가 된 생명의 죽음을 처음 경험한 아이에게는 꽤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새 식구를 들이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만든 무덤만 합쳐도 작은 공동묘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피부병이 나서 줄줄이 죽었던 금붕어, 집에 데려오면 3일을 넘기지 못했던 병아리를 떠나보내며 어찌나 서럽게 울었던지. 마음속 빈자리를 채우려 다시 금붕어, 병아리 외에도 다양한 반려생물을 키웠고 얼마 못 가 또다시 새 무덤 앞에서 통곡하는 일을 반복했다.  

    

동네를 돌며 금붕어를 팔던 아저씨 말을 따라 수돗물에 초록색 액체를 타서 수조에 넣어줬는데 며칠 후 한 금붕어에 허연 먼지 같은 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명약인 줄 알고 넣어줬던 약품이 사실 독약이었던 걸까? 이내 전염된 여러 마리가 차례차례 배를 뒤집고 물 위로 떠 올랐다. 허옇게 변한 금붕어는 하얀 바가지에 담겨 아파트 화단에 묻혔다. 우리 집 1층 베란다에서도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한 무덤을 보며 용궁으로 간 금붕어를 애도했다. 고요한 집구석에서 외롭게 자란 외아들이었기 때문일까. 말 한마디 섞어보지 못한 금붕어와 뭐가 그리 정이 들었는지 오열하는 나를 보며 엄격한 엄마조차 “오늘은 공부하지 말고 일찍 자라.”라고 할 정도였다.


초등학교 앞에 샛노란 솜사탕 같은 병아리가 있는 날이면 나는 꼭 주머니를 털어 한 손에 삐악삐악 거리는 비닐봉지를 든 채 집에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심을 이용해 코 묻은 돈을 노린 아저씨, 아줌마야말로 저질 중의 저질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새로운 만남을 가장한 임박한 이별을 팔아댔다. 이미 병들거나 연약한 시한부 생명만이 학교 앞 상자 안에 유기되었던 게 확실하다. 집에 데리고 오면 꼭 하루 이틀 후에는 병아리가 눈뜰 힘조차 없어 쓰러진 채 바르르 떨었다. 나는 오이로 베개를 만들어주고 뻐끔거리는 부리에 물을 적셔주었다. 제발 죽지 말라고, 넌 일어날 수 있다고 간절한 눈빛으로 외쳤다. 하지만 가련한 생명은 오이를 베고 두 눈을 감은 채 어느 순간부터 떨지 않았다. 축 처진 내 어깨만이 가느다랗게 떨릴 뿐이었다. 닭똥 같은 눈물이 닭이 되지 못한 병아리 무덤 위로 뚝뚝 떨어졌다.      


식탁 앞에 자리 잡은 나는 수족관 사장이 일러준 대로 모래를 씻어서 수조 바닥에 깔고 화산석을 배치한 뒤 약품 탄 수돗물을 부었다. 여과기가 돌아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제대로 세팅한 게 맞는지 다시 한번 수족관 사장과 통화한 후에 신비한 빛을 발산하는 새 식구를 수조에 넣어 주었다. 집게발의 길이와 크기로도 암수 구분이 가능했지만, 대번에 누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두 팔을 흔들며 인사하듯 수컷은 양 집게발을 들고 분주히 움직였다. 반면에 암컷은 화산석 틈에서 보일락 말락 도도한 자태를 드러냈다. 6살 아들과 4살 딸에게 가재 이름을 지어주자고 했더니 초콜릿을 좋아하는 딸이 먼저 “초코!”라고 외쳤다. 내향적인 암컷 이름은 초코가 되었다. 이번엔 아들이 “초롱이!”라고 외쳤다. 초코와 비슷하게 ‘초’로 시작하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단다. 외향적인 수컷 이름은 초롱이가 되었다. 이로써 초씨 가문 가재 한 쌍이 정식으로 우리 식구가 되었다.   

   

다음 날이 되자 겁많은 아내가 웬일인지 초씨 남매를 귀엽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업을 준비하느라 밤늦게까지 홀로 깨어있을 때가 많은데 동지가 생겨 앞으로 외롭지 않겠단다. 야행성인 가재가 수조를 헤집고 다니는 모습이 아내에게 퍽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가재를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건강하게 잘 키울 일만 남은 듯했다.      


며칠 후 초코도 적응했는지 요조숙녀에서 여전사로 변신해 여과기 기둥을 타며 놀았다. 첫날부터 에너지 넘쳤던 초롱이는 말해 뭐하랴. 활달한 초씨 남매가 집에 온 지 열흘쯤 되었을 때 수족관 사장 말대로 수조 절반만 물을 갈아주었다. 금붕어를 키울 때도 물갈이가 항상 관건이었는데 이번엔 다행히 약품이 독약은 아니었나 보다. 식성이 좋았던 초씨 남매가 밥을 남기는 걸 제외하고는 무탈해 보였다. 수족관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가재가 몸집을 키우기 위해 여러 번 탈피하는데 탈피 전에는 밥을 잘 먹지 않으니 양 조절을 잘 해주라는 것이었다. 에이, 설마. 얼마나 됐다고 벌써 탈피하겠어? 무지한 나는 녀석들의 탈피를 그저 먼 훗날의 일 정도로만 여겼다.      


“아빠, 초롱이가 껍질을 벗었어!”     


다음 날 이른 아침, 아들이 나를 깨웠다. 정말이었다. 탈피를 마친 빈 껍데기가 바닥 한쪽에 놓여 있었다. 돌 틈 사이로 몸집이 눈에 띄게 커진 초롱이가 보였다. 갑각류는 성장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단단한 껍질을 벗어야 하는데 이때 가장 큰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한다. 탈피 직후 몸이 가장 연약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작은 공격이나 스트레스에 상당히 취약하다. 이 시기를 잘 견뎌내면 다시 껍질이 단단해지면서 더 크고 강인한 몸을 얻게 되는 것이다. 밤새 묵묵히 거사를 치른 초롱이가 대견했다. 체급이 올라간 초롱이 옆에 있으니 초코가 앙증맞아 보였다.    

 

“아빠, 초롱이가 이상해!”


그날 저녁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하)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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