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우리 버킷리스트 한 번 작성해볼까?” “좋아요. 나는 파리에 가보고 싶어요.” “응. 나는 아예 해외에서 한 달 살아보고 싶어.” “우와, 그러면 유럽에서 한 달 살아보는 건 어때요? 파리도 가보고.” “그럼 좋겠다. 렌터카로 한 달 동안 유럽 여행하면 대박이겠다.” “그런데 회사 다니면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낼 수 있겠어요?” “그러게…. 하지만 불가능하기 때문에 버킷리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올까요? 생각만 해도 설레긴 하네요.”
결혼 100일을 기념해 우리 부부는 버킷리스트를 적어보았다. 여러 가지 리스트 중 ‘여행’이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발견했다. 신혼여행 도중 급히 귀국한 일이 떠올랐다. 아버지께서 심근경색 증세로 위급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시술을 받고 잘 회복하셨다.
인생의 한 번뿐인 허니문의 꿀 맛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씁쓸함일까? 우리 부부는 다시 한번 달달함을 꿈꾸고 있었다. 그것도 1달짜리 꿀 독에 풍덩 빠질 정도로…. 하지만 초콜릿처럼 달콤한 상상은 이내 쌉싸름한 뒷맛을 남긴 채 현실 속에 녹아내렸다.
버킷리스트를 잊은 채 우리 부부는 1년간 열심히 다퉈가며 서로에게 맞춰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병세가 다시 악화되었다. 이번엔 혈관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장으로서 오랜 갈등과 고민 끝에 아내와 상의하고 회사에 양해를 구했다.
3개월 가족 돌봄 휴직의 시작
‘가족 돌봄 휴직’을 할 수 있었다. 최대 3개월까지 가족의 병간호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무급 휴직이다.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아버지 곁에서 새우잠을 자며 24시간을 보냈고, 난생처음 아버지의 용변을 직접 받아보기도 했다. 어머니 장례를 치렀던 병원에서 아버지 병간호를 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빠르게 회복하셨다. 아버지 덕분에 3개월 휴직 중 2달의 여유 시간이 생겼다. 순간 아내가 1년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회사 다니면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낼 수 있겠어요?”
‘그래, 낼 수 있구나!’ 버킷리스트를 실현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아내도 상사의 배려를 받아 기적 같은 1달의 휴가를 받았다. 나는 한 번 결단하면 쿠팡맨 보다 빠르게 실행한다. 로켓 같은 속도로 준비 기간 한 달을 거쳐 드디어 우리 부부는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실현했다.
출국 전 준비 ① - 어디로 갈 것인가
먼저 아내와 어디로 갈지 정해야 했다. 담임 목사님이 독일에 아는 한인교회 목사님이 있으니 연락을 취해보겠다고 했다. 담임 목사님은 예전부터 독일에 청년들을 보내고 싶어 했다. 독일은 종교개혁의 발상지이자 철학과 사상을 배울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1달 만에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의 계기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를 일이다.
독일 한인교회 목사님은 “마침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의 해라 독일에서도 여행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많이 하고 있으니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우리 부부의 방문을 환영했다. 나라를 정했으니 나라 안의 한 지역을 베이스캠프로 정해야 했다.
지도를 찾아보니 유럽의 중심에 독일이 있다면, 독일의 중심에는 카셀이 있었다. 카셀은 동선상 독일 전역을 여행하기에 최적의 입지였다. 게다가 소개받은 독일 한인교회도 카셀에 있어 ‘꿩먹알먹(꿩 먹고 알 먹고)’이었다. 아무래도 한인교회에 가면 해외에서 예배도 가능하고, 현지인들의 정보와 도움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국 전 준비 ② - 어디에 묵을 것인가?
우리 부부는 독일의 주거문화를 체험하고 싶어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로 현지인의 집을 렌트했다. 1달 중 절반은 카셀을 베이스캠프 삼아 독일에 적응하면서 카셀 주변부터 여행할 계획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독일 내에서 도시를 옮겨 다니며 숙박을 하고, 나아가 렌터카로 주변국을 여행할 예정이었다.
에어비앤비에서 카셀 지역에 주차가 가능하면서 주방을 이용할 수 있는 집을 검색했다. 우리 부부는 한식 마니아라서 하루 한 끼 정도는 한식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주방이 필요했다. 이렇게 검색을 하다 보니 1박에 6만 원 정도 하는 괜찮은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젊은 부부가 2층에 살면서 1층 전체를 렌트로 내놓은 전원주택이었는데 이용객들의 후기가 좋았고 집이 깨끗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출국 전 준비 ③ - 환전 싸게 하기
트래블메이트 강남 본점에서는 1인당 최대 200만 원까지 환전수수료 95%로 우대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최대한도인 400만 원을 유로로 환전하고, 예전 여행 때 가지고 있었던 달러를 추가로 챙겼다.
‘남녀생활백서’ 블로그에 있는 ‘환전 싸게 하는 법’을 소개한다.
1. 환전은 여행을 떠나기 전, 넉넉히 하자(예산의 1.5~2배) 2. 공항 내 환전소는 피한다 3. 주거래 은행의 환율 우대 서비스를 활용 4. 모바일 환전 서비스 5. 주요 통화가 아니면 이중 환전을 추천(예를 들어, 미국 달러로 환전 후 현지에 도착해 바꾼다면 환전을 저렴하게 할 수 있다.) 6. 동전은 오기 전에 다 쓰고 오자(다시 환전 시 수수료가 높기 때문) 7. 한번 끝낸 환전, 다시 검색하지 말자(더 내려간 가격을 보면 스트레스받는다)
출국 전 준비 ④ - 필수템 확보
우리 부부에게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음식이다. 우리 부부처럼 한식 마니아라면 부피를 줄일 수 있는 여행용 컵라면, 냄새를 차단할 수 있는 김치 통조림 구입을 추천한다. 아울러 장모님이 견과류를 잔뜩 넣은 멸치볶음을 해줬는데 정말 요긴하게 잘 먹었다.(유럽 음식은 너무 느끼하다.) 마지막으로 추천하는 필수템은 누룽지다. 산 정상에서 먹는 컵라면을 따라올 지구 상의 음식이 없듯 유럽에서 먹는 누룽지의 맛(특히 숭늉)은 정말 일품이다. 강력 추천!
출국 전 준비 ⑤ - 국제 운전면허증 발급받기
해외에서 렌터카를 이용할 계획이라면 국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준비물은 운전면허증, 여권용 사진, 여권(공항에서 발급 시)이 필요하다. 국제 운전면허증은 무조건 방문 신청만 가능하다. 나는 도로교통공단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발급받았는데 경찰서 민원실, 인천/제주 국제공항에서도 발급 가능하다. 5분도 안 되어 뚝딱 발급이 되는데 ‘국제’라는 말이 붙으니 뭔가 내가 글로벌 인재가 된 것 같은 우쭐함을 잠시 느꼈다. 무엇보다 남자의 로망인 아우토반을 달린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인 중에 한 명은 경찰서 민원실이 가장 빨리 발급받을 수 있는 루트라고 한다. 사람들이 의외로 잘 모르기 때문에 경쟁률이 낮다고 하니 경찰서 민원실도 잘 활용해보자.)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방문한 독일 내 도시 및 주변국
2017년 당시 대한민국 시국이 촛불 운동으로 활활 타오르던 때라 진지하게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종교, 역사인식, 경제 등 ‘개혁’의 아이콘인 독일에서 한 달의 시간을 보내며 사색의 시간도 가졌다. 물론 아내의 버킷리스트인 ‘파리까지 렌터카로 여행하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해외에서 한 달 살기의 가장 큰 목적은 ‘우리 부부가 더욱 친밀해지고 견고 해지는 시간’에 있었다.
- 방문한 독일 내 15개 도시 : 프랑크푸르트, 카셀, 아이제나흐, 크베들린부르크, 아이슬레벤, 드레스덴, 비텐베르크, 베를린, 쾰른, 하이델베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다하우, 뮌헨, 퓌센, 보름스
- 방문한 나라 4개국 : 독일,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렌터카 여행
대중교통은 우리나라가 최고다. 독일에선 대중교통보다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비용과 시간 면에서 더 효율적이었다. 운전을 잘하는 아내와 교대로 매일 평균 246km를 달렸다. 우리 아내, 완전 칭찬해. 특히 아우토반을 달릴 때와 국경을 넘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 렌트기간 : 총 22일
- 이동 거리 : 총 5,411km (매일 평균 246km 운전)
- 아우토반에서 달려본 최고 속도 : 181km/h
한 달 살기 총 경비
1달간 총경비는 700만 원 정도 들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여행을 했다.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직접 요리를 해 먹으면서 식비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물론 독일의 맥주, 소시지, 빵은 최고였다.
- 교통비 약 380만 원 : 비행기 왕복 2명 약 180만원 + 렌터카 약 100만원 + 주유/주차/대중교통 약 1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