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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Aug 06. 2023

기다리지 않는 여자, 기대하지 않는 남자

8월에 드디어 2번째 책이 출간됩니다. 다음 주부터 사전판매 예정입니다! 이 글은 21년도에 발행했던 글을 퇴고한 글이며 출간될 책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책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일상은 약속의 연속이고 때로는 약속에 울고 약속에 웃는다. 하지만 모든 약속을 지키며 살 수는 없다. 헤어진 연인과 그렸던 영원한 사랑도, 올해는 꼭 이루겠다던 스스로와의 다짐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약속은 미래의 일을 정하여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것인데 미래라는 게 애초에 불확실한 일이니 약속 역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시간 약속도 그렇다. 친구와의 약속이든 업무로 인한 약속이든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상대가 약속에 늦으면 화가 나는데, 약속을 지키려던 나의 노력에 비해 ‘너는 그러지 않았구나’ 라며 서운하기 때문이다. 나쁘게 생각하면 ‘너는 나를 아끼지 않는구나’가 되기도 하고, 극단으로 가면 ‘너는 나를 무시하는구나’가 되기도 한다. 사람은 주는 만큼 받고 싶어 하는데 그건 시간에서도 약속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늦으면 기분이 나쁘다.

연인이 된다는 건 매일의 시간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우리 사귈래?'

'그래'

라는 약속은 그 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의 일상에서도 여러 약속을 다짐하는 일이다. 핸드폰이 생기기 전의 연애야 어땠는지 모르지만 문자와 카톡이 생긴 후의 연애는 ‘연락의 연속’이다.


'잘 잤어?'

'밥은 잘 먹었어?'

'잘 자'


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락을 주고받는다. 연락문제로 연인들 다투는 이유는 연락도 하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1시 48분에 카톡해'라는 건 아니어도 '이 정도면 답장이 와야 돼' '이제는 답장을 해야 돼'라는 기대를 가지고 연락을 한다. 연락은 애정의 지표가 되기도 하고 타이밍이 늦은 문자와 성의 없는 답장이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만 신경 쓰는 건가’ ‘나를 배려하지 않는 건가’ ‘나를 무시하네’라는 악순환은 여기서도 나타난다. ‘언제 연락하나 보자'하며 서운해한다.


사랑이 어려운 건 등가 교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는 만큼 받고 싶고, 받는 만큼 주려는 게 관계를 이어가는 보통의 논리지만 사랑에서는 그보다 많은 걸 바란다. 무조건적인 애정과 무조건적인 배려, 무조건적인 헌신을 사랑이라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 숲』의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말한다.

"내가 바라는 건 그냥 투정을 마음껏 부리는 거야. 완벽한 투정. 이를테면 지금 내가 너한테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해. 그러면 넌 모든 걸 내팽개치고 사러 달려가는 거야. 그리고 헉헉 숨을 헐떡이며 돌아와 '자, 미도리, 딸기 쇼트케이크.'하고 내밀어, 그러면 내가 '흥, 이제 이딴 건 먹고 싶지도 않아.'라며 그것을 창밖으로 집어던져 버려. 내가 바라는 건 바로 그런 거야."

아무리 화를 내도, 아무리 못난 모습을 보여도, 그럼에도 상대방은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 그게 사랑이라고 느낀다. 무조건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가져다 버릴 케이크라도 나에게 사 오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을 사랑이라고 느낀다.


그건 연락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일을 하거나 공부 중인 걸 알아도,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걸 알아도, 나를 신경써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일상은 단순하지 않다. 모든 바람을 들어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상을 산다는 건 생수를 컵에 따르는 듯이 마냥 쉬운 일이 아니다.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바꾸듯이 마냥 간단하지는 않다. 정신없이 일하면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를 때도 있다. 머리로는 '연락을 해야지' 하다 가도 결국 연락을 못할 때도 있다. ‘그건 다 변명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있다.


사랑도 현실이다. 사랑도 일상의 통제를 받고 보통의 논리를 따른다. 세상에 24시간 나만 생각해 줄 사람은 없다. 나 역시 상대방을 24시간 내내 생각할 수는 없다. 상대방이 모든 걸 해 줄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모든 걸 헌신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혹시 상대방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란다면 나도 모든 걸 바칠 수 있어야 한다. 낭만이 없네,라고 느낄 수 있지만 사랑은 현실이고 현실은 원래 낭만이 아니다. 현실의 논리에서 벗어난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랑에서도 등가 교환이 필요하다.


상대가 연락이 없어도 기대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기대가 커서 실망하는 건 내 마음이고, 화가 나서 힘든 것도 내 마음이다. 연인이 나에게 신경을 못쓰는 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나를 무시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일상을 살다 보면 그런 순간도 있을 수 있다. 각자의 삶에 있는 그런 공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기다리지 않는 여자, 기대하지 않는 남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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