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읽고
“운동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단순한 키워드 두 가지를 넣어두면 많은 이들이 질문을 한다. 내가 단지 그 둘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그 안에 꽤 많은 의미가 있음을 다시 설명하게 한다.
꾸준한 운동은 세상에 많은 가치들 중에서 몸과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본업이 있음에도 얼마가 되었든 그 외의 시간을 투자해서 꾸준함을 실천하는 시간이다. 나는 이것을 ‘성실함’의 증거로 여기기로 했다. 꾸준히 책을 읽는 것은 겸손함과 앎에 대한 호기심을 뜻한다. 내가 가끔 엉뚱하면서 철학적인 대화를 하고 싶을 때, 그 대화를 이어가줄 수 있어야 한다. 반드시 종이책을 물리적으로 몇 권씩 읽어야 해 가 아니라 무언가를 자꾸 알아가고 싶고 그것에 대해 노력을 하는 상징이다. 나는 이것을 ‘대화의 가능성‘ 지표로 삼기로 했다.
그래도 나름 ‘러너’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에 이 책을 읽으니 신기했다. 풀 마라톤을 달린 적은 없고 감히 아직 도전할 생각은 없지만 하루키의 도전과 달리는 이유, 트라이애슬론에 대한 단상을 흥미롭게 읽었다. 재즈 음악에 심취하고, 위스키를 즐겨 마시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매일 10km를 달리다니. 그의 글이 어딘가 향기가 나고, 문장에서 경쾌한 리듬이 느껴지며, 가파르면서 건강한 맥락이 읽혔던 이유일지도. 꾸준히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이 또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음을 느꼈다.
괜히 일부러 이 책을 다 읽고 달렸다. 추웠다가 다시 사그라든 온도와 적당한 바람 덕분에 한강으로 향했다. 이거지. 두 다리, 러닝화만 있고 많은 비와 눈이 쏟아지지 않는다면 ‘언제든’ ‘혼자든’ ‘어디든’ 가능한 것. 마라톤 대회는 10k, 하프 한 번씩만 나가보았지만 혼자 뛰고 소수로 뛰다가 다 같이 같은 장소를 같은 시간에 뛰는 경험을 하니 꽤 색달랐다. 이래서 PB가 매번 대회에서 경신될 수 있구나 하는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껴보기도 했다. 주변에 러닝 하는 친구들이 늘고 그들은 러닝 크루 -> 하프 마라톤 -> 장기 훈련 -> 풀 마라톤 + 트레일 러닝으로 빠지는 순서를 밟았다. 특히나 이번 가을 JTBC 마라톤에서 비를 맞으며 42.195km를 해낸 수많은 인스타그램 친구들을 보면서, 이 책을 다 읽으면서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풀에서 ‘절대’라는 단어는 지웠다. 사람 일은 모르니까.
하루키가 말했듯 모든 사람이 러닝을 좋아하고, 러너가 될 필요는 없다. 누군가가 시켜서 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떠한 운동이든 아니 어떠한 활동이든 꾸준히 즐길 수 있는 무언가만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이 삶을 살아가는 열정이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원동력이며 또 즐거움과 후회를 느끼며 인생을 온몸으로 맛보는 일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