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내가 선택하는 시간
고민이 늘어났습니다.
무엇을 해도 큰 감흥이 없고 즐겁지가 않거든요.
제 안에 허전한 바람결이 느껴지는 꽤나 큰 구멍이 생겼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수많은 고민을 거듭하면 찾아오는 밤의 시간에
가장 많이 마주하는 질문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입니다.
낮동안 또는 더 늦으면 저녁까지 이어지는 직장일,
각종 물품과 콘텐츠의 소비,
땀을 흘리며 하는 운동까지
제 삶의 질은 그대로고 괜히 돈만 새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토요일 아침이면 가는 LP스토어에서 습관적으로 LP를 구매했습니다.
예전에는 구매할 때마다 뛸 듯이 기뻤지만 역시나 그날은 그토록 좋아하던 LP를 사면서도
제 마음속에서는 '이걸 왜 사니? 또 얼마나 듣는다고..' 하면서 핀잔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 질척이는 기분 속에서 사장님과 담소를 나누던 중
우연히 삶에 대한 각도를 틀어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LP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사장님은
LP를 듣는 사람들은 모두 DJ라고 칭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로 생긴 기분,
창밖에 보이는 비나 눈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에 맞춰
집에 있는 LP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감상하는 일련의 행동은
음악을 선곡하고 믹싱 하며 사람들에게 내보내는 DJ와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물론 전문 DJ라기보다 '나에게 최적화된 DJ'라고 덧붙였죠.
'나에게 최적화된 DJ'
전 이 타이틀이 너무나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LP를 튼다는 행동이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내게 맞춘 최적의 음악을 골라 내게 선물하고 있다는 것으로 들렸거든요.
이때부터 그냥 음악을 틀지 않았습니다.
밤마다 저를 위한 DJ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모르는 제 마음이 쉴 수 있도록
마음이 허전한 짙은 밤에는 깊고 진한 재즈 보컬리스트의 노래를
햇살이 넘어 들어오는 날에는 날아가는 음의 소울발라드를
흐린 날이면 가볍게 춤추는 쿨재즈를 턴테이블에 올려놓았습니다.
더 이상 LP를 좋아하는 저의 시간이 헛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또 다른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DJ를 넘어 범위를 좀 더 넓혔습니다.
좋아하는 옷을 잘 모아 그날의 내 컨디션에 따라 패션을 잘 골라주는 맞춤 스타일리스트가 되기도 하고
먹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유튜브를 켜고 따라 해 보며 나만의 셰프가 되어 음식을 내어줍니다.
지금 무언가를 소비하고 즐기고 있는 것에 대해 깊고 면밀히 돌아보니 너무나 뜻깊더군요.
그 이유는 이 시간이 매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나를 위해 내가 선택해주고 있는 시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일상 속에서 어떤 부분이 의미가 없는 것 같고 무미건조할 때면 이런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나를 위해서 해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그 뒤로, 손에 잡고 있는 일이 달라 보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행동도 따라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