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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Nov 08. 2022

너의 마음을 얻는 일 (3)

https://brunch.co.kr/@whatdals/128


https://brunch.co.kr/@whatdals/133



급훈 만들기가 시작됐습니다. 


"원아, '눈.을.착.하.게.뜨.자' 총 일곱 글자야. 무슨 글자 할래?"

"'눈.을.뜨.자' 이건 제가 할게요."

"좋았어! 그럼 나머지 '착.하.게' 는 다른 친구들이 한 글자 씩 맡도록 할게. 괜찮지?"

"네."


똑똑이는 신이 나서 개인용 색칠 장비를 가져와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곤 거침없이 글자 속을 채우기 시작했어요.


직관적인 메시지


기껏해야 예쁘게 색칠을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눈'에는 정확한 메시지를 담고, '을'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려 넣더군요. 

저는 아이에게 폭풍 칭찬을 쏟아냈습니다.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 정말 창의적이다, 선생님은 이렇게 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등등

단전에서 끌어올린 혼신의 연기를 펼쳤지요. 

아이는 잠시 우쭐해졌어요.

하지만 기분 좋은 순간도 잠시. 

아이의 몸이 베베 꼬이는 것이 심상치 않습니다.

슬슬 지겨워진 거죠. 

네, 생떼와 말꼬리 물기의 서막입니다. 


"아, 안 할래요!"

"두 글자 남았는데?"

"하기 싫어요. 하기 싫은데 선생님이 억지로 시켰잖아요! 억지로 안 할 거예요!!"


저는 이럴 줄 알고 글자 우선 선택권을 주었던 것이지요. 


"원아, 두 글자 하고 피곤해졌나 보구나. 그런데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는데. 잘 기억해보자. 급훈을 만들자고 한 건 원이야. 그리고 네 글자를 선택한 것도 원이야. 선생님은 억지로 시킨 적 없는데?"

"지금 억지로 시키고 있잖아요!!!!!!!!!! 하기 싫어!!!!!!! 안 할 거야!!!!!!!!!!"(빼에엑!!!!)


아이가 소리치며 발악을 합니다. 이 순간을 잘 견뎌야 해요. 


"원아, 진정하고 선생님 얘기 들어봐. 당장은 하기 싫을 수도 있지만, 선생님은 원이가 시작한 걸 끝까지 한번 해 봤으면 좋겠어. 오늘 끝내 놓으면 다음 주엔 교실에 예쁘게 걸려있을 거야. 그러면 원이도 뿌듯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하기 싫단 말이에요! 다 찢어 버릴 거야!"

"네가 찢겠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아깝네. 애써 그린 예쁜 그림이 다 쓰레기가 돼버린다니. 선생님은 속상하지만, 네가 그린 그림을 찢는다면 그것도 네가 선택한 거니 어쩔 수 없지."


거의 울기 직전의 아이는 잠시 멈칫했어요. 

정성스레 꾸몄는데 찢어버리긴 아까웠나 봐요. 


"피곤하다면 잠시 쉬었다 해도 좋아. 하지만 선생님은 오늘 중에 마무리를 했으면 좋겠어. 다 끝낸 후련함을 원이가 느껴봤으면 좋겠거든."

"아~!! 하기 싫은데!!!! 알았어요,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짜증 섞인 대답과 함께 신경질적인 색칠이 시작됩니다. 

녀석, 정말 하기 싫은지 앉은자리에서 매직펜을 쥐고 세게 눌러 심지 세 개를 부러뜨렸어요. 

저는 못 본 척 묵묵히 제 할 일을 했지요. 

  

하기 싫음의 결정체


'뜨' 자를 마구 휘갈겨 썼더니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튀어나왔네요. 

괜히 '뜨'자에 실컷 화풀이를 한 똑똑이는 금세 결과물에 시무룩 해졌어요. 


"... 너무 막 했나..."


그러곤 슬그머니 '자'자를 끌어오네요. 

화가 덜 풀려 예쁘게 꾸미진 않았지만 그래도 '뜨' 보단 꼼꼼하게 색칠을 하더군요.

똑똑이의 네 글자가 모두 완성이 됐습니다. 


저는 그 사이 다른 아이들이 만든 '착.하.게'를 가져와 널따란 모둠 탁자 위에 글자를 순서대로 펼쳐주었어요. 

그 모습을 아이가 한참 내려다봅니다.


"... 참고 하길 잘했네.. 예쁘다."


아이의 혼잣말을 듣고, 조용히 아이의 어깨를 토닥여 줍니다. 


"잘했어. 원아."





그날 이후, 교실 벽면엔 큼지막한 새 급훈이 걸렸어요.

똑똑이는 여전히 교실 문을 열고, 가방을 던져두고, 옆 반으로 놀러 갑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생겼어요. 

교실을 나가기 전에 꼭 담임선생님께 먼저 허락을 구한다는 것과

게시판을 한번 둘러보고 나간다는 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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