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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용 Aug 19. 2018

루브르의 한국인 문화재 복원사

루브르가 좋았다 하네

# 미술품 복원사는 어떤 직업인가요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민중(이하 중) : 안녕하세요. 저는 김민중이라고 합니다. 현재 프랑스에서 미술품 복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미술품 복원사가 생소한 직업이라 자세하게 어떤 일은 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중 : 미술품이 오래되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잡아주는 재료가 필요합니다. 훼손된 부분을 도려내고 그 부분을 새로운 재료로 채워서 전시가 가능한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복원사의 역할입니다.



미술품, 문화재 복원사가 일반적으로 흔한 직군은 아니에요. 어떤 계기로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중 : 저는 원래 이공계 분야를 공부했어요. 그러다가 진로를 바꿔서 부모님께 욕을 엄청 먹었죠. 제가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박병선 박사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분께서 종이에 대한 연구를 하고 계셨는데, 옆에서 접하다 보니 복원 업무가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결국 사학(史學)으로 전공을 바꿨어요. 복원에 관심이 생긴 거예요. 제가 어떤 물건을 만지고 이를 통해 재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재밌고 의미가 있었어요.


루브르 박물관(La Musée du Louvre)에서 일을 했습니다. 예술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 그중에서도 다른 곳이 아닌 루브르 박물관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중 : 우선 제가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어요. 루브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때문이에요. 루브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문화재에 관한 깊은 철학을 가지고 있어요. 그 철학에 매료가 되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전경


# 한지를 연구하네요
 

한지(韓紙)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한지의 세계화, 한지에 대한 재조명을 위해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중 : 제가 대학생 때 종이에 대한 연구를 했어요. 작품을 복원할 때 화지(和紙), 즉 일본 종이를 사용하게 되거든요. 어느 날 제가 한국에서 가져온 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줬는데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이렇게 멋있는 화지를 어디서 가져왔어?’라고. 한지를 가져올 때마다 화지라고 부르더라고요. 기분이 상했어요. 그날부터 한지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한지를 연구하고 소개하고 있어요. 제가 모시던 박병선 박사님께서도 많은 도움을 주셔서 계속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한지를 활용한 문환재 복원 작업 중인 김민중


한지와 화지를 비교했는데, 어떤 점에서 차이점이 있나요?

중 : 재료가 비슷하지만 조금씩 달라요. 종이의 신축성도 달라요. 한지는 가로, 세로 모두 질긴 반면 화지는 세로로만 질겨요. 만드는 공정도 다른 면이 있죠.

 복원의 측면에서 일본의 화지가 가볍기도 하고 질겨서 좋아요. 다만 복원 작업 중 중요한 요소가 영구성이거든요. 복원을 하는 목적 자체가 오래 보존하기 위함이니까. 한지로 복원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영구성 측면에서 훨씬 뛰어나요.


실제 한지로 복원 작업을 했던 문화재가 있었나요?

중 : 루브르 박물관 안에 있는 19세기 독일 바바리아 왕국 막시밀리앙 2세(MaxmilianⅡ) 왕의 책상 중 일부를 한지로 복원했어요. 한지와 화지 중에서 종이를 고르다가 결국 한지를 사용했던 케이스입니다.

복원 작업에 사용하는 종이를 선택하는 의사결정자는 누구인가요?

중 : 저는 어떤 종이가 있는지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최종 의사결정은 루브르 박물관 연구소장이 담당하세요. 아리안 드 라 샤펠(Ariane de la Chapelle) 연구소장이 두 개를 선택한 후 복원사에게 작업을 해보라고 넘겨주죠. 이때 한지가 선택이 된 거예요.


왼쪽부터 막시밀리앙 2세와 복원 작업을 마친 책상


한지도 종류가 나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종류가 있나요?

중 : 종류가 굉장히 많아요. 크게 쌍발한지와 외발한지로 나눠볼 수 있어요. 쌍발한지는 일제 시대 때 일본식 공정으로 만든 한지예요. 반대로 외발뜨기로 만든 외발한지는 본래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종이입니다. 쌍발한지는 일본의 화지와 비슷한 제조공정으로 만들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 쌍발한지와 외발한지 모두 한지라고 칭하고 있어요.
 

작년 말, 루브르 박물관에서 한지에 대한 세미나를 직접 주최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전문가들과 각 세계의 복원 전문가들이 한지를 바라보는 관점과 의견이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중 : 서양에서는 한국이라는 알게 된 기간이 얼마 안 되어요. 한국이라는 나라를 2002년 월드컵 때부터 조금씩 알게 됐죠. 사실 그 사람들에게 한지는 크게 와 닿지 않는 종이예요. ‘이렇게 질 좋은 종이가 있었어?’라고 이제야 차츰차츰 알아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한지를 활용한 문화재 복원 세미나 중인 김민중 씨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질문을 드릴게요. 열네 살에 프랑스 파리에 넘어가게 된 계기가 부모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중 : 저희 할머니와 이모님이 프랑스에 살고 계셨어요. 부모님께서 어느 날 프랑스로 데려가시더니 편지 한 통만 남겨두고 한국으로 들어가셨어요. 저는 영문도 모른 채 프랑스에서 살게 됐죠. 원래 어렸을 적부터 프랑스에 대한 관심이 커서 한 번 가보고 싶긴 했어요. 부모님께서 한 번 살아보라고 주신 선물인 것 같아요. 


지금은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중 : 굉장히 힘들었죠. 일단 대화가 안 되잖아요. 학교에 가도 친구들에게 ‘밥 먹으러 갈래?’라는 말이 안 나오잖아요. 손으로 숟가락 드는 시늉을 하며 밥 먹으러 가자고 했죠. 조금씩 친구들과 지내며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문화를 배우면서 점차 나아졌어요. 


스승님으로 모신 故 박병선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됐나요? 

중 : 프랑스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 적이 있어요. 부모님이 갑자기 용돈을 안 주시더라고요. 삶이 피폐해지기 시작해서 일자리를 구했어요(웃음). 제가 아는 지인 한 분이 당시 박병선 박사님과 함께 일을 하고 계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다른 나라로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겨서 박사님께 저를 소개해주신 거죠. 그때부터 일을 시작해서 4년간 하게 됐네요.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가 조금씩 일을 깊게 배우면서 박사님께서도 제가 하는 일을 높게 평가해주셨어요. 저를 문화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등록시켜주셔서 계속해서 함께 일하게 됐죠. 


故 박병선 박사와 함께한 김민중 복원사


故 박병선 박사님은 외규장각 의궤 반환, 직지심체요절의 세계 최고(最古) 금속 활자본 입증 등 우리나라 역사∙문화사에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배운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중 : 그분께 배운 것 중 가장 큰 것은 이거예요. ‘나라가 너에게 도움을 주기 전에 나라를 위해서 할 일을 생각해라’. 그분이 먼저 국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했던 분 같아요. 실제로 이와 같은 삶을 사는 분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일을 통해 얻는 보람이 무엇인지 직접 체감하며 깨닫게 됐어요. 


故 박병선 박사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루브르에서도 협업하는 부분이 많이 있나요? 

중 : 부서 안에도 많은 섹션으로 나뉘어요. 그래서 소통이 중요해요. 루브르의 직원들은 소통을 굉장히 잘해요. 이 부분이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복원 작업 안에서도 여러 분야로 나뉠 것 같아요. 하나의 문화재를 복원하는데 몇 명 정도 함께 작업 하나요? 

중 : 문화재의 종류마다 스케일이 달라져요. 조그마한 문화재는 한 명이 하는 경우도 있고 보통 여러 명이 붙어서 작업하죠. 크기뿐 아니라 문화재의 중요도에 따라서도 달라지고요. 


#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나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돈을 무시할 수 없죠. 평소 가지고 있는 돈에 대한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중 : 사실 돈이 없으면 힘들죠. 한지를 만드시는 분이나 저처럼 콘퍼런스를 기획하는 기획자나 자금이 없으면 일이 굉장히 어렵거든요. 한편으로 돈에는 목적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당한 목적성이 없는 돈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해요. 



전문분야에 대한 능력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나요? 

중 : 네 지금도 박사 논문을 준비 중에 있어요. 공부에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을 통해 한지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중 :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장인분들을 돕고 싶어요. 제가 돈이 없기는 하지만(웃음). 궁극적으로 전통문화가 다시 활성화되는데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언젠가 젊은 친구들이 문화재 복원 작업을 하는 후배로 함께 하겠죠. 후배를 양성하는 계획도 염두에 두고 있나요? 

중 : 사실 양성이 답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전수하고 이어가려면 양성 없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문화를 계승하고 싶고, 저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지금 당장은 저도 부족해서 누군가를 가르치기보다는 같이 하고 싶어요. 문화재에 대해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도 같이 와서 각자의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같이 만들어가고 싶어요.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은 여러 환경적인 조건으로 인해 꿈을 꾸기도 어렵고, 꿈이 있더라도 이루기 어려운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고 느낍니다. 다른 지역과 문화권에서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시각에서 해주고 싶은 조언과 응원의 메시지 부탁합니다. 

중 : 틀을 깨야한다고 생각해요. 당연하게도 저희는 안정적인 상태를 원하잖아요. 고정적인 수입이 꾸준히 들어오는 직장과 같이.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모두가 변호사가 될 수 없고, 의사가 될 수 없잖아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궁극적으로 그 답을 찾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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