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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초 Sep 09. 2021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멋지지 않아요? 14살 차이 쉐어하우스왕언니와 막내의 즉흥 여행

'원래'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난 정말 '원래부터' 즉흥으로 무언가를 해보는 법이 없었긴 했다. 어떤 일이든 꼼꼼하게 따지고 결정을 했어도 나름의 계획을 또다시 세워보며 이 일이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효율적인지, 시간 낭비가 되진 않는지 생각하곤 한다. 이런 내게 갑자기 찾아온 '별 보러 가자'는 특별한 제안. 대학 중간고사를 앞둔 내가, '원래부터' 즉흥으로 무언가를 해보는 법이 없던 내가, 무슨 생각으로 너무나 낭만적이고 여유 있는 제안을 덜컥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지만!


쉐어하우스에 같이 살고 있는 맏언니는 나와 대화를 하다가 이런 말을 툭 던진 적이 있다. 

'내가 언젠가 적재의 '별 보러 가자'와 함께 어디서 만날지 문자로 스윽 보내면 스윽 나와봐라!'라고. 

사실, 그 당시 나는 '별 보러 가자'는 말이 그리 와닿지 않았다. 가볼 기회도 없었을뿐더러 별 하나 보러 바리바리 준비해서 밖에서 자는 경험이 수족냉증이 있는 내겐 썩 재밌어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원래부터' 즉흥으로 뭘 하는 법이 없는 '나'이지 않은가. 그래서, 그냥 웃어넘겼다. "정말 좋죠 ^ㅠ^!" 하면서. 그런 낭만적인 제안을 하는 남자 친구가 나타나나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ㅋㅋㅋ


몇 주 후, 알림에 뜨는 '별 보러 가자' 노래. 'OO으로 나와~ 내가 다 가지고 가니까 몸만 나와.' 

'에? 진짜 가자고? 이렇게 빨리? 나 다음 주 시험인데?'


나는 별을 보러 어딘가로 떠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기회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별만을 보러 떠날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다. 게다가, 서울대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는 대학생으로서, 어떻게 보면 굉장히 과분한 일이었다. 시험공부는 안 하고 별구경이라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제안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못 해봤던 거지, 안 하려는 게 아니었다. '별을 보러 가는 것'이 어떤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언제 이렇게 또 언니랑 떠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완벽하게 짜인 일정을 따르기만 할 건가. '별 보러 가는 거 좋아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적어도 '모르겠다'라는 진짜 아무도 모르겠는 답을 하고 싶진 않았다. 새로운 것엔 항상 '당연하지!'라고 외치는 나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가시죠." 하고 답을 보냈다. 척하면 척. 뒤질세라 1분 후, 언니로부터 렌터카를 예약했다는 알림이 떴다. 


나오라는 카페 앞에는 정말 예약했다는 차가 서있었다. "헤이~ 언니~"

화요일 저녁, 별 보러 가자는 언니의 한 마디에 24시간 동안 함께할 우리의 차박 캠핑카 레이에 올라탔다. 

밤에는 추우니까 수면양말에 편하게 슬리퍼 신고 와도 된다고 하여 슬리퍼까지 꼭 신고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이번 여행이 슬리퍼만 신고 다녀온 첫 여행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먼저, 맥도널드 드라이브 스루에서 슈슈 버거를 픽업해 후다닥 저녁을 해치웠다.

"언니, 별 보러 강원도 어느 쪽으로 가는 거야?"

"사실 나도 진짜 몰라. 누구 따라갔다가 길만 익힌 곳이야 ㅋㅋ"

목적지도 가르쳐 주지 못하는(?) 이 미스터리한 '스타 로드트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차로 1시간 반 정도의 '강원도에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달리는 동안,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언니는  나보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어떻게 보면 언니가 14살 중학생 때, 내가 태어난 셈인데 

역시 경험의 축적은 무시할 수가 없다. 내가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들과 고민들은 언니를 한 번씩 거쳐간 것들이었다. 더 큰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언니와의 대화는 힐링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나이에 대해서 자꾸 언급을 해서 언니는 싫어하겠지만, 난 왕언니라는 존재 자체를 좋아한다. 그냥 이름만 들어도 포근하고 든든하다. (언니 미안 ㅋㅎ)


점점 차도 없어지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더니,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흙구덩이들이 쌓여있는 공터에서 차가 멈췄다. 

"여기에요?" 

"응!"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주황색 불빛의 가로등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고개를 가로등 쪽으로 돌려보니 뜬금없이 서있는 표지판에는 '물놀이 금지구역'이라고 적혀있었다. 

"앞에 물이 있어?"

 "응!"

언니는 씩씩하게 차에서 내리더니 차박 할 준비를 하기 위해 좌석을 뒤로 눕혀 시트를 척척 해체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땅이 끊겨 보였다. 그 이후에는 검은색이었다. 낭떠러지 같았다. 굉장히 높은 산에 올라온 듯했다. 우리말 곤 아무도 없었다. 우리 뒤에는 불이 꺼져 있는 수련회 캠프 빌딩이 있었다. 새벽 12시였다.


"아니, 언니. 여기라고?" 잔뜩 겁에 질린 나는 언니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칠흑 같아야 별이 보이지~"


나는 밤공기에 척척히 젖은 흙을 밟고 있는 두 발을 쉽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내가 어둠 속에 덩그러니 놓여 꼼짝 못 하고 있을 때, 언니는 차 안을 이미 침대로 만들어 놓은 뒤, 준비성 있게 가져온 택배 상자들을 진흙땅 위에 턱턱 올려놓으며 우리가 누울 자리를 차 앞에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몇 번 와본 사람이어도 이 어둠을 뚫고 척척박사처럼 다 세팅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이 끝나자마자 돗자리 위에 올라오라는 시늉을 하며 "자, 이제 눕자!" 하고 누워버리는 언니. 내 수족냉증도 새벽 공기에 덩달아 피크를 달리며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냥 차에 눕고 싶었지만은, 나는 마지못해 휴대폰 플래시 불빛으로 겨우 겨우 시선을 밝혀가며 같이 돗자리를 펴고 천천히 쿠션을 놓았다. 이따금씩 "호오오오우 --" 하고 울려오는 새소리인지, 뭔지 모를 하울링이 고요를 깨뜨리곤 했다. 침착하게 무서움을 감추면서 언니의 블루투스 스피커에 폰을 연결해 익숙한 노래들을 재생시켰다. 


"어여 누워봐!"


차가운 돗자리 밑에 깐 박스는 신의 한 수였다. 안 가져왔으면 누워있는 내내 큰 돌무리들에 척추뼈가 아팠을 것이다. 찬 기운이 남아있는 돗자리를 조금이나마 데펴줄 수면 담요를 덮으며 눕는 순간, 내 눈을 가득 채운건 진한 남색의 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이었다.


허..?....!


"흐흐 그래~ 이 정도는 껌껌해야 이렇게 다 보이지~"


언니는 마지막 휴대폰 플래시 한 줄기까지 껐다.

정말로 무서웠던 칠흑 같은 어둠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묘한 순간이다.

너무 현실적이지 않아서 천문과학관의 누워서 관람하는 돔 영화관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별이 너무 잘 보여서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동화책에서만 나올 법한 쏟아지는 별들의 모습이라 내가 보는 것이 진짜인지 의심하기 바빴다. 그렇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것보다 더 실감 나는 것은 없었다. 하늘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별들은 더 많아지는 듯했고 하늘도 분명한 검은색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나의 검은색과는 확연히 다른 회색빛, 남청색빛 등 그라데이션을 띄기도 했다. 그저 황홀했다. 23년이라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기간 동안 처음 느껴보는 황홀함이었다. 몰랐다. 이렇게 많은 별들이 내 곁에 떠있었는 줄은. 황홀함에 가득 차 아무 말도 못 하고 한참을 바라보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언니도 똑같은 마음이다. 활짝 웃고 있다.


"저게 북두칠성이다!"


천문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나도 북두칠성만큼은 알았다. 드디어 내 눈으로 봤다. 생각보다 컸다. 

가장 밝게 반짝이는 별도 찾아보고, 너무 작게 빛나고 있어서 거의 안 보이는 점들도 유심히 바라 봐주었다. 이렇게 먼 거리의 무언가를 본 적이 드물어 눈이 적응을 못해 어느 순간 검은색 도화지에 작은 바늘구멍들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청색의 별빛이 수 놓인 반찬 덮개 안에 놓여 있는 소시지 반찬이 된 듯한 상상력도 발휘해보았다. 언니는 빵 터지더니, 

"아니면 이 수면 담요가 오므라이스의 계란이고 우리는 덮여있는 밥일 수도 있겠네!" 하면서 슬쩍 수면 담요를 내쪽으로 더 밀어 덮어준다. 언니 옆으로 더 바짝 몸을 붙였다. 그냥 이 상황 자체가 웃겼다. 정말 반찬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곧 하늘 위에 누군가가 덮개를 곧 들어 올려 우릴 확인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주 잠깐 그게 할머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웃어버리고는 한참 동안의 고요함이 찾아왔다. 별똥별도 세, 네개는 더 떨어졌다. 서로는 각자가 보고 싶은 별들을 눈에 꼭꼭 눌러 담았다. 눈을 감아도 나타날 수 있게 차곡차곡 담았다. 이 풍경은 감히 인공적인 것들, 예를 들면, 내가 가지고 있던 휴대폰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다고 담길 풍경이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내가 보는 그대로를 절대 담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담았다.


"언니, 고마워."


언니는 여전히 웃고 있다.

나는 눈물이 흘렀다.

괜스레 저 많은 별들 중 어떤 별이 할머니 일까도 생각해보았다.


"저 별들은 아마 수억 년 전에 미리 가서 반짝이고 있었을 거야. 근데, 우리는 지금 그걸 보고 있는 거고~"


그냥 뭔가 슬퍼졌다. 

어쩌면 별과 별똥별은 우리네 곁에 항상 떠있을 수도 있다. 떠있지만 보이지 않는 낮에도 최선을 다해 반짝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몰라 봤다. 이토록 눈물 나는 아름다움을. 빛 공해가 심한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별들을 만날 공간이 없다. 

전에는 하늘을 보면서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겠지? 기술이 많이 발달하면서 하늘이 천장으로, TV로, 그리고 요즘은 손바닥만 한 작은 디지털 스크린으로 점점 우리의 '하늘이' 작아지고 있다. 하늘의 별들을 보려면 이제는 특별히 '잘 보이는 곳'으로만 떠나야 한다. 


이문세/김광석/김현식 에쎈셜 플레이 리스트를 틀었다. 언니와 내가 공유하는 게 비슷한 입맛 말고 또 있다면 노래였다. 나는 내가 살아보지도 않았던 시대를 그리워하며 그때를 간직하고 있는 노래들을 좋아한다.

노래들이 돌고 도는 동안 한참을 들여다봤다. 


"나 이제 추워! 차에 들어가자."


사실, 언니도 수족냉증이 있었다. '별의 맛'을 안 언니도 추위의 한계가 왔다.

우리는 차 안으로 다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신기한 건, 지금까지 몇 시간을 하늘만 봤는데 그래도 아쉬웠다. 

잠들기까지 오래 걸리는 나는 자기 전에 생각을 제일 많이 한다. 하지만, 오늘만은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모든 생각을 쏟아내기도, 단상조차 하지 않을 수 있는 '이너 피스'의 순간을 가져서 그런지, 차에 눕자마자 잠에 들었다. 


"민근아, "

언니가 나를 깨웠다. 아까와는 다른 좀 더 밝은 색의 하늘이었다. 

"너 아까 내가 들어가자고 해서 아쉬워했잖아. 지금 별이 더 많이 보여."

눈을 비비며 제대로 일어나 하늘을 보니, 또 다른 황홀함이다.

하늘은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감정을 준다. 그래서, 참 좋다.

점점 하늘이 그러데이션의 푸른 회색빛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정말 여인의 눈썹같이 정갈한 초승달이 나무에 앉아 있다. 조금 뒤, 닭이 울었다. 달의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 별들이 있었던 쪽을 돌아보니 없다. 별과 달은 함께 할 수 없다.


별을 보러 오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별은 아무 때나 잘 보이는 게 아니라는 사실.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달과 별은 함께 할 수 없다. 그래서, 정월 대보름, 즉 달이 꽉 찼을 때는 별이 잘 보이지 않거나 늦게 뜬다. 별을 보려면 날짜를 잘 맞춰야 될뿐더러, 날씨도 맑아야 했다. 그 두 박자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날에는 새벽 세, 네시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별들이 나타나 준다고 한다. 새벽 1-2시에 가장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던 그 완벽한 날이 오늘이었다. 어쩌면 언니는 즉흥이 아니라, 즉흥을 가장한 철저한 계획을 했을 수도 있겠다. 언니에게 참 감사했다. 나에게 이런 황홀함을 선물해주어서. 그 당시, 우리는 사랑했던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한 상태였고, 곧 드림 하우스를 떠나는 사람들이었다. 허전함과 공허함에 적셔 있었던 나는 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괜찮다는 것을 언니로부터 배웠다. 별을 보면서 기억하고, 행복한 감정들을 듬뿍 느끼고 오면 되니까.  이 '즉흥' 여행 이후로 '즉흥'과 별의 맛을 보았다. 나는 '원래'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난 정말 '원래부터' 즉흥으로 별 보러 가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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