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밀리아-로마냐 Emilia-Romagna
“초라한 안식처지만 시의 운율과 사랑의 찬가 속에서 나는 대공(大公)처럼 지낸답니다.”
(In povertà mia lieta scialo da gran signore. rime ed inni d‘amore...)
- 로돌포의 아리아 '그대의 차가운 손'
1961년 4월 29일, 이탈리아 레조-에밀리아의 시립극장. 무명의 신예 테너가 오페라 <라 보엠>의 아리아 '그대의 차가운 손 Che gelida manina'을 부르며 자신의 데뷔 무대를 갖고 있었다. 그 입에서 흘러나온 찬란한 미성은 작은 지방도시의 오페라하우스를 단숨에 영험한 예술의 신전으로 바꿔놓았다. 연신 터져 나오는 청량한 고음에 객석은 한숨 섞인 환호를 쏟아냈고, 아리아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브라보’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날의 기록은 놀랍게도 오디오 테이프로 남아 지금 우리도 들어볼 수 있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날이었다.
파바로티는 1935년 이탈리아 중부 에밀리아-로마냐의 도시 모데나(Modena)에서 태어났다. 그가 데뷔한 극장은 바로 옆 동네 레조-에밀리아(Reggio-Emilia)에 있다. 두 도시 모두 유명 관광지는 아니지만, 수많은 마에스트로들과 세계적인 명품의 탄생지다. 엔초 페라리와 스테파노 모데나 등 모터스포츠의 전설들이, 우리 시대의 스타 셰프 마시모 보투라 등이 모데나 태생이고, 무엇보다도 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드높게 빛나는 두 개의 별 -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가 같은 해,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같은 유모 밑에서 자라났다. 지금도 이탈리아에서는 이 둘을 '분유 자매(Sorella di latte)'라고 부른다. 레조-에밀리아는 막스마라의 창업주 아킬레 마라모티의 고향이며, 그의 가족들이 지금도 근교 언덕 위 테라코타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 동글동글 앙증맞은 모양새와 화려한 원색이 조화로운 모더니즘 디자인의 대명사 스메그 냉장고의 탄생지도 여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두 도시는 에밀리아-로마냐 미식의 가장 핵심적인 순례지이기도 하다.
흔히 서쪽의 파르마(Parma)에서부터 동쪽으로 이어지는 세 도시, 즉 파르마, 레조-에밀리아, 모데나 일대를 '푸드 밸리'라 부른다. 전 세계 미식가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최고의 식재료들이 전부 다 여기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돼지 뒷다리를 응달에 건조 숙성시켜 햄으로 만든 프로슈토 디 파르마(Prosciutto di Parma), 경성 치즈의 황제에 해당하는 파르미자노 레자노(Parmigiano Reggiano), 오크통에서 수년간 공들여 숙성시킨 와인식초 아체토 발사미코(Aceto balsamico di Modena) 등이다. 하나같이 장시간의 발효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며, 깊고 그윽한 풍미를 자랑한다. 여기엔 지역 특유의 미세기후가 큰 도움을 준다. 남서쪽에 병풍처럼 늘어선 아펜니노 산맥과 동북을 흐르는 포(Po) 강 사이에는 일 년 내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포근한 이불처럼 대지를 감싸는 부드럽고 습윤한 안개 또한 작물의 생육과 발효식품의 숙성에 비할 바 없이 심오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이 '푸드 밸리'를 관통하는 최고의 미식 순례지로 두 군데를 뽑고 싶은데, 우선은 마냐갈로(Magnagallo)로 시작하자.
Post 1. 마냐갈로 Magnagallo _ 영혼을 달래주는 곳
“와, 드디어 마냐갈로 예약했어!” 친구 프란체스코가 들뜬 톤으로 외쳤다. 그는 우연찮게 만나 십 수년째 한결같은 살가움을 자랑하는 나의 절친이다. 볼로냐에서 태어나 지금은 레조-에밀리아에 살고 있는데, 이탈리아를 찾을 때마다 주변의 최고 맛집과 비밀스러운 식재료 등을 알려주려 동분서주를 마다하지 않는다. 언젠가 부활절 즈음에는 아예 스케줄을 비워놓고 레조-에밀리아에 2박을 머물며 비상대기(?)를 타라는 ‘명령’을 하달하기까지 했다. 엄청난 식당이 하나 있는데 거기 예약이 만만찮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주말에는 아예 자리를 못 잡았다. 월요일 점심에서야 간신히 테이블 하나를 마련할 수 있었으니, 이 동네 모든 사람들의 워너비 레스토랑 ‘마냐갈로’이다. 100퍼센트 전통식 에밀리아 요리가 옛날 형태 그대로 나오는 곳이라고 한다.
월요일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지만 꽤 넓은 이 식당은 미식에 굶주린 현지인들로 이미 만석이었다. 프란체스코가 전채부터 주문하기 시작한다. “뇨코 프리토와 모둠햄을 먼저 주세요.” 뇨코 프리토(Gnocco Fritto)? 뽀얗고 노란, 황금색 자태에 지극히 본능적인 달콤함을 풍기는 밀빵이 짭짤한 프로슈토, 모르타델라 등 이 지역 최고의 염장 햄들과 함께 큰 접시 가득히 서빙되어 나왔다. 손으로 빵을 절반으로 가른 후 거기에 살포시 햄을 넣으면 탄수화물의 달콤함과 햄의 진득하고 짜디짠 지방질이 뒤섞이며 뭔가 형언할 수 없이 글래머러스한 감각이 미뢰 전체를 뒤흔든다.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게 뭐야 도대체?’라고 묻자 프란체스코가 씩 하고 웃는다. 뇨코 프리토의 달콤한 황금색은 그만의 비밀이 있었다. 아직도 미국 요리책에는 올리브유에 튀긴다고 나와있지만, 현지 요리사들은 돼지기름 라드에 튀긴다. 이미 일부 지구촌 사람들에게는 금단의 식재료로 찍힌 라드지만, 당연히 이걸쓰면 엄청나게 맛있다. 되직한 동물지방 오일에 아침부터 손수 빚은 싱싱한 수제 밀빵을 노란빛이 제대로 돌 때까지 튀겨낸다. 거기에 수 십개월을 느릿하게 숙성한, 깊고 농밀한 느낌의 염장 햄을 양껏 싸서 먹다니. '에밀리아의 콜라' 람브루스코 와인으로 입가심만 한번씩 해주면 하루 온종일도 먹을 수 있겠다. 세상에나, 그래서 이 동네 사람들을 ‘라 그라싸’(La Grassa, 뚱보)라고 부르는구나!
곧이어 이 식당의 시그니쳐, '이탈리아식 만둣국' 토르텔리니 인 브로도(Tortellini in Brodo)가 나왔다. 말해 무엇 하나. 담백함, 느끼함, 깊이와 부드러움이 조화롭게 뒤섞인 한 접시의 따뜻한 국물요리가 긴 여정에 지친 내 마음을 쓰다듬고 지나갔다. 장탄식 외에 딱히 무슨 말이 필요 없는 음식이었다. 프란체스코가 갑자기 콧등을 씰룩거린다. 아들 쟈코모가 이 요리를 꽤 좋아하는데, 마냐갈로는 예약이 힘들어 한 번도 못 데려 왔다고 한다. '다음번에 꼭!'을 다짐하는 아빠 프란체스코. 그래, 나 또한 을지로와 광화문의 오래된 맛집으로 어머니를 자주 모시고 다니곤 했다. 그때마다 만석이면 어쩌나, 혹시나 입에 안 맞아 못 드시진 않을지 노심초사 걱정도 되었고, 다음엔 또 어디로 모시고 가나 고민도 했었다. 사람살이는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았고, 음식은 결국 '사랑'이었다.
Post 2. 아르날도 Arnaldo _ 에밀리아식 향연
나름 차분하고 쿨한 젠틀맨 프란체스코가 매번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식당이 또 하나 있다. '리스또란테 끌리니까 가스트로노미까!(Ristorante Clinica Gastronomica)'. 기름진 바리톤풍 목소리로, 이탈리아어 특유의 각운을 한껏 연극적으로 발음하는데, 여기 안 가보면 정말이지 무슨 대역죄인 취급받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하도 요란하고 거창하게 이야기하길래, 처음엔 살짝 거부감까지 들었다. 게다가 식당 이름이 '미식 클리닉'이라니. 이 동네 신세대 셰프들이 에밀리아 사람들의 뱃살에 가득 찬 기름기를 쫘악 빼준다는 뭐 그런 컨셉인가? 무슨 엄청난 아방가르드 요리만 쏟아지는 곳 아냐? 나의 심드렁한 반응에 그가 펄쩍 뛴다. 아니, 이 동네에서 가장 전통적인 레스토랑이란다. 무려 엔초 페라리의 단골집이었다나.
식당의 정식명칭은 아르날도(Arnaldo)이며, '클리니카 가스트로노미카'는 별칭이다. MSG 등에 찌든 현대인들의 혀를 재교육하는 미식 클리식 이런 게 아니라, 예부터 모데나 종합병원의 의사 선생님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 별명이 그냥 그렇게 붙었단다. 1959년 이탈리아 최초로 미슐랭 원스타를 얻었고,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황금독수리>(Aquila D'oro)라는 이름의, 15세기 저택을 개조해 만든 호텔 안에 위치한 식당이다. 현지에서 읽은 농담 섞인 소개문은 이 식당의 요리만큼이나 벌써부터 풍성하고 재밌다. "1936년부터 식욕 부진 환자, 위장 문제로 주의가 산만해진 환자, 건망증이 있는 환자를 전통 요리로 치료해 왔습니다." (Arnaldo cura i malati di poco appetito, i distratti alle ragioni dello stomaco, gli smemorati della cucina tradizionale dal 1936.)
1959년 미슐랭 가이드의 평가는 이랬다고 한다.
"아르날도는 실험적이거나 지적인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순수한 에밀리아 전통의 정통하고 맛있는 식사를 찾고 있다면 이곳이 바로 정답입니다."
모든 음식이 유명하지만, 그래도 두 가지만 꼽자면 라자냐와 모둠 수육 트롤리다.
제대로 차려입은 카메리에리들이 세상 모든 종류의 고기를 한가득 담은 트롤리를 끌고 온다. 아니, 이 사람들 표현 그대로를 직역하는 게 가장 실감 날 것이다. '삶거나 구운 수많은 고기들의 마차!'(il carrello dei bolliti e degli arrosti)
'고기 마차'의 구성은 대략 이렇다. 송아지 머리, 소혀, 소꼬리, 소 뽈살, 수탉, 프로슈토 등을 특제 육수에 푹 삶는다. 코테키노와 잠포네 등 모데나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수 소시지도 빠지지 않는다. 돼지등심을 올리브 오일에 튀기듯 로스팅한 후 바롤로 와인에 푹 담가서 풍미를 극대화한 요리도 인기 만점이다.
트롤리 형태의 서빙을 고안한 건 창업자 아르날도 본인이었다고 한다. 손님들한테 가장 따뜻하고 푸짐한 형태로 고기를 맛볼 수 있도록 모데나의 장인에게 '고기 마차'의 특별제작을 부탁했다고. 묵직한 고기 요리들과 어울리는 다양한 종류의 곁들임 소스가 제공되어 기쁨을 더한다. 아마 이 세상에서 제일 복잡하고 다양하며 풍성한 수육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일 것이다.
파스타도 엄청나다. 셰프인 로베르토 보테로와 부인 라모나 아스톨피 그리고 모든 요리사들이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그날 사용할 면을 손으로 직접 뽑는다. 특히 에밀리아 지방의 밀은 남부에 비해 부드러운 걸로 유명한데, 이 탄력 있고 포근한 질감의 수제면으로 토르텔레니, 탈리아텔레 등 맛있는 파스타들을 만든다.
그리고 또 이 식당만의 '치명적인 한 접시'가 있다. 라자냐 스푸뇰라타(Lasagna Spugnolata). 아펜니노 산맥에서 채취한 최고급 스푸뇰라타(모렐 버섯, 곰보 버섯) 소스가 토핑으로 들어간 라자냐다. 모렐 버섯의 제철인 봄에 맛볼 수 있고, 가을이 되면 포르치니 버섯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공정'은 대략 이렇다. 그날 아침 작업해 둔 생면 반죽을 물에 삶는다. 베샤멜소스를 만들고, 필링용 고기는 전날 사용하고 남아 한껏 걸쭉해진 '모둠 수육'을 잘게 다진다. 파스타 반죽, 고기 필링, 소스를 겹겹이 올리고 층층이 파르미자노 치즈를 뿌린 후 오븐에서 굽는다. 마지막으로 볶은 양파, 토마토 퓌레에 모렐 버섯을 소테한 녹진한 소스를 그 위에 뿌려주면, 상상하기 힘든 진한 풍미의 - 동시에 몹시도 우아한 - 라자냐가 탄생한다. 이건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맛이다. 마치 에밀리아-로마냐의 대지 전체를 한 접시에 응축해 표현한 것 같다.
이 기름진 음식들을 유달리 사랑한 남자가 있었으니, 저기(모데나)서 태어나 여기(레조-에밀리아)서 데뷔한 루치아노 파바로티였다. 그가 사랑했던 식당들 그러니까, 마냐갈로, 아르날도 등이 모두 다 모데나와 인근 레조-에밀리아 사이에 늘어선 ‘고향의 맛집들’이다. 엄청난 양의 튀긴 빵과 프로슈토,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파스타를 마구 먹으며 자랐다는 파바로티. 그래서 그 목소리가 그렇게도 기름지고 찬란했던 것일까?
그는 원래 회계사나 고교 교사를 꿈꿨다. 아마추어 테너였지만 직업적으로 제빵사였던 아버지 페르난도 파바로티조차 아들이 불안정한 예술가의 삶을 살기보다는 안정된 생활인의 길을 걷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곧 파바로티의 ‘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태양의 세례를 잔뜩 머금은 이 찬란한 테너에 대한 소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밀밭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 점차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퍼져 나갔다.
데뷔를 고향 모데나가 아니라 레조-에밀리아에서 한 것도 사연이 있다. 원래 <라 보엠>에 출연할 예정이었던 당대의 슈퍼스타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건강상의 이유로 공연을 취소했다. 관객들은 격분했다. 그때 누군가 옆 동네 모데나에서 기적과도 같은 미성을 지닌 젊은 테너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를 데려왔다. 아무 경력도 없었다. 심지어 오페라를 무대 위에서 불러본 적도 없는 청년이었다. 객석의 반응도 고울 리 없었다. 공연 전에는 짧은 야유도 들렸다. 그러나 무명의 이 테너는 첫 아리아 ‘그대의 차가운 손’ 단 한 곡으로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다. 마치 아르날도의 라자냐나 마냐갈로의 뇨코 프리토처럼.
친구의 권유로 모데나 주변에서만 이틀을 '비상대기'했다. 피렌체나 밀라노처럼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볼로냐에 비해서도 확실히 심심하다. 그러나 놀랍도록 아름답고, 가장 전통적인 미식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이틀간 실로 '대공처럼' 지냈던 것이다.
- 이탈리아 미식수첩 시즌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