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성스러운 의식을
산티아고
부르는 이름과 듣는 지명 만으로도 여행을 준비하고 기대와 성찰 속에 걸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산티아고를 걷는 것은 정해진 목표지점을 향하는 우리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물며 걷는 것을 평생 마음에 둔 이들에게는 인생의 목표가 되고 가슴 뛰는 첫사랑이 되고도 남는다.
그곳에 높은 산이 있거나 절경의 풍경이 있다면 걷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지만 그런 것도 소소하다.
이국의 풍경은 다소 색다른 감흥을 더할 뿐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왜 걷는 것일까? 걸으면 인생의 고통과 외로움이 사라질까? 삶의 번잡함을 덜어 낼 수 있을까?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서 걷는다고 했다. 걷는 행위가 이렇게 위대한 처방을 줄 수 있어 780km를 사유하며 걷지만 사람마다 행위의 정당성은 그들만의 몫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그들만의 산티아고는 있을까?
쓰는 이들은 저들만의 기쁨으로 산티아고를 걸어가고 있을까? 산티아고를 걷는 여행객들의 결론 중에 이만하면 족하다는 결론을 들을 수 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인간의 한계점을 경험하지 못하면 완주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에필로그 전에 내리는 결론과 다르지 않다.
순례자는 성지를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그 길에서 그들의 신앙은 숭고한 의식과도 같다.
공항의 눈부심과 워킹화의 낯섦이 주는 비장함과 분명히 효용가치가 가득한 배낭의 무개도 그들의 기대를
낯설게 하지 않는다.
어느 유튜버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오래도록 새로운 길을 걸어가지로 했다.
그 사람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천천히 걸었다.
순례자들은 새벽에 출발해서 목적지까지 잰걸음으로 걸어와 휴식을 취하며 다음 계획을 세웠다
해지기 전에 도착하는 것은 순례자들의 루틴과도 같았다.
몸은 무거웠고 출발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으며, 다음목적지까지 도착하려면 새벽과
밤의 구분을 가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늘 같은 패턴으로 정해진 루틴을 벗어나 해가 지고 나서야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순례자가 분명했다. 이러면 왜 왔을까 싶었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더욱 낯설었다.
함께 걷는 사람이 물었다.
왜 이렇게 느려요? 그가 답했다.
길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서 그래요... 아까워? 처음 들어보는 생경한 대답이다.
함께 걷는 사람은 산티아고에 왜 왔는지부터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목적이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가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와 함께 걷기로 했다. 오랫동안... 천천히... 평생을 함께.
우리도 그들처럼 주어진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천천히 순례길을 걷고 있을까?
도곤 도곤한 마음을 다하는 순례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