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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매한 충전

나는 쉽게 방전이 된다

by 아키세라믹

나는 쉽게 방전이 된다

그러기 전에 나는 만 충전된 핸드폰처럼 페이지 넘김에 속도를 내기도 하지만 이내 방전이 되고 피곤해진다. 자동차 배터리의 수명은 한번 방전이 된 후에 완충을 하여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완충된 것 같으나 용량의 대부분은 망가진 상태로 대략 20% 정도만 충전이 되는 것이고, 20% 정도로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가 숨이 넘어가는 응급상황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맛이 가버린 나머지는 수면아래 잠들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객지에서 살아 돌아온 자식새끼처럼 반가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망가져 가는 배터리의 충분하지 않은 용량처럼 많이 지쳐있다. 크게 감동하거나 기대하거나 식사를 많이 하거나 잠을 많이 자거나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망가져 가는 배터리와 다르지 않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느낌을 깨닫지 못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피곤하면 앉아야 하는데 줄곳 서있기만 하고 누워야 하는데 눕지 않고 돌아 앉아야 하는데 돌아 앉지 못한다.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글을 쓸 때도 충분한 에너지를 느끼며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20%를 소진하고 쉽게 망가진다.

이제는 망가지는 이유도 다양해서 대표적인 것이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일까.


십 년의 도자기 공부는 또 다른 충전의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몰레 앞에 앉아 돌아가는 기물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선택한 충전의 시간에 나는 충분히 만족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족한 수면은 만족감으로 채워갔다


악화되는 건강을 되돌아보는 것은 사치스러웠다. 왜 이런 충전을 계속하고 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손목의 터널은 좁아졌고 손가락은 방아쇠를 당기는 기괴한 모양으로 변했지만 나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소도 잃고 외양간도 불에 타버린 참담함을 느끼는 것이라서

더욱 난감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행복했다. 불행한 나의 행동은 엄중하고 신선한 리추얼이었다.


급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는 시기였다. 우리는 은행의 잔고처럼 시간을 충분히 예금해 놓은 것처럼 사용했다. 그리고 한때는 은행의 잔고를 확인하지 못하고 사용한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충전은 우매하고 산만할 뿐 위로가 될 수 없는 조악한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잘못된 충전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명분만 아름다웠다.


인생을 충전하는 문제는 희망지수에서도 나타난다

희망지수를 너무 낮게 설정하면 보일러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춥다.


너무 높게 잡아도 보일러는 중간 쉼 없이 계속되기 때문에 적당한 온도를 조절하지 못하고 덥다

삶의 희망지수가 낮으면 어려운 일을 조우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래서 춥다


너무 높으면 기쁜 일과 만나지 못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삶이 계속된다. 많이 추웠다가 많이 더웠다가 희망 지수가 없어지는 불상사도 발생한다. 희망지수는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때로는 뜻하지 않게 찰랑거려서 넘치기 일보직전을 마주하는 것에 한 방울을 덜어낼까 더할까 를 마주하는 것이 삶이다. 고집스러운 충전이 병이 되는 순간은 어렵지 않게 온다.


남은 것을 되돌아보는 현명함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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