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키세라믹 Nov 14. 2024

난망한 딱지치기

이제 어쩌지 싶습니다

브런치를 준비하면서 저는 제안에 무한정의 응어리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글은 이런 응어리를 뒤집어 놓는 것처럼 힘을 주면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딱지치기처럼 말입니다.


최소한 반년정도의 이야기 꺼리는 숨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깊게 포개져 있을 거라고 자신했습니다.

평생을 소아마비로 불편함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약간 틀어진 각도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차별화된 삶은 노출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조실부모하고 로 시작하는 측은지심도 원고지 칸을 채울 거리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은 이렇게 독특한 거리를 바닥에 깔고 가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패, 아픔, 꺽꺽 소리 내는 울음등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어두운 색으로 겹쳐내는 것은, 삶을 위에서 아래로 삐뚤게 쓰는 습관처럼 보일뿐 낯 뜨거운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가득 찬 것 같은 글감은 삶의 좁은 입구를 틀어막고 정체를 보일뿐 가득 차 넘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얼굴 붉히고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마주한 저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쓰는 사람은 단어를 조합해서 생각하는 형태를 만들어 냅니다. 형태를 만들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에너지의 심한 고갈을 경험한 사람은 씀에 대하여 겁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에너지는 정해진 법칙에 따라 비워낸 자리를 온전히 채워줄 때 제 기능을 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그렇게 조악한 생각으로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만 믿고 제 멋대로 쓰기를 시작한 저는 앞길이 얼마나 난망한 것인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일기를 중간정도 쓰다가 오타가 밉고 보기 싫어서 떼어내고 싶은 곳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있는 부끄러운 기억을 지우고 싶은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떼어내면 마주하고 있는 다른 곳이 함께 떨어져 나가는 것을 모르고 씀의 시작부터 깨끗한 일기장에 잘난 저를 대상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덧칠하고, 잘라내고, 색칠하고, 평소에 하고 싶은 대로 과감한 분탕질도 서슴지 않고 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씀의 속도를 내고 색을 덧칠하고 나면 훌륭하지는 않지만 도드라진 펜자욱이 선명하겠지 했습니다. 


단어의 조합과 어휘는 사투리처럼 높낮이가 심해서 어지럼증을 더해가고, 생각은 입구를 막고 있던 가벼운 정체가 끝나고 바닥이 훤하게 들여다 보입니다. 


덜컹 거리는 사유의 소리와 부끄러움의 실체를 확인했으니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위로해 주시려나요?

이렇게 쉽게 태도를 전환하는 것은 의도된 씀이라고 질타를 받을까요?

많은 분들이 이런 롤러코스터를 다시는 꼴도 보기 싫다고 하셨다가 견딜만하니 또 타볼까 하셨을까요?

다상량 하면 치료됩니다, 그래도 쓰십시오, 혹은 악을 쓰며 견디기를 바랍니다. 하시려나요?


감기기운도 아닌 것이 몸살도 아닌 것이 처음에는 무기력하고 황망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오늘 궁금증을 가지고 언덕을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렵니다. 도곤 도곤 거리는 첫 경험 아닐까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사실 솔직한 마음은 이제 어쩌지 싶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