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카톡확인하고 전화 부탁해요.!
형제간에 만들어진 카톡을 확인해 보라는 동생의 말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카톡을 확인했다.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여동생의 카톡에는 병증이 악화되고 있는 어머니의 근황을 설명하고 있었지만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대면하고 설명한다면 활자로 표현하는 어려움 없이 표현을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짧은 카톡 내용에는 다급한 마음만 앞서 있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십 년 동안 아침마다 수영과 운동을 마치신 모습으로 단정하게 하루를 반복하셨던 분이, 스스로의 자존감에 생채기를 남기는 것은 내가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선을 넘어 있었다. 당사자는 지금의 상황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계실까?
"왼쪽 뇌의 신경망이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하면서 언어와 공간 지각력을 상실해 가는 거 같아요"!
일상적인 대화는 가능하지만 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시고 반복해서 다른 말을 하시는 것 같았다. 진료비와 다양한 검사비를 아버님의 연금에서 지출하고 있었지만 부족했을 것이다.
아버님의 연금 통장을 동생에게 주셨다가 다시 되돌려 받는 행동을 반복하셨으며, 넘겨주신 통장을 찾아야 한다고 힘들어하시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반복해서 옷을 갈아입으시고 갈아입으신 옷 위에 덧입으시고 내려가지 않는 옷을 내려달라고 하시고"....
동생의 카톡은 길게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놓았던 말들이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더해지고 있었다. 오 남매 중 어머니와 같은 아파트에서 지내는 여동생이 어머니와 생활을 함께 하고 있었다.
다른 형제들도 같은 도시에 함께 있었지만 남동생과 여동생이 가까이 있어 어머님을 모시고 있었다.
어머니의 병증은 생각보다 짙은 갈색으로 시간을 재촉해 서둘러 물들고 있었다. 이렇게 빠르게 상황이 악화되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삶의 변화가 항상 정상적인 예측일 수는 없지만 우리는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될 수는 없어도 내려앉기를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난고난한 고통으로 감내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준비가 되기를 기다려주는 일이 우리 삶에 얼마나 있을까. 나는 당황스러웠다.
어머니와 나는 14년의 차이를 두고 만났다.
우리는 이방인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서툴고 어색한 단문으로 소통했다. 서로 특별한 요구는 없었고 자신의 방식대로 상대방이 이해할 것이라는 완고한 믿음 속에 있었다.
때로는 일관된 평행선을 만들어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내밀하면서 어색한 교차점을 만들지 않았다.
모든 상황은 서로가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 됐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은 기준을 찾기 어려워서
구분하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어머니는 그 선 안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분명하게 하셨지만 내가 그린선도 보기보다 깊었다. 때로는 우리의 관계가 어색하고 혼란스러웠지만 분명한 기준선은 높은 담보다 더 높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당신의 높은 벽보다 나의 더 높은 벽이 존재했다는 것을 나는 부인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미리 알고 계셨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어머님이 모를 리 없었다.
깨지기 쉬운 살얼음판을 건너는 무모함을 감수하면서 서로 그 중심에 서있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어머니도 알고 계셨고 나도 알고 있었다. 그 정도의 선에서 멈추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서로 상처일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멈추어야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기준은 자기 방어 기전과 가족의 안녕을 위한 단순한 노력이 더해지면서 우리의 헤게모니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갔을 뿐 구분선이 겹치는 부분은 없었다.
다만 우리가 간과했던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채기는 고통 속에서 회복되고 반복하면서 치유가 된다는 것을, 어쩌면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근원적인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모른척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전에 걸음을 멈추고 그 안에 들어서지 않았다. 내가 건너지 않았는지 어머니가 그 길을 외면하셨는지 알지 못한다. 어머니와 나는 우리라는 관점을 앞에 놓고 지금까지 말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그렇게 말하는 대화의 스킬을 알지 못하거나 그렇게 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지도 모른다.
필요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이유일 수도 있다.
나는 어머니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도 내게 원하시는 것이 있을까?
다급하고 심각한 병증으로 고생하시는 분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이며, 우리가 평생 하지 못했던 말들과 요구사항이 왜 허망한 세월을 건너와 조붓한 골목길을 어색하게 걸어가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올려보지 못했다.
나는 그 이전에도 지금도 어머니의 향기를 모른다. 딸들에게도 알 수 없는 것을 알려주지 못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억 속으로 내가 걸어가야 하는 이유는 나의 기억도 당신의 기억처럼 혼돈의 세월을 지나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멀지 않은 날에
모든 일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