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로 놓았던 식탁을 가로로 돌려놓고 우리 부부는 마주 보지 않고 옆에 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부끄러운 관계는 마주 앉아 입가에 묻은 흔적을 닦아주며 밥을 먹는다고 했던가요?
우리는 옆에 나란히 앉아서 거실 밖 경치를 바라보고 식사를 하고 책을 읽고 고개를 돌려 말하지 않고
서로 바라보던 습관을 벗어나 입가에 미소를 더하고 눈을 흘기면서 한때를 보냈습니다.
서재가 된 식탁과 식탁 같은 서재가 우리를 품어 안고 있는 모습은 오랜 인연처럼 우리를 도곤도곤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세로에서 가로였다는 것이 새삼 놀랍습니다.
아내는 커튼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풍경을 감상하고 식사를 하자고 합니다. 눈이 쌓인 길가를 지나가는 자동차가 점으로 보이는 우리 집은 이십 층의 탑층입니다 그래서 차가 점으로 보입니다.
물론 지나가는 차가 점으로 보이는 것은 오 년 전부터입니다. 식탁이 오 년 동안 세로였다가 가로가 된 것은 처음입니다. 이런 것을 애정의 눈으로 새삼 유난을 떨고 바라보는 것은 어폐가 있습니다.
아내는 요즘 유튜브에 집중하고 저는 문장과 어휘력을 찾아서 작가님들을 만나고 다니느라 서재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남남처럼 대면하는 시간이 무감해지려는 때였습니다.
이러구러 무심하고 덤덤한 시간이 평범하게 지나가는 때에 명절을 맞이했습니다. 출가한 아이들과
그들의 짝지들이 함께 하려니 둘만 있던 공간이 비좁아 보였습니다.
모두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려고 식탁을 여러 해 놓여 있던 자리에서 가로로 돌려놓고 식사를 하면서 세로에서 가로가 된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해낙낙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우리는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가로로 놓인 식탁이 낯설지 않고 깨끔하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내밀한 즐거움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대로 놓아두고 아내와 도서관 모퉁이의 빈자리를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뛰어가 가방을 놓아두는 것으로 자리를 잡아 놓은 셈이랄까요?.
오늘도 우리는 맛집에 갔다가 도서관에 앉았다가 작은 카페에 갑니다. 아내하고 연애하던 시절에 자리를 옮겨가며 즐거움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행복하니 괴이한 즐거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내는 성경책을 읽으며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하면 조용한 도서관의 질서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작은 목소리로 아는 만큼의 답을 합니다.
우리는 마치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발견한 것처럼 내일도 이 자리에서 만나기를 약속합니다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내일은 조금 서둘러 나서야겠습니다. 아내를 기다리는 수고를 덜기 위해 큰소리로 부르고 만나기를 청해볼까 합니다.
도서관의 책상을 반으로 갈라서 내 자리와 아내의 자리를 구분하고 넘어오면 아내의 연필을 돌려주지 말아야겠습니다. 유치 찬란한 우리의 행동을 보는 사람도 없어서 거리낌이 없어서 즐겁습니다.
오늘은 아내가 하루 유숙하고 온다면서 딸의 집에 갔습니다
우리의 유치 찬란한 헤게모니 쟁탈전은 하고 싶어도 내일이 지나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내와 저는 아마도 오래전부터 말하지 못한 비밀을 간직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함께 앉아 책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하는 평범하지만 내밀한 비밀을 말하지 않고 간직하고 왔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기분 좋은 데이트를 약속도 없이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우리의 꿈은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게 분명합니다. 함께한 여행 속에서도 가로는 있었겠지만 그때는 가로가 우리를 흥분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오늘은 점심에 아내가 끓여준 국수를 초등학교 짝지처럼 함께 앉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도곤도곤:두근 두 근의 옛말
해낙낙하다:마음이 흐뭇하여 기쁜 기색이 있다
이러구러:이럭저럭 일이 진행되는 모양/이럭저럭 시간이 흐르는 모양
깨금 하다:깨끗하고 아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