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 담지 못한 생각입니다
1. 우체통
제가 거주하는 곳에 우체통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인터넷에서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체통의 위치를 친절하게 점으로 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저만 신기한 것이겠지요.
삶의 변화는 쳇지피티에서부터 동네 우체통의 위치 확인까지 다양해져 갑니다.
소리를 전하는 것은 쉽지만 소식을 전하는 것은 어려워졌습니다.
물론 이러한 전통적 방식보다 깨끔한 방식이 차고 넘친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다만 붉은 우체통은 검정교복의 단추처럼 그리움의 다른 표현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저도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님들이 지나는 곳에는 우체통이 있던가요?
2. 오호라~~~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님들은 한주의 주말이 유독 짧은 이유를 알고 있나요?
누군가 주말이 짧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평일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 일이고, 주말은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이라 짧다고 하더군요. 꿈보다 해명이 좋은 답이지만 한참 생각했습니다. 오호라 그렇구나
3. 해해 낙낙
저는 질문을 했을 때 답이 없으면 유독 화가 납니다.
분명히 들었을 것인데 나를 무시하던지 질문이 어려워서 그랬을 것 같다고 단정 합니다.
그러면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면서 되묻습니다. 무시당했다는 깊은 좌절과 함께 말입니다.
되돌아온 답은 답이 없는 질문을 했다네요.
질문도 질문 같은 질문을 해야지 꼭 저 같은 질문이랍니다.
제가 어때서요? 걸음걸이도 말방말방 하니 찬찬하고 좋은데 말입니다 ㅎㅎ
4. 독서용품
독서용품이란 것을 들어보셨나요?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물건이라네요 책을 읽으면 되고 책이 있으면 그만이지
책을 읽을 때 필요한 물품은 마치 커피 마실 때 필요한 물품, 버스 탈 때 필요한 물품처럼 낯설기만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나와 무관하지만 이름표를 달고 처음 등교하는 초등학생과 같은 모습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볼 때마다 오호라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5. 태도의 변화
이제는 분초의 시간으로 살아야겠구나 싶습니다.
재주가 좋아 늘리고 덧대는 삶을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보이는 것은 채색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질문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삶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충분히 느껴집니다.
태도의 변화를 느끼며 놀라기 시작했거든요.
이게 뭐야 이게 뭐야 를 반복하는 어린아이와 같아지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한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꿈결 같아 좋습니다.
6. 까끌한 글쓰기
독서와 씀의 시작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빠른 시간에 에너지의 고갈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고3수험생이 이런 경험 속에서 살고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들썽거리는 것을 스스로 멈출 수 있었지만 그들은 당뇨환자의 저혈당을 지속적으로 느끼며 알 수 없는
내밀한 경험을 계속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까끌거리는 글쓰기는 아마도 출구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넘어 두려움에
가까워졌습니다.
작은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부끄러움은 제모습을 비틀어 군색해져 갔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공력의 힘은 다하고 위무의 노력은 힘없이 내려앉는 것을 바라볼 힘도 없으니 말입니다.
7. 견고한 확신
분명해 보이지 않는 사물을 그 사람은 안경을 탓하고 있었습니다. 안경을 다시 벗어 닦고 또 닦았습니다.
시력에 이상이 생긴 나이를 인정하기 싫은 것은 그 사람의 성향과 비슷했습니다.
매우 고집스러울 뿐 아니라 판단은 나름의 기준이 분명하고 명쾌합니다. 그래야 편했으니까요.
빠른 결정은 더욱 견고한 확신으로 단단해졌습니다.
자신의 판단이 흔들릴 수 없다는 것을 대변하듯 동판 위에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일 더하기 일은 삼이라고
이치에 맞지 않는 글을 씁니다. 그러든 말든 그는 늘 용감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안경 때문이라는 믿음이 곱다랗게 쌓여가는 시간을 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8. 무제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것을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있을까요?
님들도 그런가요?
9. 신중한 선택
다른 사람의 삶에 공연한 참견으로 쑥스러운 고마움에 놀라지 말고 너와 나를 구분해서 살았으면 싶습니다.
참견은 구분하는 분명한 능력을 소유한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때로는 봉숭아 물들인 손끝처럼 선명해서 잘 지워지지 않는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첫눈을 마주 할 때까지 손끝의 붉은 선택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어쩌다 그 선택은 여러 번의 첫눈과 마주 할 수도 있습니다. 붉은 선택이 신중해지는 이유입니다.
오늘은 그런 일 저런 일 없이 행복했으면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