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속이 좋지 않았다. 특히 오전에는 그냥 퍼져 있었다. 날씨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심적으로 너무 피로하다. 그래도 한 주간 스터디도 안 하고 과제도 안 하고 일만 하니까 정말 살 맛 났었다. 강노동의 굳은살이 배겼다. 그런데 문제는, 이상하게 힘들다. 지난달, 지지난달과 지금, 달라진 건 없는데 왜 그때보다 힘든 걸까.
오래전 써둔 글을 SNS에 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리는 것이었다.
“방금 올라온 글 너무 좋았어. 라이킷 백 개 쏘고 싶었음. 요즘 내 상황이랑 딱 맞는 글이어서 넘나 힐링.”
친구에게서 온 문자였다.
꽤 많은 사람이 글을 읽었다. 하지만 그게 꼭 구독이란 행위로 이어지지는 않는 걸 보면 정보를 전달하는 글보다 감성을 전달하는 글이 훨씬 더 적기 어렵고 선택받기 어려운 것 같다. 소장 가치를 느끼게 하려면 감성적 니즈를 충족시켜줘야 하는데 이것보다 정보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게 훨씬 쉬우니까. 하지만 감성 니즈를 충족하는 법을 알 수 있다면 그만큼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할 수 있는 분야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일에 자꾸 끌리는 게 행운인지 불운인지는 알 수 없다.
일 끝나고 학원 가는데 예전에 입사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던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뭐라고 고민을 말하는데 예전보다 기가 많이 죽고 자신감이 떨어진 듯했다. 어쩌다 그 지경까지 가게 됐는지도 알 것 같았다. 내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밟아온 느낌이 들어서 참 마음이 아팠다. 내게 연락하면 내 씩씩한 모습을 보고 힐링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말이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너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
내게 필요한 어떤 것이 순간적으로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사실 나도 그리 씩씩한 건 아니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반응하고 예전처럼 마냥 동력 풀가동 모드로 힘이 샘솟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고 있는 모든 일에 제동이 걸린다. 어디서 그 갭이 생기고 이렇게 진 빠지게 하는 걸까 생각해봤는데 시간 차이다.
주변의 같은 분야를 준비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일하지 않고 준비만 하니까 나인 투 식스의 삶을 살면서 준비하는 상황의 디메릿이 너무 큰 것 같다. 학원도 마찬가지다. 직장인이 소화할 수 없는 커리큘럼이다. 그 커리큘럼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수업을 들으려면 일을 때려치워야 한다는 건가?
그래서다. 현실이 버거워서 내가 잘해온 게 맞나 싶을 때 자신에게 주는 확신이, 확신이 아닌 오기인 것처럼 느껴질 때 “힐링 받았다”라는 말이 그렇게 힐링이 된다. 그 순간, 고착된 생각의 흐름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주저앉아버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계속 묻는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어릴 땐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을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여기저기 많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 나니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없고 그 말을 듣는 들 곧이곧대로 믿는 것도 잘 안 된다. 그래서 더 끝없이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왜 지금의 삶에 만족할 수 없는가. 왜 삶을 바꾸려 하는가. 왜 끝없는 결핍을 느끼며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가.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런 건가?
누구나 다 결핍이 있다. 모난 것은 보고 싶지 않기에 모난 걸 메꾸기 위해 애쓰고 산다. 결핍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그중에서 나와 비슷한 결핍을 가진 누군가가, 자신의 결핍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채워나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치유감과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내 앞에 놓이는 삶의 문제들은 좋든 싫든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엔 해결이 된다. 하지만 마음은 자신을 계속 괴롭힐 수도 있다.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게 하는 어떤 감정의 찌꺼기로 남아서. 하지만 못났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에 누군가는 힐링을 받는다. 다른 말로 누군가에게 힐링이 될 만큼 잘 살아왔다.
그런 걸 보면 “잘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는 너무 어렵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면 어떨까?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알고 싶을 때 그 질문 대신 다른 것을 한번 물어보자. 지금 행복한가? 그 답을 모르겠다면, 이렇게 계속 살면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