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여행_19
걷기 6 구간 : [ 철십자가 ~ 몰리나세카 : 17.5km ]
오늘은 다른 날과 좀 다른 시작을 하게 되었다
아침편지를 나누고 걷기 시작 구간인 철십자가까지 버스로 산길을 조심스럽게 올라가서 사방이 비와 안개로
덮여 있는 폰 세바돈 언덕 정상에 내렸다. 1505m의 산 정상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수 있다. 버스에는 한국처럼 휴게소는 없지만 버스를 주차할 수 있을 정도의 평지도 있고 또한 언덕을 넘어서는 도로가 나 있기 때문에
정상까지는 버스로 편히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이 길을 걸어서 올라가는 순례자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다른 날보다 특이한 것은 걷기 시작하는 곳이 언덕 정상이며 산티아고 길의 상징이라고 하는 폰 세바돈 언덕에 철십자가가 높이 솟아 있고 거기에서 아침 명상부터 시작하는 것이 걷기 6일차 일정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어 어떤 관점에서는 신비로움까지 자아내고
있었다. 안내 책자에 나온 것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의 하이라이트이고 걷기 3구간 지점이며 해발 700m 이하에서만 걸었는데 이 언덕은 해발 1505m이다. 폰세바돈 언덕에는 카미노길의 가장 상징적인 철 십자가 상이 매우 높게서 있다.
선사시대에는 제물을 바치는 제단이 있었고 로마시대에는 길과 교차로의 신이자 죽음의 신인 메르쿠리오스를
모시는 사제들의 제단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에 가우셀모 수도원장이 하늘을 향해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리는 곳에서 십자가를 세우니 그 후부터는 순례자들이 이곳에 각자의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하나씩 갖다 놓음으로 십자가상에는 많은 돌들이 쌓여 있다. 십자가가 높이 있는 것은 그것을 받치고 있는 쇠 기둥이 높이 솟아 있고 그 위에 그리 크지 않은 십자가가 세워져 있을 뿐이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안개와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우비를 꺼내 입고 가방에는 방수포를 씌우고 아침 명상을 하기 위해 한 줄로 묵언 가운데 이동한다. 아침 지기들이 사전 답사에 보아 두었던 장소로 이동하니 우리 8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풀밭이 나오고 고도원님이 자리를 잡고 그 앞으로 각자의 자리에 앉아 명상자세로 앉아 있다.
그동안 바쁘게 몰아온 우리의 호흡을 가다듬고 조용히 눈을 감고 우리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오직 우리 자신이 아닌 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를 보기에 바빴을 뿐 정작 내 자신은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아침 시간에 우리는 우리 호흡을 가다듬으며 내 자신과 가장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용서하지 못하고 한쪽에 밀어두었던 것과 나에게 잘못한 모든 것을 화해하지 않고 저 한쪽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것으로 생각하면서 화해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이런 모든 것을 용서하지 않고 화해하지 않고 계속 마음 구석에 먼지가 쌓이도록 가끔씩은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도록 방치하고 있었는지 다시 한번 우리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래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용서하고 스스로를 들여다보자',
' 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살고 있었을까'
'징~~" 울리는 징 소리와 함께 던지는 4가지 key Word
"용서", "화해", " 사랑", "감사"
우리와 친숙하지 않은 4가지 단어를 마음속에 담아둔다.
그동안 내 자신에게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과 감정, 그리고 사건 모든 것에 대하여 화해가 먼저 필요하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더해서 아직 치료되지 않은 우리 마음을 치료해야 한다. 그동안 세상살이 동안 상처받은 마음과 영혼에 우리는 용서와 화해의 소독약을 발라주고 사랑과 감사의 마데카솔 약을 발라주어야 할 것이다.
이 네 가지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상비약이자 구급약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닫힌 문이나 길을 열어주는 Master key로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조용히 명상 가눈데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모자 챙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우리 마음속을 촉촉이 적셔오고 가다듬은 호흡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호흡으로 나의 가족을 생각하고 그 얼굴들을 생각하는 시간. 힘들지 않는 걸음, 그 가운데에는 나의 머릿속에는 나의 가족들의 얼굴들이 파노라마 영상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걷고 다시금 잠시 멈추고 우리를 감싼 안개도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정신을 또렷 또렷하게 만들고 있었다. 조용히 언덕 정상 주차장까지 우리는 하나가 되어 하나의 원으로 그리며 하나가 되어 서로에게 우리는 고백합니다.
" 사랑합니다 " - 그동안 사랑하지 못 했던 내 자신으로 사랑하고 이제는 당신도 사랑합니다
" 감사합니다" - 열심히 사랑해준 내 자신에게 감사하고 같이 있어준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철십자가에 어떤 분들은 무엇을 내려놓고 온다. 미리 오늘을 위해서 한국에서부터 아니면 이 여행 동안 철십자가 제단 앞에 내려놓고 가야 할 것이 있었나보다. 우리는 이미 명상을 통해 하늘과 가까운 이곳에서 그동안의 상처와 잘못을 십자가에 벌써 내려놓고 가벼운 몸으로 걷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의 목적지인 몰리나세카로 출발하면서 다시 한번 복장을 점검한다. 우비와 모자와 가방의 방수포.
쉽게 그치지도 않을 것 같고 날씨도 추워서 목에는 쇼올이나 스카프를 두르고 목까지 등산 점퍼의 지퍼를 올린다.
이제부터는 계속 내리막이다.
삼삼오오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날씨가 우리가 너무 반가운지 기쁨의 눈물과 호흡으로 우리를 내내 감싸고 있다. 내리막 순례길이 언덕을 내려가는 도로와 붙어 있기도 하고 도로를 가로지르면서 건너가기도 하는데
아침 여행 순례객들뿐만 아니라 외국 순례길도 많이 눈에 보인다. 조금 내려가니 우측 편에 자그마하면서 허름한 가게 앞에 흰 개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하여 뜨거운 커피 한 잔이 생각나서 우리 일행은 서로 말하지 않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비스킷을 포함한 커피와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있고 가격표도 없어 도네이션으로 가격을 낸다.
커피잔도 아주 가벼운 종이컵으로 거기에 진한 원두 커피아 비스킷 한 조각은 우리 몸을 녹이는데 충분했다.
내려가는 모퉁이 큰 바위 주변에서는 둘러앉아 배낭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같이 먹는다. 이 산에 아직 카페가 보이지는 않아 망설이다 합류해서 꺼내 같이 식사를 하고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 길을 나선다.
안개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길은 어느새 사라지고 시야가 확 트여 산 아래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공연 전에 걷히지 않은 무대의 커튼이 걷히자 멋진 배우가 등장하는 것처럼 안개가 걷힌 산 아래 펼쳐진 풍경은 장관 그 자체였다. 도로변에는 가을을 느낄 수 있도록 노란색으로 변한 나뭇잎들이 쌓여 있고 걷는 순례길에는 눈이 내려도 늘 푸른색의 나무들과 노랗게 변한 갈대같이 보이는 것들이 바람에 따라 춤을 춘다. 먼 산에는 아직 구름이나 안개가 자욱하고 우리가 갈 길은 꼬불꼬불 펼쳐져 있고 도로를 따라 걷는 순례길도 보인다.
이 길을 걸으면서 소중한 가족들을 생각하고 나를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돈다.
언제부터 인가 울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아직은 그 울음의 잔이 그득 차지 않은 것 같다. 울고 싶은 마음은 많은데 아직은 눈물의 잔이 차지 않아 몇 방울의 눈물만 눈에 핑 돌 뿐. 폰세바돈 언덕의 안개는 순례자들의 눈물이 증발해서 순례자들의 눈에 맺히는 것이리라. 오늘 터지지 않은 울음이 이 순례길이 끝나기 전 아니 스페인을 떠나기 전에 터지려는지 궁금하다.
자연은 인간을 정말로 순수하게 만드는 것 같다. 수없이 걸어오는 자연의 대화는 인간에게 눈물을 선사하고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게 한다. 그 많던 안개가 걷히고 저 아래로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려오면서 이 맑은 산에 맑은 오카리나 소리가 들려온다. 오카리나 소리는 다른 모든 소리보다 맑고 청아하게 들리며 우리 마음속에 동요를 들려준다. 그 소리에 따라 우리 발걸음도 같이 따라 춤을 추기 시작한다.
산 아랫마을은 너무나도 이쁘다. 나무와 돌로 지은 집들은 각 집마다 처마와 이층에 발코니를 가지고 있고 거기에는 우리를 반기는 예쁜 꽃들이 피어 있다. 한가로이 잠을 자고 있는 누렁이도 보이고, 멋있는 나무들도 보이고. 얼핏 보면 작은 별장으로 쓰일만한 조용한 동네이다. 오래간만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물어볼 필요도 없이 커피를 주문한다. 앉은 테이블 옆에는 따뜻한 열기가 느껴지는 벽난로도 일품이다. 이런 벽난로가 날씨가 흐려 으시시한 체감온도에 커피와 코코아는 정말로 환상의 궁합이다.
몸을 녹이고 길을 내려오는데 조송희님과 이영숙님이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내려오는데 산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우리 시야에 펼쳐진 풍경은 다시금 그녀들의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기에 충분했다. 먼 산에는 단풍으로 붉은색과 노란색, 초록색이 섞여 있어 물감으로 점을 찍은듯 멋들어진 장면이 연출된다. 숲 속으로 이어진 길은 계곡 같은 길을 걷게 하더니 우리가 도착할 마을은 보이지 않고 계속 산모퉁이만을 돌게 한다.
저 모퉁이만 돌면 보이겠지 하는 기대를 하지만 아직도.
산의 높이를 보더로도 아직은 산의 중턱. 그리고 우리의 갈 길을 상징하는 노란색 화살표시 외에 파란색 화살표가 우리가 가는 방향과 반대로 그려져 있다. 가끔 외국인들이 우리를 스쳐가는데 저들은 거꾸로 가는 건가?
어느덧 멀리 내려가는 길에 노란색 점퍼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고도원님과 윤나라실장님이다.
이제는 내리막길 산행도 끝을 알리고있다. 도로변으로 접어드니 자그마한 성당이 우리를 반기고 왼편에는 몰리나세카 이정표에서 여행객들이 다양한 포즈로 인증샷을 찍고 계셨다. 도로를 따라 내려오니 돌다리 건너편에는 고생한 발을 냇가에 담그고 편히 쉬는 일행이 보이다. 누가 봐도 우리 아침편지 여행객들이다. 울근 불긋한 등산복을 입고 하얀 발을 물속에 담그고 앉아 있는 모습들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다들 도착해서 오늘의 하일하이트인 그동안 갈고닦은(?) 사감댄스.
아침에 사전의 치밀한 작전지시에 따라 오카리나 소리가 들려오고 사감댄스를 하기에 충분히 넓은 공터에 모인 우리들은 한두 명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해도가 뛰어나서인지 사감댄스의 음악은 일요일 오후 시골마을의 한적함과 고요함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스페인 사람들도 아닌 동양에서 온 듯한 머리카락이 까만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군무(群舞)을 시작하니 다들 모이기 시작했다. 아침 여행객들만의 사감댄스가 끝나고 One More Time. 두 번째에는 구경하는 마을 주민들도 끌여들여 하나가 되어 우리는 축제를 하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는 사람들도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도 거기에서 춤을 추는 우리들도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춤이라는 것이 사람들을 흥겹게 하는 것 외에도 한 마디 말이 필요 없이 모든 사람을 이렇게 소통하게 하고 몸으로 대화할 수 있게 한다. 그전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6일차 걷기를 무사히 마치고 호텔에 도착할 즈음에 비는 바람과 함께 흩날리고 있었다.
내일은 어떨런지.....
아침에 철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과 감사를 온전히 마음에 담아 내려오는 길에서
마음과 육체의 눈물을 흘리는 기쁨을 맛보고 그렇게 우리의 모든 것을 사감댄스로 온몸과 마음으로 표출한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밤새 내리는 비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더 깨끗하게 씻겨주고 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