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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Oct 10. 2021

황톳길을 지나 푸른 초장까지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_17

걷기 5구간 : [산 마르틴 카미조 ~ 아스트로가 ] : 23km
[ 어제 레온 대성당의 모습, 아직도 어젯밤의 야간 산책의 여운 ]

어제 레온의 밤거리 늘 누비고 다닌 덕분에 잠을 푹 자서 시차에도 완전 적응이 된  듯하다.
벌써 여행 일정도 반환점을 돌고 있고 걷기도 이제 5일 차에 들어섰다. 앞으로 남은 3일이 고비인 것 같다.
아침에 표정들이 밝으시지만  발에 물집이나 아프신 분들이 조금씩 늘어난다. 대충 어림잡아도 평균 연령이 50세에 가깝다 보니 하루에 20km 정도를 걷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늘은 산 마르틴부터 시작하여 아스트로 가까지 비교적 쉬운 길이라고 한다.

[ 어제 레온에서 묶은 국영 호텔의 모형 ]


토요일 아침, 여기도 주말이라 그런지  순례길 옆으로 난 도로에는  차들이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저렇게 빨리 가서 무엇하려는지?   우리는 이렇게 느린 속도로 걸어도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데 5일째 걷다 보니 이제는  걷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좋다.  차로 변이라 두 사람이 같기 걷기에는 폭이 좁지만 다들 걷는 모습들이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도 보이고 활기차게 걷는 모습이 살아 있네!


하늘도 구름이 적당히 있어 오늘 걷는데도 우비가 필요 없을 듯하다. 배낭 멘 밑에 깔려 있는 우비는 아직 개봉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도로변을 벗어나 좀 걸으니 전형적으로 들판이 시작되고 어느새 오르비고에 도착했다.  카페에서 모닝커피처럼 진한 커피에 신선한 원유를 넣은 커피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이 다정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커피와 과일이나  군것질의 인심들은 너무 후하다. 후하다 못해 각자 자기 배낭 짐을 비우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지 전부 꺼내 놓는다. 그래야 배낭이 가벼워지나 보다......... ㅎㅎ
순례길에 펼쳐진 넓은 밭을 보면은 그 규모에 놀라고 어떻게 농사를 짓나? 하는 생각 우리나라와는 땅덩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오늘은 그 밭에서 무언가를 파종하려는지 밭을 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트랙터를 한 농부가 운전하면서 갈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압도적이었다. 어떤 농기계의 바퀴는 어른 키 높이만 한 것이어서 이런 기계라고 하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스페인의 넓은 들판을 처음 보았을 때 생각난 시조는  저런 농기구를 보니 이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 없을 듯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13세기에 지은 오르비고 다리는 800년이 다 돼가는데 다리가 정말 이쁘고 잘 보존되어 있다. 다리 길이도 꽤 긴데 강물이 흐르는 곳은 일부분이고 나머지는 전부 식물이 자라고 있어 강이 많이 좁아진듯하다. 이 다리에서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구상했다고 하니 건너편 성당 건물에서 돈키호테와 산초가 이 다리를 건너오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건너편 마을도 아직도 옛 모습들을 지니고 있어 이 배경으로도 돈키호테 영화를 찍어도 될듯하다.

[ 800년이 된 돌로 만든 다리 ]


좀 걸으니 순례길 좌우에  높은 나무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는 모습이 누구 키가 더 큰지 재어보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치 형태로 도열하고 있어 커다랗고 높은 성문을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오늘 걷는 길이 대부분 공사 중이거나 도로를 확장하고 있어 흙이 금방 파 놓아서 붉은 황토색을 띠고 있다. 황토색의 흙과 하늘이 맞닿아 있고 그 언덕 정상에 아침편지 여행객이 넘어가고 있는데 그 모습도 일품이다.


얼마를 가니 마을 외곽에 벽이 둘려져 있고 그 위로 십자가로 보이는 것들이 여러 개 보인다. 자세히 보니 그건 마을 공동묘지로 보인다. 스페인은 요즘은 대부분 화장을 하는데 매장을 하려면 매달 죽을 때까지 일정 금액을 내야 한다니 살아서는 죽을 준비를 해야 하는 셈이다.  살아서 자신이 죽을 자리를 준비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살면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잘 살기 위한 것도 있지 않을까 한다.


황톳길을 걸어가는데 그 길을 경기용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고 먼지를 날리면서 왔다 간다 한다.

순례길에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인데....     경기에 나가는 연습을 이 황톳길에 하는 건지?

좀 못 가서 숲이 시작되는 듯한 길 옆으로 십자가가  서있고 그 아래는 돌무덤처럼  크고 작은 돌들이 쌓여있다. 누구의 무덤인지 아니면 십자가 밑에 순례자들이 순례길의 안전을 기원하며 돌을 쌓아놓은 듯  그 옆에는 마네킹에 점퍼와 바지를 입히고 머리에는 두건까지 씌우고 나무로 된 지팡이도 쥐어놓고 등에는 배낭을 메고 있었다.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은지 아니면 옛날 우리나라처럼 큰 나무 밑에 순례자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돌을 하나씩 하나씩 갖다 놓고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대부분 평지. 길을 가는데 조송희 님이 사진기를 땅에 대고 무언가를 찍고 계시는데 약간 큰 돌에 노란색 바탕이 칠해져 있고


      "고도원의 아침편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15.10.17"


이라고 쓰여 있다.  아침 여행객 중에 누군가가 우리의 족적을 남기신 것 같다. 
앞으로 이 길을 걷는 한국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이 돌을 보고 사진을 한 장씩은 담아 갈 것 같다. 외국에서 한글로 씐 것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누군가가 길가에 세워진 이 노란 돌을 보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같이 걷는 동료에게 속삭이고 순례길을 걸었으면 합니다.

평지가 펼쳐지는데 오른편에 집 한 채가 보이고 부부로 보이는 한 쌍이 음료와 과일을 기부 형식으로 팔고 있으며 작은 돌로 원형의  상징하는 것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분들의 표정은 우리나라의 귀농한 것처럼 순례자들을 상대하며 간단한 음료 등을 팔며 자신들의 삶을 즐기고 있는 듯하게 보인다. 집 옆에는 돌로 동그라미 여러 개가 겹쳐있는 것을 만들어 놓았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순례객들의 사진기를 주목시키는데 충분했다. 무엇을 표현하라고 했을까? 말이 원활하게 통하면 물어보았을 텐데...... 
이래서 외국어 공부는 필요한 건가? 꼭 외국 나갈 때만 느끼는 부족한 어학실력

좀 더 걸어가니 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는데 꽤 많은 양 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그 사이로 말로만 듣던 양치기 개가 보였다. 거무스름한 개와 누런색도 아니고 흰 색도 아닌 커다란 개 두 마리가 유난히 눈에 띈다. 몸집도 크고 살집도 제법인 는데 사람과 양들에게는 순둥이처럼 보인다. 잘 짖지도 않는 순둥이처럼 보인다. 여기서 양 떼와 양치기 개를 보다니.


또 하나 구약성경에  주로 등장하고 예수님을 묘사하는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목자를 만났다. 현대판 목동, 그러기에는 나이가 드신 것 같아서 목자라고 하는 게 맞겠다. 한국에서는 대관령 목장에서 나 양을 볼 수는 있으나 양치 기개와 목자는 볼 수 없지  않은가?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는 목자. 오늘의 볼거리 중 하나이다.



산토 토리비오 십자가 언덕에 도착했다. 언덕에 올라서니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이 십자가는 아스 토로 가 주교였던 토리 비 오가누명을 쓴 것을 기리기 위해 십자가를 세웠다고 하는데 많은 순례자들이 십자가의 의미보다는 오늘 하루를 쉴 수 있는 마을이 보이는 언덕이 더 마음에 와닿을 것이다. 언덕을 내려가는 우측에는 밤나무들이 있어 밤을 줍는 여행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순례길을 걸으며 스페인에서 떨어진 밤을 주울 수 있는 생각을 했을까? 여기 사람들은 밤을 줍지 않은지 다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이 많이 눈에 띈다.


마을 입구에 도달하니  순례자가 목이 타서 물병을 들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물을 마시려는 동상이 보인다. 나도 이쯤에서 흉내 한번 내보고 인증샷으로 오늘을 마무리했다. 도착해서 박찬준 님과 카페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고 길가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일상적인 주제지만 이렇게 걷는 중에 아니면 쉬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이번 여행이 주는 쏠쏠한 재미이다.


이 여행에 안 왔다면 서로를 모르고 그냥 살다가 가는 건데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16일간을 같은 장소에서 밥을 먹고 한 지붕 아래서 잠을 자고 서로를 알게 된다는 것이 보통 인연은 아닐 것이다. 버스에 오르니 오늘 묵게 될 숙소까지 약 2-3km를 단축해서 걷게 하고 먼저 도착하신 분들은 숙소까지 걸어가신다고 한다.
오늘도 두 분이 다리가 불편해서 걸으시다가 마지막 부분에서는 택시를 타고 오셨는데 괜찮다고 하시는데 걱정이다.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지만 거리와 코스도 만만치 않은데.....

오늘 묵을 숙소가 작아 같은 숙소에서 다 잘 수 없어 스텝과 일부 인원은 바로 옆 호텔에서 옮겨 짐을 풀었다. 씻고 나와보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리 걷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내리는 비 같아 더욱 반갑기만 하다. 도시가 작고 인구가 많지 않은 것 같다. 호텔 앞의 성당도 여느 성당 못지않은 외형을 자랑하고 있어 천천히 둘러보니 첨탑 위에 순례자처럼 보이는 동상이 서 있다.
누구길래 성당 맨 꼭대기를 장식하고 있는지?

호텔방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저녁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제의 저녁식사가 생각나서 오늘도 2시간이려나 했는데 호텔이라 식사가 늦어질 줄 알았다. 지하 1층 식당에 앉아서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주방과 가까운 곳에 앉은 테이블에 그동안 못 보던,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물 잔에 포도주처럼 보이는 붉은 액체가 채워진 잔이 보이는 것이다. 늘 자기 앞에 있는 두 개의 잔에 보통 물을 따라먹거나 아니면 콜라 정도인데 웬 이런 기적이.....


갑자기 웅성웅성해지기 시작했고 우리 테이블에도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백실장 님이 보시고 무언가가 잘 옷 되신 것을 알고 포도주를 회수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럼 낌새를 눈치챈  테이블에서 맛을 보려는 듯 일부 어르신들은 급히 마신다. 완샷이라도 하듯이.... 우리는 이런 혜택도 못 보는 자리에 앉았을까 하는 조원들의 눈총이 쏟아진다. 오늘 자리도 일찍 내려와서 내가 자리를 잡았으니   오늘의 해프닝은 호텔 측의 실수로 나오다 만 것이다. 회수한 잔과 포도주 병이 한쪽으로 치워져 있는데 식 시를 하지 않고 왜 다 그쪽만 쳐다보는 걸까? 무슨 생각들을 하시고. 고기 한점 먹고 눈으로 음미를 하시려는 듯 우리 테이블의 눈을 떨어질 줄 모른다.


저녁 메뉴는 등갈비 구이인데 어제는 각 개인 접시 담아서 나왔는데 오늘은 한꺼번에 가지고 나와서 직접 나누어준다. 웨이트리스의 음식을 나누어주는 스피드는 대박 정말 우리가 원하는 한국식이었다. 그리고 감자튀김도 격식 차리지 않고 자기 접시에 그냥 덜어준다. 맛도 일품이었지만  그 스피드가 너무 마음에 든다. 그런데 과일까지 직접 깎아먹으라고 칼도 주지 않은 채 과일바구니만 놓고 간다. 헐,.. 그래도 괜찮다.


여하튼 빠르게 진행된 식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 하신다. 저녁을 마치고 비가 내린 아스 토로 가 거리로 산책을 나가서 혹시 라면이라도 살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나갔다. 저녁에 마을 전쳬를 돌아다녀도 초콜릿을 파는 가게는 많아도 컵라면을 파는 가게는 보이지 않는다. 슈퍼를 한 군데 발견해 전체를 둘러봐도 컵라면 같은 것은 팔지 않는다. 하몽이나 다른 것은 팔아도 컵라면 심지어는 봉지 라면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파는 코너 자체가 안 보인다. 여행한 지 일주일이 넘어 매콤한 국물을 먹고 싶기도 해서 살 수만 있으면 아침이나 저녁에 라면 만찬도 할 수 있는데 할 수 없이 발걸음을 호텔로 돌렸다.

토요일인데도 마을이 조용하고 대부분의 가게도 문을 닫는다. 호텔로 돌아와서 가이드 고사장님에게 문의해보니 스페인에 컵라면은 활성회가 되어 있지 않고 들어와 있는 것도 대부분 일본풍이라 한국 사람들이 먹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한다. 여기서 한국 라면을 팔면 대박 날 것 겉은 기분. 나중에 스페인 순례길에서 김밥하고 라면이나 팔면서 오늘 만난 집을 짓고 파는 부부처럼 은퇴하고 여기로 와서 집 짓고 김밥과 라면에 어묵까지 그리고 한국식 달달한 다방커피도 팔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청한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산티아고순례길

#고도원의아침편지

#아침편지여행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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