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요즘 책을 직접 사서 읽지 않고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작가의 책을 구매해서 모두 읽지는 못하더라도 소장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만큼 한강의 수상 소식이 기뻤고, 동시에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노벨 문학상 작가의 책을 원서로 읽게 되어 기쁘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영어를 잘하는 사람으로 오해했다는 한 친구의 얘기가 기억난다. 그만큼 우리는 그간 노벨 수상자의 작품을 변역본을 통해서만 읽을 수 있었다. 한강 작가 덕분에 출판 업계도 활황을 맞이하고 있고, 독서 인구가 늘어난다고 하니 기쁜 소식이다.
역시 자본주의는 무섭다. 책을 온라인으로 한 권 한 권씩 구매하는 것이 불편해서 혹시 패키지로 묶인 작품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역시 있었다. 한강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다양한 패키지 형식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독자나 소비자가 생각하는 모든 제품은 이미 시중에 모두 나와있다. 원래 도착 예정일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도착했다. 책 발송이 늦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미리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꾸 늦어져서 취소를 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 생각을 접고 마냥 기다리기로 했다. 그만큼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드디어 주문한 지 2주일이 지난 후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 그리고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책 다섯 권이 도착했다. 도착했다고 했는데 집 앞에 없어서 택배 기사님에게 연락을 했고, 나중에 동네 주민이 혹시나 책이 없어질 것 같아 맡아서 보관을 해주셨다는 얘기를 듣고 고마움을 전했다.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그 안에도 따뜻한 인간미는 살아있다.
어제 <소년이 온다>를 모두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며 첫 번째로 든 생각은 과연 이 글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번역본을 읽으면 원작자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행간을 읽는다는 말이 있다. 이 표현은 말 그대로 글과 글, 줄과 줄 사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그 외에도 단어 하나하나, 조사나 어미등의 한 글자가 글의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과연 이런 오묘하고 민감하고 세심하고 감상적인 표현이 제대로 번역이 되었을까? 특히 전라도 사투리가 주는 정감이나 느낌을 제대로 번역되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간 외국 작품을 읽으며 작가의 마음이나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읽었는지 아니면 나의 사고와 문화환경에서 읽었는지 잘 파악하지 못하고 생각 없이 읽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작가가 쓴 글을 그의 언어로 읽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고 소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문 번역가들이 알아서 잘 번역을 했기에 이런 영광스러운 수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비록 문화와 언어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전달하려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비록 책뿐만이 아니다. 음악이나 다른 예술 분야도 언어와 문화환경, 그리고 세대를 뛰어넘어 이해를 하고 받고 하며 서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행간을 읽는다는 의미는 바로 말 이전의 말, 글 이전의 글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마치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것과 같다. 하지만 대부분은 손가락만 보고 달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손가락을 보았을까? 아니면 달을 보았을까?
책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하다. 작가는 책 말미에 이 책을 쓰기 위해 도움 받았던 자료와 힘든 기억을 나눠주신 분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1970년 생 작가가 1980년에 발생한 이 상황을 글로 표현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10살이면 물론 자신이 보고 들었던 사실도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 기억이 생생히 남이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죽은 자는 고통스럽게 죽었고, 산 자는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 죽은 자는 한을 안고, 산 자는 가슴속에 큰 돌덩어리를 안고 살고 있다. 이 책이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나 역시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서는 과거와 단절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를 드러내며 드러난 상처를 바라보고 어루만져야 한다. 말로는 가능하나 말로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쉽게 치유될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고통 속에 매몰되지 않고, 고통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끈질긴 목숨이 살아있는 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롭고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목숨이 붙어있는 한 살아가야 한다. 그게 우리네 삶이다. 그리고 고통 속 가끔 보이거나 찾아오는 작은 행복과 기쁨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아침에 해 뜨는 것을 바라보며 또는 노을 지는 것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친구가 잘 사냐고 묻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으며 고마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손주들이 태어나고 웃는 모습을 보며 일 순간일지라도 웃음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행복들이 큰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버틸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낸다.
이 책은 시민의 입장에서 쓴 책이다. 광주시민이 겪은 상황을 사실에 근거해서 쓴 책이다. 작가가 참고한 자료집과 인터뷰한 사람들의 증언이 바탕이 되어 쓴 책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군인 중 일부는 시민을 생각하고 함께 괴로워하는 군인이 있다는 글이 나온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한 시름 놓았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내가 바로 계엄군으로 광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1979. 9. 25 입대해서 1982. 2. 25에 재대했다. 훈련소에서 10.26을 맞이했고, 자대 베치 받자마자 12.12사태가 발생했고, 뒤이어 광주로 출동했다. 교전은 없었고, 한 일은 마을 주변을 아침마다 빗자루로 쓸고 주민들의 불편함을 살피는 일이었다.
새벽에 보초를 서고 있는데 멀리서 한 사람이 다가온다. 혹시나 해서 신경을 바짝 서고 있는데, 교회에 간다고 그 난리통에 나온 사람이다. 교회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렸다. 실탄을 지급받았지만, 그 당시 상대방이 먼저 사격하지 않는 한 잠금장치를 풀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소대장급 이상은 경량 방탄복을, 선임하사급은 무거운 방탄복을 지급받았지만, 나 같은 일반 사병은 몸으로 방탄복을 대신해야만 했다. 보급로가 끊겨 이틀간 건빵으로 견딘 적도 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지냈다. 우리 부대가 철수할 때 동네 주민들이 물을 뿌려주고, 흰쌀밥을 만들어 내어 놓으며 잘 가라는 인사했던 것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보니 아무 잘못 없는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특히 광주 계엄군을 다녀왔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금기어였다. 힘든 훈련과 힘든 시기를 보낸 우리 같은 사병은 자신도 모른 채 비공식적인 죄인이 되어 있었다. 그런 사실이 싫었다. 그래서 제대 후 관련된 모든 내용은 보지도 듣지도 읽지도 않았다. 최근에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볼 때 아내가 그 당시 얘기를 보고 듣고 싶어 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영화를 보냐고 묻는다. 그 당시 상황이 궁금해서가 아니고 그냥 영화로 보고 싶었다. 하지만, 뒤끝은 영 개운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글에서 이 얘기를 하고 있다. 아무 잘못도 없고, 잘못된 행동을 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뭔가가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나만 위로받은 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아주 작은 분량이지만 반드시 나쁜 군인들만 있지 않았다는 글 때문이다. 권력욕에 눈이 먼 사람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힘없고 아무 잘못 없는 수많은 군인들이 이 책을 읽으며 가슴속에 맺힌 한을 풀 수 있으면 좋겠다.
괜히 가슴이 먹먹해진다. 글을 쓰며 가슴이 떨린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마치 고백하듯 쓰며 가슴이 막혀온다. 그래도 이나마 글로 써서 풀어내니 그만큼은 막힌 부분은 풀렸을 것이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 당시 군대에서는 모든 정보가 통제되기 때문에 신문 한 장, 뉴스 하나도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힘든 충정훈련만 받느라 몸과 마음은 많이 지쳐있었다. 무슨 일로 내려가는지, 무엇 때문에 발생한 일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군 수송기에 실려서 광주로 내려갔다. 소설에 나오는 상무대에 머물며 군화를 신은 채 체육관 내에서 겨우 잠을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심신이 지쳐갔다. 그 세월이 지나가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계엄군으로 다녀왔다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다. 아무런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음에도 이런 마음이 드는데,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떤 행동을 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큰 상처로 가득할까? 이 책이 비단 광주 시민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어쩔 수 없이 광주에 내려갔던 군인들에게도 치유와 위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발원한다. 이 책을 써줘서 감사합니다, 한강 작가님. 덕분에 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