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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 일기 0162]

친구, 그리고 눈물 한 방울

by 걷고

날짜와 거리: 20210116 17km

코스: 한강 공원 – 노을공원 – 난지 생태길 – 메타세쿼이아 길 – 월드컵공원 – 불광천

누적거리: 3,012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반가운 친구들 두 명이 찾아왔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보고 싶었던 친구들이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인해 만나지 못해 사람에 대한 갈증도 느끼고 있었기에, 친구들 방문이 더욱 반갑고 고마웠다. 한 친구는 집에서 내린 커피를 세 개의 텀블러에 담아왔다. 한 친구는 도넛과 꽈배기를 세 봉지 들고 왔다. 아내는 과일을 세 개의 비닐봉지에 나눠 담아주었다. 코로나가 만든 생활의 변화다. 함께 나눠 먹더라도 각자 먹을 수 있도록 서로에게 배려를 한 것이다. 그런 사소한 고마움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서로 많은 말을 하지도 않아도 같이 걷는 것 자체가 좋다. 친구가 편한 이유는 바로 이런 점이다. 굳이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가 없고, 말없이 한 방향으로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편안하고 고맙다. 말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것도 있다. 가끔 쓸데없는 말로 분위기를 장악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걸으면 불쾌하기도 하다. 하지만 편안한 친구들과의 만남과 걷기는 이런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도 없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햇빛이 추위를 녹여준다. 추운 날씨라고 하는데 오후 1시에 만나니 추위를 느낄 수가 없다. 오히려 가끔 부는 차가운 바람은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한강의 얼음은 거의 녹았다. 난지 한강 공원을 걸으며 가능한 가장 한강과 가까운 곳을 걷고 싶었는데, 얼음이 녹아서 가까운 길을 걷지 못해 아쉽다. 계단을 통해 노을공원에 올랐다. 세 명 모두 쉬지 않고 꾸준히 겯는 사람들이라 이 또한 편하다. 한 사람이라도 힘들다고 자주 쉬자고 한다면, 이 역시 걷기의 리듬을 끊을 수 있다. 558개의 계단을 세 명 모두 쉬지 않고 올랐다.


노을공원 도착 후 편의점 앞에 놓인 의자에서 준비해 온 음식을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바로 다시 출발!! 노을공원을 따라 걸으며 난지 생태길과 합류 지점으로 내려왔다. 이 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 중 하나다. 곧게 뻗은 흙 길로 이루어진 난지 생태길은 메타세쿼이아 길과 희망의 숲길까지 연결된다. 이 길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길을 걸으면 산티아고 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약 150km의 메세타 평원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곧은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길을 지루하게 느껴서 차를 타고 이동을 하기도 한다지만, 나는 이 길을 걸을 때 가장 행복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며 저절로 길과 하나가 된다. 오직 길을 걷는 사람만 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길과 걷는 사람이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국내 길을 걸으며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이곳, 난지 생태길이다.


친구들 역시 이 길과 메타세쿼이아 길을 좋아했다. 이 길을 처음 걸은 친구들이어서 더욱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봄이 되면 다시 한번 걷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겨울이라 초봄의 파릇파릇한 생기를 느낄 수 없어서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겨울길이 주는 선물이 있다. 바로 옷깃을 여미게 만들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또한 비록 지금 이 겨울이 춥긴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도 들을 수 있다. 계절은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돌아온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평생 즐거운 삶도 없고, 평생 힘든 삶도 없다. 이 삶의 굴곡이 우리들에게 희망과 겸손을 가르쳐준다.


걷기를 마치고 마포농수산물시장에 들렀다. 이 근처에서 20년 넘게 살아왔지만, 한 두 번 아내 따라온 적은 있었다. 하지만, 회를 떠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친구들 덕분에 시장에 들러서 싱싱한 숭어와 우럭을 먹을 수 있었다. 위층에 식당이 준비되어 있어서 매운탕과 한잔 술도 곁들일 수 있었다. 걷기는 걷는 길도 좋고 걷기 자체도 좋지만, 마친 후에 홀로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늘 홀로 걷기의 아쉬움으로 남아왔다. 하지만, 친구들과 걷기를 마친 후 술 한잔 곁들이게 되니 아쉬움은 사라지고 즐거움만 가득하다. 홀로 걷는 것이 주는 충만감이 있다면, 함께 걷기는 걸은 후 술 한잔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에 큰 즐거움이 있다.


회를 먹으며 어어령 선생님의 ‘눈물 한 방울’이 떠올랐다.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눈물 한 방울’의 가치를 아는 것”이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눈물은 연민의 표현이다. 연민은 자신의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찬 후에 넘쳐흘러서 모든 존재들에게 흘러가는 것이다. 연민은 나와 타인 또는 모든 존재들과 하나가 되는 유일한 연결 통로다. 다른 존재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고,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는 것이다. 너와 나의 분별이 사라지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선을 회를 떠서 맛있게 먹으며 ‘눈물 한 방울’이 떠오른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언제나 이 이율배반적인 모습에서 벗어날 날이 올 수 있을까? 잠시 생선들을 위해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그들의 명복을 기원한다. 동시에 그들의 목숨이 귀한 만큼 그들의 생명의 가치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며 스스로 합리화를 통해 자신을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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