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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 일기 0166]

40년의 인연

by 걷고

날짜와 거리: 20210123 - 20210124 24km

코스: 불광천 – 노을공원 – 월드컵공원 – 마포 농수산물시장

누적거리: 3,069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날씨가 봄 날씨처럼 따뜻하다. 푸근한 날씨와 토요일 오후여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뛰고 있다. 활기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오랜만에 선배 두 분을 만나 함께 걸었다. 며칠 전 모이자고 연락을 받았는데, 다른 업무 때문에 참석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에 같이 걷자고 제안을 드려서 걷게 되었다. 40년 이상 알고 지낸 선배들과의 인연은 참 소중하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만 있으니 조금 답답하기도 해서 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서로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다. 서로 통하는 것이 있나 보다.


월드컵 경기장 역에서 만나 불광천을 따라 걸었다. 한강 공원으로 나가서 강가 쪽 길을 걸었다. 난지 생태 공원의 둥근 데크길은 언제 어떤 날씨에 걸어도 아름다운 길이다. 그 길을 걸은 후 데크길로 만들어진 생태 숲길을 걷는 재미도 좋다. 마치 도심 속 정글을 걷는 느낌이 든다. 노을공원을 계단으로 오르려다 힘들 것 같아 방향을 바꿔서 노을공원을 왼쪽으로 뻗은 평지길을 걸었다. 이 길은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어제는 제법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노을공원 주변길을 걸은 후 난지천 공원과 월드컵 공원을 걸었다. 약 3시간 정도 걸은 후 마포 농수산물 시장에 들러 광어, 우럭, 멍게, 해삼을 주문해서 술과 함께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한강.jpg

개성이 모두 다른 세 명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언쟁을 하기도 하면서 서로를 챙긴다. 세 명의 공통점은 아무것도 없다. 대학 영어 회화 서클에서 만났다는 것 외에는 어떠한 공통점을 찾아낼 수가 없다. 대학 시절에는 어려워했던 선배들이 지금은 친구처럼 편안하다. 모두 60대 중반으로 먼저 가는 사람이 형님이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생각난다. 어릴 적 1년, 2년 차이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어려운 관계였다. 나이가 들어가니 몇 년 위아래는 친구가 된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선후배가 아닌 사람으로 만나게 된다. 이런 관계가 편안하다.


공통점이 한 가지 떠올랐다. 불교에 관심을 갖고 각자의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끔은 불교 공부 관련하여 핏대를 올려가며 서로 언쟁을 하기도 한다. 이 순간은 선후배 관계가 아닌 도반이 된다. 위아래 예의가 불필요하다. 마음공부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주장하며 싸우기도 한다. 언쟁하는 것은 중생들의 삶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언쟁은 가십거리보다는 나은 것 같다. 연예인이나 정치인, 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필요한 비난이나 질투, 비판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의미 있는 대화이다. 물론 아무리 떠들고 각자 옳다고 얘기를 해도, 중생들 생각이니 도긴개긴에 불과하다.


그 얘기가 끝나면 마치 아무런 일도 없듯이 서로 웃으며 옛날 추억도 떠올리고, 살고 있는 모습이나 근황에 대해서 얘기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위로하고 마음을 기울여 경청하며 같이 아파하기도 한다. 그들의 삶이 어느 순간 나의 삶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행복과 불행이 바로 나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늘 그들이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지만, 우리 관계는 그렇지 않다. 그들이 행복하면 나 역시 행복해진다. 참석 못한 후배 생각을 하며 취중에 전화를 걸기도 한다. 아직도 대학시절 놀던 객기를 버리지 못한 탓이지만, 이런 객기는 종종 우리를 30년 전으로 돌려놓는다. 술도 제법 많이 마신다. 어제 마신 술은 소주 2병, 맥주 4명, 그리고 2차로 와인 두 병을 마셨다. 나이에 비해 결코 적은 주량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얘기하고 낄낄대고 웃으며 마신 술은 마음의 보약이 된다. 물론 다음 날 아침의 두통은 보약의 효과일 것이다.


다음에는 마장동에서 고기를 사다가 한 선배 집에서 모여 먹기로 했다. 그 선배는 집에서 음식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지만, 나는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누군가가 음식 준비하고 나르고 수고하는 것이 내게는 불편하다. 그럼에도 몇 번 그 선배 집에서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다음 모임에는 어제 참석하지 못했던 후배도 함께 하기로 했다. 네 명의 친구들이 영국에서 독거노인으로 지내고 있는 친구에게 화상 통화를 하자고 약속도 했다. 함께 서클 활동을 했던 친구가 식구들은 모두 한국으로 보내고 혼자 영국을 지키고 있다. 가끔 안부가 궁금하고 영국이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다고 해서 걱정이 되어 카톡으로 연락을 취하곤 한다. 다음 모임에 모두 얼굴을 볼 수 있다니 기다려진다. 앞으로 세월이 흘러가면서 만나는 횟수나, 모이는 사람 수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건강하게 만날 수 있을 때 자주 만나 실컷 떠들고 웃고 먹고 마시며 추억을 쌓고,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추억으로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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