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동호회인 회원들과 함께 1박 2일 보성 벌교 구간 테마 걷기를 다녀왔다. 참석자 대부분이 이미 오랜 기간 함께 다닌 분들이라 각자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있다. 서로 할 일을 맡아서 하고 배려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참석자들의 면역 증진을 위해 약을 준비해 오신 약사님, 렌터카 예약과 운전을 맡아하시는 분, 장소 예약, 회비 정산 및 음식 주문을 하시는 회계전문가, 아침 식사를 위해 김치와 누룽지를 준비해 오신 분 등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길 안내를 위해 길을 검색하고 안내하는 리더의 수고스러움은 말할 필요도 없다. 참석자들은 리더의 결정에 잘 따르고 그 외의 필요한 일들을 각자 알아서 처리한다. 마치 잘 훈련된 특수부대 군인을 연상케 한다.
이 길을 안내하는 나들이님은 60대 중반의 건축사로 건축사 사무실을 10년 넘게 운영하면서 직원들에게 금전적인 손해를 보기도 했고, 친척들 보증 서 준 것이 문제가 되어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아내의 권유로 병원에서 검진을 하면서 혈압이 270 이상으로 높게 나와 다른 검진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 이후 그는 살기 위해 걸었다. “걷기란 호흡이다. 한 호흡 들이마시고 내쉬지 않으면 죽게 된다. 내게 걷기란 바로 생명, 생존과 같은 호흡이다. 호흡 못하면 죽듯이 걷지 못하면 죽을 것 같다.” 라고 말하는 그는 지금도 호흡하듯 걷고 일하고 있다.
그는 서울 둘레길, 한강변 걷기, 그 외에 많은 길을 찾아 홀로 걷거나 함께 걸었다. 2017년 말부터 걷기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총 770km에 달하는 해파랑길을 걷기 시작하여 2019년 5월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남파랑길은 부산 오륙도에서 전남 해남 땅 끝 마을까지 이어지는 1,463km에 달하는 남해 둘레길로 2019년 6월부터 걷기 시작해서 2020년 12월에 마칠 예정이다. 2021년 1월부터 서해안길 1,804km를 준비하고 있고, 그 이후에는 DMZ 평화누리길을 걸을 계획이다. 그의 계획에 따르면 총 4,500km에 달하는 코리아 둘레길을 2023년 하반기 경 모두 마칠 예정이라고 한다. 나들이님은 걷기로 건강을 회복하고 삶의 활력을 되찾은 고마움을 걷기 동호회에서 길 안내하며 돌려주고 있다. 덕분에 우리들은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으며 음식, 문화유적지, 다양한 길과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여행의 백미 중 하나는 음식이다. 첫날 도착 후 찾은 식당이 낙지 비빔밥과 도다리 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낙지를 잘게 썰어서 참기름과 야채와 함께 비벼 먹는 밥은 건강과 맛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음식이다. 우렁 강된장과 낫도 그리고 야채를 비벼먹는 비빔밥 역시 잊을 수 없는 건강식이다. 다음 날 아침 식사로 동호회 회원이 만들어 주신 누룽지를 먹고, 전문가 솜씨로 내려 주신 드립 커피를 마시는 것도 멋진 추억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길’이다. 소설가 조정래 등산길과 문화거리를 걸으며 한 위대한 소설가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랜 전에 읽었던 소설의 기억이 사라져 버려 문화거리의 감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오기 전에 만약 태백산맥을 다시 한 번 읽었다면 이 길을 걷는 느낌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부용산 오리길’은 비록 그 거리가 오리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 거리다. 마치 원시림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시 가고픈 길이다. 그 길을 지나 민족 음악가 채동선 생가를 보았다. ‘개천절’, ‘한글날’, ‘3.1절 노래’, ‘진도아리랑’, ‘도라지 타령’ 등을 작곡한 분이다. 생가 대문은 음표와 대표 곡명을 디자인 테마로 하여 만들어졌다. 그 대문이 인상에 많이 남는다.
차를 타고 이동하여 보성 열화정에 들렸다. 옛날 지역 선비 집합 장소이며 의병 열사를 배출 한 곳으로 국가 민속문화제 제162호인 곳이다. 연못과 대문, 정자가 잘 어우러진 곳으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득량역은 나름 문화거리로 조성하려 노력한 것이 보이기는 하지만 어딘가 유치한 구석이 있어서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득량역의 역사와 기차 삯, 득량이라는 지명의 의미는 한 번쯤 돌아볼 만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보성 차 밭이다. 넓은 산에 조성된 차 밭은 온통 녹색의 향연으로 눈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지며 힐링 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차 밭에서 바라본 저 아래 마을의 풍경도 정겹다. 차 밭 중간 중간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 존을 만들어 놓아 분위기를 한껏 부풀리기도 한다. 차 밭은 멀리서, 가까이서, 걸어서, 차를 타고 지나다니며 자주 봐도 볼 때마다 환호성이 절로 난다. 보성 하면 ‘차’가 기억나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보성은 ‘소리’로도 유명한 곳이다. ‘보성 소리 득음길’을 걸었다. 길 입구에는 판소리 성지가 있고, 득음 문이 있으며, 길을 따라 올라가면 폭포 아래 득음정이 있다. 득음정 바로 아래에는 원하는 판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음향설비가 준비되어 있다. 폭포 아래에서 득음하기 위해 분투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윤제림 내 위치한 숙소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한 평생 산과 나무에 바친 윤제 정상환의 손길로 만들어졌고, 부친의 뒤를 이어 아들에 의해 경영 숲의 모델로 만들어진 주월산 일대 소통의 숲이다. 아침 식사 후 주월산 패러글라이딩 장에 차로 올랐다. 정상까지 차로 갈 수 있도록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557M의 주월산은 소통의 숲을 내려 보며 지키고 있다. 주월산 능선에는 풍광을 즐기며 산책에 좋은 숲길이 있다. 특히 하늘 계단 편백 숲길은 잊지 못할 길이다. 속세를 떠나 선계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활성산성 편백 숲 보부상 길’도 기억에 많이 남아있다. 보부상들은 이 길을 목숨 걸고 넘었을 것이다. 맹수와 도적떼의 위험을 무릅쓰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 길을 우리는 배낭을 메고 힐링을 위해 걷고 있다. 보부상길이 보부상들에게는 삶의 길이지만, 우리에게는 힐링의 길이다. 보부상들에게 마을은 힐링의 공간이지만, 우리에게는 삶의 공간이다. 단지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다. 많은 길을 걷고, 많은 문화 거리를 걸었고, 역사를 걸었다. 남파랑길이 모두 정비가 된 후에 이곳들이 한 길로 연결된다면 꿈에 그리던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