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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Apr 20. 2024

<금요 서울둘레길 마음챙김 걷기 11회 차 후기>

통증과 감동 사이

봉상과 앵봉산을 거쳐 구파발역까지 걷는 날이다. 서울 둘레길 코스 중 난도가 높은 길이다. 하지만 천천히 걷고, 중간에 쉬고, 경치도 감상하며 걸으면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오르막길이 힘든 이유는 빨리 오르막에 오르려는 욕심 때문이다. 오히려 천천히 걷고, 뒤 돌아보며 경치도 둘러보고, 잠시 쉬고, 간식도 먹고, 서로 격려하고, 즐거운 대화도 나누고 걸으면 오르막을 오르는 힘듦보다는 즐거움이 커진다. 날씨는 벌써 여름이 된 느낌이다. 종종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만이 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 바람은 무척 달다. 하지만 단 바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힘든 길을 올라야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세상에 공짜는 단 한 가지도 없다. 고진감래(苦盡甘來)! 경치를 즐기기 위해 높은 산에 올라야 하고, 단 바람을 맛보기 위해 힘든 길을 걸어야 한다.      


치통이 심한 날이다. 지난번 치과에 갔을 때 의사가 나를 진료 의자에 눕힌 뒤 엑스레이 찍은 모니터를 보고 그 모니터 위에 마우스로 금액을 써가며 마치 장사치가 흥정하듯 하는 태도가 못마땅하다. 이미 씌운 치아인데, 그것을 제거해야만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엑스레이는 왜 찍었을까? 일단 그것을 제거하면 다시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임플란트 얘기도 하고, 다른 치아도 이상이 있다며 4개월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 의사의  태도를 신뢰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이후 약 2주간 통증이 있다 없다를 반복하고 있어서 조금 더 기다려본 후에 다른 치과에 가 볼 생각이었다. 사나흘 전부터 치통이 심해졌다. 지인 소개로 다음 주 월요일에  치과 한 곳을 예약했다. 이제 마음이 조금 놓인다. 길을 걷는데 치통이 심하게 느껴진다. 특히 물을 마시거나 뜨거운 음료를 마시면 치통은 심해진다.      


침묵 걷기 시간에 소리나 감각에 집중하는 대신 치통에 집중하게 된다. 저절로 그렇게 된다. 치통의 통증이 심해서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치통이 전경에 드러나며 다른 모든 것들, 생각, 잡념, 감정, 느낌, 감각은 저절로 배경으로 물러난다. 간절한 것이 드러나듯 가장 심한 감각이나 느낌이 저절로 드러난다. 덕분에 통증에 마음 챙기는 걷기를 한다. 통증을 느끼며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통증이 느껴지는 순간에는 오직 통증만 존재한다. 내가 통증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명상이 잘 되고 있다. 저절로 잘 되는 것이 아니고, 통증 덕분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간식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면 그 이후에 찾아오는 통증을 예상하면서도 무리하게 시도한다. 가라앉는데 시간이 제법 걸리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통증은 저절로 사라졌다가 다시 떠오른다. 통증과 함께 하는 마음 챙김 걷기. 좋은 주제다.      


여러 번 만난 길동무도 있고, 서로 처음 보는 길동무도 있다. 하지만, 걷기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소속감을 느껴서인지, 아니면 걷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금방 친해지며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다. 도움이 될 수 있는 걷기에 필요한 정보를 나눠준다. 스틱 사용법, 장비 관련 정보, 등산 양말이나 신발 깔창에 관한 정보도 공유하고, 준비해 온 간식을 나눠먹으며 친구가 되어간다. 오랜 시간 함께 걸으며 나누는 다양한 주제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다. 이해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다. 사람의 언행과 다양한 표현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의 경험과 살아온 배경, 사고와 인식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하지만 겉에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매우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따라서 누군가의 어떤 언행에 대한 평가나 판단, 그리고 해석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이해를 할 수 없다면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가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을 하며 억울함을 경감시킬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다면 그냥 들어주자. 그것도 마음을 챙겨서 경청을 해보자.   

   

걷기를 마치고 뒤풀이를 하기 위해 롯데몰 은평점에 있는 식당 ‘비와 별 닭갈비‘에 들어갔다. 드디어 생맥주가 그리워지는 계절이 찾아왔다. 땀 흘린 후 마시는 생맥주 첫 잔의 맛은 최고다. 이 이상의 멋진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처음 세 잔을 가져왔는데 그다지 시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후에 종업원이 찾아와서 맥주 칠링이 덜 되어 시원하지 않아 죄송하다며 다시 시원한 세 잔을 서비스로 드리겠다고 한다. 종업원의 그런 태도가 무척 감동적이다. 최근에 이런 서비스를 받아본 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어떻게든 이런 상황을 모면할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 실수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닭갈비도 주방에서 모두 조리해서 바로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서빙하는 모습도 인상 깊다. 식당에 가면 함께 간 누군가가 음식을 조리하고 나눠주고 굽고 하는 모습이 늘 불편했다. 함께 즐기기 위해 갔는데, 누구는 조리하고 나누고 있고, 누구는 가만히 앉아서 그 음식을 받아먹고 있다. 이는 불공평하다. 그런데 음식을 모두 만들어 바로 먹을 수 있게 서빙해 주니 이 또한 멋진 서비스다.   

   

뒤풀이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싱크대 교체로 정신없다. 아침에 나오며 아내 혼자 싱크대 교체하는 것을 지켜보고 마무리할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싱크대 교체는 끝났고, 이제 뒷정리만 남아있다.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도울 일을 찾아 하며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사실 내가 할 일은 별로 없다. 주방과 싱크대의 물건 배치는 아내가 할 몫이다. 물건을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는 아내의 권리다. 다행스럽게 처남댁이 와서 도움을 주고 있으니 이 또한 고마운 일이다. 아내와 처남댁의 수고에 감사를 표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도 아내는 주방에서 그릇 정리를 하고 있다. 억지로 TV 앞에 앉혀 잠시 쉬게 만든다.      


누구나 삶 속에 느끼는 고통이 있다. 질병의 통증이든 삶의 고통이든 신체의 통증이든 고통은 늘 우리와 함께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잘 지낼 수 있는 이유는 고통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다른 즐거움이 찾아온다는 희망 때문이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반복이 우리네 삶이다. 그 외에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감동과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다. 이런 감정들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시간과 상황이 우리를 변화시키며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통증과 감동 사이에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함께 걸은 길동무, 식당 종업원, 아내와 처남댁에게 감사를 표한다.      


음식 전문가도 아니고 유명한 식당을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어제 받은 감동적인 서비스에 감사를 표하며 그 식당 명함을 공유한다. 이는 광고를 위한 것도 아니고, 특정 식당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다만 감동받은 것이 고마워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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