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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May 19. 2024

걷기란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자유인 Don)

걷기란?

“이제 제대로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혼자 도보 여행을 해야만 한다. 여러 명이 함께, 혹은 심지어는 두 명이 함께 도보 여행을 할 경우 도보 여행은 이름만 도보 여행이 되고 만다. 그것은 도보 여행과는 다른 무엇으로 오히려 소풍에 가깝다. 도보 여행은 혼자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멈춰 서기도 하고, 계속 길을 가기도 하고, 이쪽 길이나 저쪽 길을 따라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리듬대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틴븐슨)     


2017년 산티아고 길에서 그를 만났다. 초행길임에도 그는 마치 현지인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편안해 보였다. 사진도 열심히 찍고 다른 순례자들과 잘 어울리며 즐겁게 걷고 있었다. 피레네 산맥을 오르며 서로 인사를 나눈 후 때로는 같이 걸었고, 때로는 각자 걸었다. 해외 지사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그는 뛰어난 외국어 구사 능력과 친화력이 돋보이는 사람이다. 10kg의 배낭 외에 약 5kg의 무거운 카메라 거치대를 허리에 차고 사진을 찍기 위해 열심히 걷고 뛰고 하며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걸으며 음악을 즐겨 들었다. 음악과 사진은 떼어낼 수 없는 그의 일부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우 긍정적인 사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주변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는 유쾌한 사람이다.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산티아고 대성당 주변에서 축하주를 함께 마셨다. 귀국 후에도 좋은 인연을 유지하며 가끔 만나서 술도 한잔하고 해파랑길을 같이 걷기도 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를 시내 커피숍에서 만났다. 텐트 속에서 잠자며 해파랑길을 걷는 것을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 역시 길을 걸으며 숙소를 찾는데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고, 다시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늘 숙제로 남아있었다. 대안으로 텐트 사용을 고려 중에 있어서 캠핑 장비에 관한 얘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필요한 물품, 제품의 무게와 브랜드 등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는 국내 대기업 임원으로 퇴임 후 새로운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위한 상징적인 활동이 필요했다. 그 당시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의 단절과 앞으로의 새로운 삶에 대한 연결이 필요한 시점에 서 있었다. 또한 부친께서  돌아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추모와 추억을 되새기며 걷고 싶었다. 한 달 이상 홀로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는데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가장 적합한 곳으로 산티아고 길을 선택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퇴임을 하게 되면 계열사나 협력회사에서 1, 2년간 근무할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다.      


"협력회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바로 취업을 하기에 시간이 너무 아깝고 아쉬웠다. 나 자신에게 보상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또한 삶을 돌아볼 시간도 필요했다. 회사 대표에게 양해를 구하고 산티아고 다녀온 후에 취업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산티이고 길을 완주 후 귀국하여 약속대로 9월 11일에 입사했다. 2년간 자문역으로 근무했고, 작년 9월에 인생의 마지막 퇴사를 했다. 퇴사 후에도 다른 회사에서 연락이 왔지만, 이제는 나를 위한 생활에 몰두하고 싶었다. 출퇴근하는 루틴 한 일 보다 자유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조금 일찍 퇴사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다."     


정년퇴직을 한 후에 바로 재취업을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또한 노후 준비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불안해하는 사람들 얘기도 많이 들었다. 개인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전에는 은퇴 후 가장으로 대우를 받으며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었지만, 요즘은 사회 환경의 변화로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설사 재취업이 된다고 해도 얼마 지니자 않아 퇴사를 하게 될 것이고, 다시 직장을 위해 불안한 마음을 안고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가 얘기했던 ‘인생의 마지막 퇴사’라는 말은 의미가 있는 말이다. 그도 역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회사에서 입사를 해도 오랜 기간 근무할 수 없고, 다시 퇴직하고 또 다른 회사를 찾아야 하는 반복 작업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개인적인 취미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회사 업무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의 자유를 향한 꿈을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주말이나 퇴근 후 시간을 이용해 사진과 음악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입사 후 사내 사진 동호회에 가입해서 사진을 배워온 그는 집에 자가 암실을 꾸며놓을 정도로 열정을 갖고 사진 작업을 하기도 했다. 사진은 퇴임 한 이후 그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음악은 어릴 적부터 삶의 일부였다. 집안에 꾸며놓은 오디오 룸에는 수천 장의 음악 CD와 진공관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 오디오 룸은 그만의 유일한 휴식 공간이며 치유 공간이다.      


음악과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한때는 회사 생활이 힘들었던 경우도 있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간의 갈등 속에서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고민 끝에 그는 열정을 당분간 감추고 회사 생활을 성실하게 하기로 결정했다. 가장으로서 그는 가정이 최우선이라 생각하고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일단 마음의 결정을 하고 나니 회사생활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노력 덕분에 임원으로 승진하여 만족할만한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는 국내 대기업에 공채로 입사하여 30년 이상 근무하고 임원으로 퇴임했다. 회사 덕분에 가장 역할을 무난하게 해 낼 수 있어서 회사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퇴임 후 회사에 대한 섭섭함이나, 회사의 인사 동정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선배들의 모습이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자유로운 영혼과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을 지닌 그가 대기업에서 그 오랜 기간 근무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상황에 맞춰 자신의 역할과 욕구를 조절할 수 있는 절제력을 지닌 사람이다.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특이한 학력의 소유자다. 군 제대 후 의대에 입학했으나 3년 만에 자퇴를 했고, 다시 재입학하여 전기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런 이유로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 당시에는 입사 지원 자격에 나이 제한이 있어서 대기업 서류 전형 통과가 어려웠는데, 운 좋게 통과되어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미래가 보장되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의대를 포기한 것은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다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자유를 추구하는 유전자는 대물림되고 있다. 아들이 ‘음악을 하는 의사’가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 역시 미국에서 의예과에 입학했으나, 3학년에 그만두고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재즈를 전공했다. 지금은 국내 광고회사 취직하여 음악 연출 업무를 맡고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 산에 미쳐서 지냈다. 산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고 있는 산장지기가 너무 부러워서 산장지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 후 산을 끊을 수밖에 없었고, 언젠가 산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 그 시발점이 산티아고였다. 그간 굶주렸던 자연 속 야생의 삶을 한껏 누리고 싶었다. 산티아고에서 만장의 사진을 찍었던 이유도 동경했던 야생의 삶에 대한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자연 속에서 자유로운 야생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삶이다."     


그는 지금 초등학교 산악회장을 맡아서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일주일 이상 홀로 텐트와 배낭을 짊어지고 해파랑길,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을 걸으며 사진도 찍고, 음악을 들으며 원하는 야생의 삶을 살고 있다. 가끔 그를 만날 일이 있어서 연락을 하면 그는 월악산에 가 있거나, 해파랑길을 걷고 있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는 태풍 속에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넘실거리는 짙은 황토색의 동해안 바다 사진을 보내오기도 한다.      

   

그는 홀로 걷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일주일 이상 계속해서 함께 걸을 수 있는 동행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누군가와 함께 걸으면 상대방에게 맞춰 걸어야 하고, 걷는 속도, 코스나 걷는 거리, 숙소, 쉬는 타이밍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진을 찍기 위해 중간에 멈춰 서거나 때로는 뒤로 돌아갈 때도 있어서 동행이 있다면 괜한 번거로움을 초래할 수도 있다. 편하고 자유로워서, 또 동행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그는 늘 홀로 걷고 있다.       


“사람들이 왜 걷는가? 또 무엇을 배웠는가?라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딱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Just Walking!! 그 자체 밖에 다른 이유가 없다. 굳이 얘기한다면 '끌림'이라고 할 수 있다. 걷고 싶은 욕망이 강해서 걷는다. 그런 끌림이 옳았고, 그 끌림은 쾌감과 재미라는 선물을 준다. 젊었을 때부터 '자유인 Don'이라는 별칭을 사용하고 있다. 걸으면 자유가 충족된다. 또한 걷기를 통해 삶의 진리를 체득을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진리와 삶은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은 생기고, 스러지고, 없어지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런 진리를 체득하면서 과정에 충실하고 결과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요즘도 그는 시간이 나고 기회가 되는대로 꾸준히 걷고 있다. 산티아고 다녀온 후 제주 올레길과 서울 둘레길을 완주했다. 지리산 둘레길은 80% 정도 걸었고, 해파랑길도 90% 정도 걸었다. 앞으로 계속 걸어서 그 길을 모두 완주할 생각이고 그 외에도 걷고 싶은 길이 많다고 한다. 동해안 길인 해파랑길, 남해안의 남파랑길, 서해안길, 그리고 DMZ를 걷는 평화누리길을 연결한 4,500km에 달하는 코리아 둘레길이 지금 조성 중에 있는데 그 길을 모두 걸을 계획이다. 하지만 빨리 걷고 마치기에는 그 길이 너무 아까워서 맛있는 사탕을 아껴서 빨아먹듯이 이 길을 아껴가며 걷고 싶다고 한다. 그는 길을 걸은 만큼 걸을 길이가 줄어든다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길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삶을 풍요롭게 살기 위한 연습을 꾸준히 해온 그는 할 일이 너무 많다. 보고 싶은 책들이 쌓여있고, 다듬고 정리할 사진도 너무 많다. 아직도 듣지 못한 음악 CD가 수두룩하다. 걷고 싶은 길이 그를 설레게 만든다. 이런 일을 곶감 빼먹듯이 야금야금 하며 살고 싶어 하는 그는 이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고 할 일이 너무 많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Lucky Man이라고 한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경제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왔다. 가장으로 열심히 생활하며 동시에 자신만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추구해왔다. 평상시 그런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왔기에 퇴임 후에도 불안감이나 무료함 없이 자신이 추구해왔던 풍요로운 삶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에게 걷기란 무엇일까?      


"걷기란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인생을 느낄 수 있고, 추구하고 있는 자유를 실현하는 좋은 방법이다. 걸으며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자연과 교감하며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삶의 일부인 사진과 음악과 걷기의 삼위일체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     


그는 닉네임처럼 '자유인 Don'이 되어가고 있다. 사회적으로 또 가정적으로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 위해 오랜 기간 썼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유인 Don'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걷고 있다. 그는 이미 ‘자유인 Don’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추구하며 살아왔기에 퇴임 후에도 방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복한 인생 2막으로 연결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유인 Don’의 멋진 인생 2막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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