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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Apr 28. 2024

걷기란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지니)

걷기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너무 많은 정보를 얻은 나머지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여행은 지식을 버리는 과정이다. 버리고 준비하지 말고 떠나라. 여행을 하면서 스스로 바보가 되는 걸 익혀라. 여행을 하면서 눈으로 얻어지는 정보를 경계하고 버려라. 사물과 빛, 감각으로만 얻으려고 하라.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 두 가지를 항상 생각해라. 두 가지는 정반대의 세계다 (.......)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다. 자연은 도덕이 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걸을 때마다 나 자신과 내가 배워온 세계의 허위가 보였다. 정보는 많을수록 안심은 되지만 실상은 멀어진다.” (후지와라 신야, 일본의 세계적인 도보여행가)


전에 인터뷰했던 방수영 대표의 소개로 그녀를 만났다. 산티아고를 다녀왔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길동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고 편안함과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연한 갈색의 개량 한복 상의에 바지, 그리고 아쿠아 샌들을 맨발에 신고 나왔다. 어깨에는 베이지색 천으로 만든 헐렁한 백을 메고 있었다. 안경 쓴 모습이 지적이면서도 부드러워 열린 마음을 지닌 유연한 지성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모습이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그날은 오후에 비 예보가 있는 날이었다. 아쿠아 샌들은 계곡물에 발 담그고 놀기 위한 신발이 아닌, 비를 즐기며 걷는 사람들을 위한 신발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샌들을 보며 그녀는 오늘 기꺼이 비를 맞고 걷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하고 나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를 맞기로 결정하면 비가 반갑다. 비를 피하려고 하면 비와 불편한 관계가 된다.


어느 날 문득 아침에 일어나 주방으로 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면 어쩌지?’라는 절박감이 불현듯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마치 기계처럼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어떤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결혼 후 학업과 직장도 그만두고 아내와 아이 엄마로 살아왔다. 평상시 좋아했던 영어 공부를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영어 과외나 출강 등을 하며 지냈다. 20대 후반부터 20년 이상 그런 삶을 살아왔다.

그녀에게 지난 50년의 삶은 주변의 기대와 사회의 이상적인 모델에 맞춰 살려고 스트레스를 받고 지내온 세월이었다. 결혼하고 아내로 또 애 엄마로 해야만 하는 역할과 책임에 눌려 살아왔다. 자신의 삶을 ‘내가 나 자신이 되지 못한 삶’이었다고 단 한 마디로 표현했다. 심지어는 먹는 것도 그녀가 원하는 음식보다 가족들이 원하는 것을 사고 먹었다. 좋은 엄마, 바람직한 아내가 되기 위해 살아온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죽는다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 오랜 기간 마음속에서 이런 작업을 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소진되었고, 그녀 자신은 없었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절박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는 나름대로 그녀 스스로 끌고 갔던 자신만의 삶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 후 대학원도 수료만 했고, 전업 주부로서 또 초보 엄마로서 역할에만 충실하게 살아왔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그녀의 책임이었다. 그녀 자신의 삶은 방해받고 있었고, 반면에 남편은 자기의 길을 가고 있었다. 상대적인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며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은 사라지고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책임만 있는 삶이었다. 그녀는 결혼 후 늘 뭔가가 채워지지 않아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단 한순간의 강렬한 느낌이 그녀를 산티아고 길로 안내했던 것이다.


그녀는 여행 TV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산티아고 길’을 아마 방송에서 들었거나 누군가에게 들었던 기억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가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 같다고 한다. 귓속에서 누군가가 ‘산티아고, 산티아고’를 반복하며 얘기하고 있는 목소리를 들었고, 그녀는 그 내면의 목소리가 신이 주신 Calling(소명) 또는 Mission(미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국내 여행은 거추장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언제 어디서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대로 하기에도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자기 마음대로 누리며 꼴리는 대로 살고 싶었다. 50년간 살아온 한국에서의 ‘지니’가 아닌 원래의 ‘나’가 되고 싶었다. 책임감과 사회의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애쓰는 ‘지니’가 아닌, 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닌 온전한 ‘나’로 살고 싶었다. ‘참 나’를 알기 위해 불확실한 세상 속에 자신을 던져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싶었고, 내면의 목소리가 시기적절하게 그녀에게 갈 길을 알려주었다. 그녀가 산티아고를 가게 된 이유다.

원래 무슨 일을 하든지 미리 준비를 철저히 하는 편인 그녀였지만, 산티아고 여행은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떠났다. 세부 계획 없이 신발만 걷기 편한 것으로 준비하고 항공권을 구입한 후 출발했다. 늘 살아왔던 방식으로 사전 준비를 위해 애쓰고 싶지 않았다. 불확실한 것이 주는 불안감도 있지만, 그에 따른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서 무조건 출발을 감행했다.


그녀와 인터뷰를 하면서 내내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녀가 찾는 ‘참 나’는 불교에서 얘기하는 진아, 참 자아, 본성, 불성, 본래면목과 같은 의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에서 참선 공부를 하는 수좌들이 평생 목숨 걸고 하는 화두 공부는 결국 나를 찾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다. 그녀는 언제부터 자기를 찾기 시작했고, 그녀에게 ‘참 자기’란 무엇일까 궁금했다.


“여러 가면을 쓰고 살고 왔고, 살고 있다. 역할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회적인 기준 또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따르는 것이 ‘나’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동시에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할 때 자책감과 실망을 느꼈고, 상황이 나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며 과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신이 나를 창조했다면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왜 나를 창조하셨을까? 그 용도가 궁금했다. 그 목적을 찾고 확인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고 목적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볼 수 없어서 증명이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오직 ‘모르는 나’ 만이 오롯이 남아있다.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은 ‘모르는 현재’라는 것 밖에 없다. 그 ‘모르는 현재’에 살고 있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나의 중심을 잡고 싶었다. 늘 변하는 여러 욕망을 추구하는 ‘어떤 것’은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나’는 아니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지금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곤 한다. ‘모르는 나’를 자각하며 ‘나’를 찾고 있는 과정이다.”


아내로, 아이 엄마로 살아오던 사람이 갑자기 홀로 해외여행을 오랜 기간 나간다는 것이 가족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남편은 그런 그녀의 행동과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둘째 아이가 수능 시험을 본 후 발표 전에 떠나겠다는 그녀의 모습을 남편은 시위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주방으로 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본 그날의 경험은 너무나 강렬했기에, 그녀의 여행은 ‘허가’가 아닌 ‘신고’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오로지 걷기에만 집중하고, 자신을 자각하며, 자신에게 집중하고 걸었다. 그러면서 ‘이게 나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생전 처음으로 ‘내가 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걸으면서 몸은 피곤했지만,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휴대전화 배터리의 잔량 표시가 늘어나듯이. 삶의 중심이 되어 살고 있다는 자유가 주는 기쁨으로 온몸에 자신감과 웃음이 가득하게 되었다. 충만감에 젖어 ‘나를 살 거야’를 외치며 걸었다. 자신감이 커진 만큼 그녀의 목소리도 커졌다. 타인의 시선은 이미 이 순위로 멀어졌고, 그녀 자신이 일 순위, 아니 영 순위가 되어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뭐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답을 찾으며 걸었다.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평온함을 느꼈다. 방향을 잃어버릴 때에도 평온함 속에서 과정을 지켜보면서 방향을 되찾기도 했다. 설사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당황하거나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 방향이 잘못된 선택이라면 다시 리셋하면 된다고 확신에 차서 얘기했다. 걸으면서 경험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걸으면서 모든 존재들과 하나가 되어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 자연, 나무, 꽃 등 모든 존재들과 ‘나’ 사이에 경계가 없어진 느낌이다. 모든 존재와 통하고 하나가 되는 느낌이 마치 마술 같다. 어느 날 수녀원에서 수녀님들이 순례자들에게 걷는 이유를 물으며 각자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 모두에게 노래를 한 곡씩 부르라고 하는데, 내가 머뭇거리자 천상의 목소리로 ‘아리랑’을 불러주셨다. 그런 성스러운 자리에서 노래를 들으니 저절로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쁨, 참회, 지나온 과거와의 이별, 마음속 깊이 자리한 기쁨 등이 자연스럽게 눈물로 표현된 카타르시스였던 것 같다. 그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녀는 길을 걸으며 10년 이상 활동하는 영어 동아리 밴드에 찍은 사진과 글을 올렸다. 밴드 친구들이 오히려 그녀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녀가 걷고 있는 길과 위치를 찾아서 보내 주기도 했다. 그녀가 보낸 사진과 글을 통해 밴드 친구들은 과천에서 그녀와 함께 걷고 있었다. 그들의 응원과 관심이 걷는데 큰 힘이 되기도 했다. 오직 걷기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책 발간은 생각조차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녀온 후 밴드 친구들의 격려에 용기 내어 여행기인 책, ‘길 위의 안식년’을 발간했다.


“가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지금 살고 있다. 우선 영어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었다. 일, 엄마, 아내로서의 부담에서 자유로워졌다. 내성적인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을 만나면 설렌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했고, 느끼고 배운 것을 함께 나누고 싶어졌다. 여행은 어딘가를 가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여행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여정을 들으며 같이 여행을 하기도 한다.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경험했고 알고 있는 것을 나누며 살고 있다.”


산티아고 길이 그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고, 다녀온 후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2017년도 만 쉰 살이 되던 해에 산티아고를 다녀온 그녀는, 2018년도에 책, ‘길 위의 안식년’을 발간 후 인문학 독서 모임인 ‘가장자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다. 가장자리 없는 중심은 없다. 중심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가장자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문학 독서가 가장자리라면, 회원들의 삶은 중심이다. 그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왜 ‘가장자리’라고 명명했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이렇게 해석해 보았다. 그녀는 ‘문학의 밤’ 같은 행사도 열었고, ‘서촌 나들이’ 같은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여성 비전 센터에서 진로 독서 강사로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그녀는 나누면 삶이 훨씬 더 충만해진다고 했다. 그녀는 요즘도 홀로 꾸준히 걷고 있다. 집 주변의 길도 걷고 있고, 제주 올레길도 시간 날 때마다 나눠서 걷고 있다. 2018년에는 섬에서 일주일간 ‘자체 고립’을 하며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홀로 또 함께 지내는 삶의 조화를 잘 이루며 하루하루 충만하게 지내고 있다.


산티아고 다녀온 후 그녀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도전 정신’이 생긴 것이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도전, 과정을 즐기는 도전이다. 친구들의 응원으로 발간한 책이 그녀에게 큰 도약판이 되었다. 자신을 ‘문화 살롱 가이드’라고 칭하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기획, 운영하고 안내하는 가이드라는 의미다. 다녀온 후 ‘1인 1 책 운동’도 펼치며 바쁘지만 즐겁게 살고 있다. 그녀에게 걷기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나는 나를 걷는다.”


그녀의 답변은 확신에 차 있었고 단순했다. 그녀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가 마치 수행자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화두를 참구 하는 수좌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고, 길을 걷는 내내 오직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기를 자각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찾았고, 그 답을 찾는 방법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불화 (佛畵)인 ‘심우도 (尋牛圖)’ 가 떠올랐다. 열 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십우도 (十牛圖)라고도 부르는 심우도의 마지막 그림은 깨달음을 얻은 후 속세로 돌아와 중생을 제도한다는 입전수수(入廛垂手) 단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삶이 바로 이 입전수수 단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 살롱 가이드로서 길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눈 밝은 안내자가 되어 앞길을 밝혀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동시에 자신을 찾는 구도를 향한 끊임없는 정진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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