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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May 05. 2024

걷기란 삶의 충전 배터리다 (슈크란)

걷기란?

"이 순간부터 나는 제한과 상상과 경계선에서 해방되리라.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리라. 스스로 완전하고 절대적인 주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의 말을곰곰이 생각하고, 멈추어 서서, 찾아보고, 받아들이고, 사색하며, 부드럽게 그러나 불구의 의지로 나를 옥죄는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리다. " (걷기의 즐거움, 본문 중)


잠실역에서 그를 만났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활기찬 발걸음으로 웃으며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청바지에 티를 입고 등산화를 신고 하얀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모자에는 산티아고 기념 배지가 정중앙에 달려있다. 그 배지 하나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 걷기는 생활이다. 요즘도 그는 매일 아침 7시에서 9시까지 한강변을 두 시간에 걸쳐 약 10km 정도 걷고, 매월 40만 보, 300km 정도 걷고 있다.

걷기 동호회에서 사용하는 별칭인 ‘슈크란’은 아랍어로 ‘Thank you’를 뜻한다. 토목 기술자로 중동, 미국, 인도 등 해외 현장에서 10년 정도 근무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중동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슈크란’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을 들었다. 귀국 후 매사에 감사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고맙게 느껴져 이 별칭을 사용하고 있다. 토질 기초 기술사로 해외 플랜트 공장 건설, 호텔을 병원으로 변경하는 공사 현장을 진행했다. 국내에 귀국해서 중부 고속도로, 판교 구리 고속도로, 분당 택지 조성 공사 등 대규모 공사 현장 소장으로 바쁘게 살아왔다. 국내 대기업 건설 회사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으며, 최종적으로 미국 TEC 임원으로 퇴임했다. 퇴임 후에도 지금까지 TEC USA 선임 고문으로 위촉되어 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장 소장으로 진행했던 국내외 공사 실적을 얘기하며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목소리는 활기찼다. 그가 과거의 사회생활 경험을 활기찬 표정으로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한 점 미련이나 후회 없이 살아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자신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세상이 운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지난 세월의 모두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건설회사 취업 후에도 근무 외 시간을 이용해 공부를 하며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을 하기도 했다.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을 통해 지금의 그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걷기는 공사 현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수자원 공사에서 수주받아 용담 댐 현장 소장을 맡아 도수 터널 24km 건설 공사 현장을 책임지고 있었다. 현장 소장이 터널 공사 현장을 직접 점검한 기록을 매일 보내라는 발주처의 요구로 공사 중인 터널 속을 걸었다. 누수로 인해 바닥에 물이 흥건히 고여 있는 깜깜한 터널 안을 헤드랜턴과 랜턴용 배터리를 등에 짊어지고 매일 걸었다. 나중에는 주 1회 8시간씩 터널 안을 걷기도 했다. 그는 그 당시 현장을 누비며 걷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용담 댐 공사를 마친 후 본사에서 본부장으로 근무하며 본격적으로 걷기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게 되었다. 2009년에 별 다른 사전 준비 없이 출발하여 사리야부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100km를 걸으며 첫 도전을 시작했다. 그 길을 걸으며 산티아고 순례 완주를 위한 준비 사항을 직접 몸으로 확인했다. 수많은 공사 현장의 소장으로 근무했던 경험이 바탕이 되어 매사 꼼꼼하게 검토하고 확인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 그는 처음 도전을 통해 산티아고 길을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2011년도에 생장에서 출발하는 프랑스 루트 800km를 완주했다. 2013년도에는 아내의 환갑을 기념하여 생장에서 출발해서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지나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 920km를 함께 걸었다. 2015년에는 친구들과 프랑스 르삐 길과 생장, 포르투갈을 잇는 1,260km에 달하는 길을 걸었고, 2017년도에 프랑스 루트를 다시 걸었다. 그는 왜 산티아고 길을 한 번도 아닌  네 번이나 가게 되었을까?


“그 길을 걸으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불편함도 감수하면 추억이 된다. 현장 소장으로 근무할 때 서투른 영어와 해외 발주처로부터 받는 불합리한 요구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다. ‘갑’과 ‘을’의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로 인해 힘들었다. 하지만 산티아고 길 위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오직 두 발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아픔과 고통을 공유하는 모습에 반했다. 누군가가 앉아있으면 다가가서 도와줄 것이 없는지 물어보는 그런 문화에 반했고, 그것이 진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길을 걸으면 마음이 편하다.”


그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사회생활을 하며 받았던 과거의 불편했던 감정을 순화시키고 있었다. 성품이 따뜻하고 차분한 사람이 험한 공사 현장에서 근무하며 발주처로부터 받은 불합리한 요구를 견뎌내고 소화시키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계약 체결 후 발주처의 ‘갑질’을 겪으며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길 위에서 누구나 평등하며 길동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아름다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에게 산티아고는 낙원 그 자체였다. 산티아고 길을 네 번이나 다녀오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용담 댐 현장 소장을 맡으며 터널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그 당시 국내 전문 서적이 거의 없어서 외국 서적을 보며 공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터널 공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독일의 석학이 쓴 책으로 공부했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우연히 독일인을 만나서 같이 걷고 식사를 했다. 식대가 30유로 나오면 그는 자신이 ‘거지’라며 10유로만 냈다. 왠지 푸근한 느낌이 들어서 그가 싫지 않았고 정말로 돈이 없는 사람인 줄 알고 나머지 요금을 기꺼이 지불했다. 산티아고 도착 후 연락처를 주고받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터널 분야의 석학 이름이 인쇄된 명함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부끄러운 듯 내밀었다. 그 ‘거지’가 그 석학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어디서 주웠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냥 길에서 주웠다고 웃으며 얘기했다. 하지만 바로 그 ‘거지’가 그 석학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고, 서로 웃으며 악수를 했다. 산티아고 다녀온 후에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갔다. 그의 부부가 한국에 올 일이 있어서 부부 동반으로 같이 설악산을 다녀왔고, 이후에 초대받아서 독일을 다녀오기도 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 말을 4마리나 소유한 엄청난 부자가 그간 ‘거지’ 행세를 했던 것이다.


이 얘기를 들으며 문수보살의 화신이 어느 스님에게 자신을 만났다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자, 그 스님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쫓아냈다던 설화가 기억났다. 귀인을 눈앞에 두고 알아보지 못한 스님의 무지보다 ‘거지’를 먹여 살린 그의 보살심이 더 돋보인다. 그는 평생 국내외 공사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고, 특히 터널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는 사람이다. 외국 자료를 통해 독학을 하던 그가 자신이 공부했던 책의 저자를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만남은 예견된 것일 수도 있다. 길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이 실은 자신에게 땅 속의 길을 만드는 방법을 간접적으로 가르쳐준 귀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독일에서 만나 터널에 관한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스승과 땅 속의 길을 여는 터널에 대한 얘기를 하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그와 동호회에서 같이 활동하며 그의 산티아고 무용담을 여러 번 들었다. 내가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에도 만나면 산티아고 얘기를 하며 ‘산티아고 블루’를 공유하고 있다. 그가 부인과 함께 걸으면 일어났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바로 체리와 샌드라 사건이 있었다. 부인이 체리가 먹고 싶다며 가판대에서 2kg이나 구입해서 1kg 정도 먹고 남은 체리를 그의 배낭 속에 불쑥 넣었다. 산티아고 길을 걷기 위해 최소한 늘 10kg 이상의 배낭을 메고 걸어야 한다. 매일 20km 이상을 걸으며 몸이 지친 상태인 그에게 필요 이상을 구입해서 먹다 남은 체리까지 맡겨서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화장품 짐도 그의 배낭 속에 넣고, 먹고 남은 음식까지 그의 배낭 속에 집어넣으니 둘이 옥신각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부부는 서로 화가 나서 떨어져 길을 걸었다. 길을 가다가 만난 한국인 대학생들에게 그가 체리를 몰래 줬는데 사실을 알게 된 부인이 화를 냈던 일이 있었다. 이것이 체리 사건의 전말이다.


그날 밤 오세브로의 알베르게에서 머물렀다. 그곳의 알베르게는 시설이 열악한 상태로 침대 사이 칸막이가 없어서 옆 사람과 닿을 수 있는 구조였다. 부부는 일찍 도착해서 1층 침대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의 부인과 몇 번 만나서 즐겁게 얘기를 나눴던 안나라는 외국인 여성이 도착해서 2층 침대를 사용하게 되었다. 안나의 바로 옆 침대에는 산 도적처럼 생긴 덩치 큰 털보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안나를 위해 침대를 바꿔달라는 부인의 요구로 그가 안내 대신 2층 침대에서 자게 되었다. 아침에 눈 떠보니 털보는 사라졌고, 금발의 예쁜 외국인 여성인 샌드라가 그를 보며 ‘Guten Morgen’하며 밝게 인사를 했다. 부인은 그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그의 침대를 밑에서 발로 툭툭 차며 화를 냈다. 그리고 3일 후 뽈뽀(문어) 전문 식당에서 다시 샌드라를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같이 식사를 한 후 식대를 지불하자 아내가 또 화를 냈다. 이것이 산드라 에피소드다. 그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산티아고에서 일어난 아름다운 부부 싸움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크게 싸운 후에 오히려 둘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진 느낌이 들고 신뢰가 쌓였다고 한다. 늘 부인에게 비울 줄 알아야 한다고 얘기했고, 드디어 부인도 비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화장품이나 샴푸도 버리고 비누 하나로 해결하기도 했다. 그 후에 부부 동반으로 페루 마추픽추에 다녀왔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인상을 찌푸린 사람들을 본 적이 없고 모두 웃고 있는데,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 많이 가졌음에도 웃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굳이 좋은 집, 좋은 차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얘기하며 비울 필요가 있다고 얘기하는 부인과 지금도 함께 걸으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의 부인은 산티아고 다녀온 후 친구들 사이에 유명 인사가 되어 산티아고 무용담을 얘기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최근에 그는 부인과 함께 서울 둘레길을 두 번이나 같이 완주하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걷기를 통해 부부는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약은 걷는 것’이라고 했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좋은 약보다 좋은 음식이 더 좋고, 좋은 음식보다 더 좋은 것이 체계적인 걷기’라고 했다. 걷기 전에는 몸무게가 80kg 정도였는데, 걷기 시작한 후 15년간 70kg대를 유지하고 있다. 걷기 덕분에 체중이 저절로 안정되게 유지되고 있다. 또한 젊었을 때는 무조건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는데, 그 ‘빨리빨리’가 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천천히 걸으며 충전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걷기를 통해서 마음을 비우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삶에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조급한 마음도 내려놓고, ‘빨리빨리’에서 벗어나 여유를 갖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걸으며 비우는 법을 배웠고, 비우면서 양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양보하는 마음은 겸손한 마음이다. 산티아고 길은 순례자의 길이다. 그는 그 길을 네 번이나 걸으며 일상 속에서 마음 수행을 하는 진정한  순례자가 된 것이다.


“걷기를 통해 건강한 삶을 살고 싶은 소박한 마음이다. 걷다가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 돈 없이 건강 유지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걷기다. 꾸준히 아내와 함께 또는 따로 걸으며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간 사회생활하고 자식 키우며 살아왔는데, 두 아들 모두 장성해서 내가 신경 쓸 일이 없다. 할 일을 모두 마친 느낌이다. 건강한 삶 외에 더 이상 바랄 것은 없다.”


인도 학자인 하인리히 지머 Heinrich Zimmer는 힌두 철학의 삶의 네 단계를 설명했다. 첫 번째는 하루 중 아침에 해당하는 제자로서 배우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모든 것을 배우고 수용한다. 정오에 해당하는 두 번째 단계는 결혼하여 가장이 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사회적 가면을 쓰라는 요구를 받고 받아들인다. 세 번째 단계인 오후에서는 사회적 의무, 가정적 의무, 경제적 의무에서 벗어나 숲으로 떠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명상과 묵상을 통해 참 자기를 만나기 시작한다. 마지막 단계인 밤에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며 끝없는 걷기를 통해 무아와 무상을 깨닫게 된다. 길을 걸으며 세상의 모든 존재와 하나가 되는 완전한 해탈의 자유를 느끼게 된다. 그는 지금 아마 인생의 오후를 지나 밤으로 가고 있는 시점에 있을 것이다. 그 밤은 어둠을 뜻하지 않는다. 삶의 순리를 체득한 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지혜의 등불을 밝히며 경건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면 늘 산티아고 길을 추천한다. 그가 체득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끼고, 일상 속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는 그렇게 아는 것을 공유하고 갖고 있는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말투도 차분하고 조금 느리지만, 확신에 찬 그의 말에서 신뢰를 느낄 수 있다. 남의 말에 마음을 열고 경청할 줄 아는 열린 사람이다. 40년 이상 사회생활을 열심히 해왔고, 자식들이 모두 성장했으니 가정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할 일을 모두 마친 사람이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상황이다. 산티아고를 다녀왔고 요즘도 꾸준히 걷고 있다. 외동딸은 출가했고,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다. 우리 역시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 외에 별 다른 욕심은 없다. ‘걷기 학교’를 준비하고 있어서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국내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들을 위한 걷기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국내에 좋은 길들이 많이 있는데, 외국인들이 편하게 접근하고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했다. 또한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한 걷기 프로그램도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좋은 조언이다. 앞으로 ‘걷기 학교’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시 참고할 생각이다. 그에게 걷기란 무엇일까?


“내 삶의 충전 배터리다. 동서양의 의학을 대표하는 분들이 걷기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 꾸준한 걷기를 통해 삶을 충전할 수 있다. 걷지 않으면 근육이 소모된다. 건강한 걸음을 하면 체지방이 줄어들고 근육량이 증가한다. 이것 자체가 바로 충전이다.”


석촌 호수 주변 커피숍에서 얘기를 마치고 나오니 사람들이 호수 주변을 많이 걷고 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걸으며 건강과 면역을 챙기려는 분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반갑게 느껴진다. 석촌 호수 주변을 함께 걸으며 등산화에 대한 질문을 했다. 2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외국계 등산화 브랜드를 추천해 주었다. 오늘도 신고 나왔고, 직접 사용해 보고 추천하는 것이니 믿을 만한 정보다. 그가 식사를 대접한다며 그의 단골 식당으로 안내를 했다. 추어탕을 맛있게 먹고 잠실역 지하상가로 들어갔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 걷는 코스라고 한다. 왕복 2.4km 정도로 비가 많이 오거나 아주 추운 날 지하상가를 걷는다고 한다. 그는 날씨와 상관없이 매일 걷고 있다. 다만 걷는 코스만 바뀔 뿐이다. 일상 속에서 걷기를 생활화하며 건강을 지키며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건강과 활기찬 걷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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