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엉클테디 Jul 04. 2021

이런 게 한량이 라이프 아닐까요

동네 마실 그리고 9와 4분의 3 정거장


네덜란드 여행의 여독이 풀리지도 않은 채 다시 브로츠와프. 일어나서 느낀 건 내가 여행을 다녀오긴 한 건지 스스로도 가물가물했다. 한달살기를 하면서 시간을 내어 또 다른 여행을 하고 와서 그런지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인 느낌이랄까.


보통의 여행이라면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사무치는 그리움 또는 흔히 여행 후유증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그래서 특별한 경험이었다.



어느새 브로츠와프의 단칸방이 내 집처럼 느껴졌는지 오전 11시쯤 느지감치 일어났다. 점점 늦잠을 자는 경우가 많아졌다.


거하게 빵2개 라면 메쉬드 포테이토까지


아침을 먹은 후 외출 준비를 했다. 딱히 갈 곳은 정하지 않았지만 동네 주변에 뭐 구경할만한 게 있으려나 궁금하던 찰나에 안나가 브로츠와프 여행 관련 영상을 보내주면서 동네 주변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가 그렸는지 모르지만 어떤 벽화든 정말 잘 그린 게 있다면 넋 놓고 감상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최고의 플랜이었다.


브로츠와프 관광명소 소개

동네 주변 중간중간 골목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그 골목들 안 뒤편에 예술적인 공간이 있을 줄이야. 짧은 클립을 보고 나서 바로 외출하기로 했다.


구글 지도를 검색해보니 정말 가까웠다. 걸어서 5분 정도랄까. 집을 나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골목을 들어갔다. 그러자 영상에서 보였던 벽화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투박해 보이지만 약간의 정교함이 보이기도 한 벽화들이랄까.








몬드리안 작품을 연상케하는 벽화



그럴싸한 천지창조



생각보다 반려동물 벽화가 많아서 반려동물에 대한 폴란드 사람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무하와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도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무하와 구스타프의 그림들을 보고서는 적잖게 놀랐다. 집 근처에 이렇게 멋진 작품이 있다니. 햇빛에 비친 벽화는 더욱더 밝게 빛나 보였고 뒷마당이 한 편의 미술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프리다 칼로와 스폰지밥의 조화



뭉크의 절규




한참을 구경하고 나서 보니 생각보다 벽화들이 많아서 놀랐다. 단순히 벽화가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상상을 자극하게 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마치 해리포터 9와 4분 3 승강장처럼 골목을 들어서면 다른 공간이 펼쳐지는 그런 마법이 깃든 곳이었다.



단순히 심심풀이로 그린 벽화가 아닌 어느 정도 섬세하게 그려진 벽화라서 더욱더 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동네 마실 가는 듯이 가벼운 차림으로 편한 신발을 신고 한 손엔 커피 한 잔 들고 한 모금씩 마시면서 구경하기에 최고의 장소라고 말하고 싶었다.



점심은 르넥근처에서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했거늘


며칠 전 삼겹살을 먹고 싶어 그럴싸한 훈제 삼겹살을 샀다가 너무 짜서 실패를 했다. 약간의 한(?)이 맺혀 마트에서 신중히 보고 또 골라서 다시 한번 제대로 고기와 함께 상추쌈을 해 먹기로 했다. 정육코너에서 어느 부위를 살까 고민하다가 죄다 폴란드 어니까 뭐가 뭔지 모르고 직감적으로 돼지 그림이 그려진 살코기를 구입했다. 그리고 상추까지. 상추쌈을 먹을 생각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래도 상추는 우리나라 상추가 제일 최고인 듯하다.


살코기를 그냥 구우면 맛이 없으니 이번엔 제육볶음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제육볶음은 종종 여행하면서 주방 있는 호스텔에서 가끔 해 먹었던 요리 중 하나라 어렵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나의 제육볶음이 시중에서 파는 제육볶음과 다른 점이라면 특별한 레시피가 아닌 정말 간단한 레시피랄까.


야채들을 먹기 좋게 서걱서걱 손질하고 냄비에 고추장 몇 스푼과 전부 투하해서 쉐이킷 재워두면 끝.


사실 타국에서 한국식 고추장만 들어가면 투박해 보여도 고추장의 매콤함에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푸드가 되기도 한다.



물에 쌀을 불리면서 고기도 같이 양념이 잘 배도록 재워두었다.


충분히 양념이 잘 스며들도록 재워둔 후 한쪽엔 냄비밥을 다른 한쪽엔 제육볶음을 조리했다. 


주방에서 퍼지는 매콤하고 달달한 제육볶음 냄새가 났다. 

이거지 이거야.


고기 굽는 소리는 언제나 들어도 행복하다.




저녁 먹을 준비가 끝나고 냉장고에서 쌈장을 꺼냈다. 역시 상추엔 쌈장이다.



적당히 고슬고슬한 냄비밥과 제육볶음과 상추쌈. 최고의 저녁식사였다. 



한달살기라고 뭐 특별한 게 있을런지. 

이렇게 삼시세끼 잘 챙겨 먹고 놀고 댕기는 게 무엇보다 행복인 걸.




1월 14일 드로잉







1월 14일 현지인처럼 살아보려 하지만 그래도 입맛은 여전히 한국인이더라.


매거진의 이전글 해외에서 살아본다는 건 뭘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