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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식 Jul 18. 2022

여름방학이 시작된 월요일

48일간의 여름방학: 너무 긴 것 아닐까.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알람은 방학 전과 같이 일곱 시 십오 분에 울렸다. 알람을 끄고 십 분을 더 누워 있다가 아, 진짜 영어 공부하기 싫다고 생각하며 거실로 나왔다. 십 분을 더 누워 있은 탓에 이십 분짜리 영어 수업은 어느새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듣는 둥 마는 둥 대충 받아쓰기를 하며 첫 번째 수업이 끝났다. 수업을 듣는 십오 분 동안 해가 나왔다가 다시 구름 뒤에 숨기를 두 번 반복했다. 빨래 잘 마르겠네, 빨래 안 해야겠네 하는 생각을 두 차례 번복함.      


두 번째 수업이 시작됨과 동시에 아이를 깨워야 하는 알람이 울렸다. 학교 갈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각. 깨울까 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방학 첫날이니까 더 오래 자게 두는 걸로. 많이 자면 키 크겠지 뭐.

공기가 습해서 현관문과 베란다 창을 다 열어 환기되도록 둔 채 날씨 어플을 확인했다. 습도 92%. 물속에 있는 거랑 뭐가 다르지. 아 다행히 내가 숨 쉴 수 있네.     


집의 앞뒷문을 모두 열었더니 동네의 모든 소리가 집으로 다 빨려 들어왔다. 지나가는 차 소리, 아침부터 도로공사를 하는 소리, 바쁜 현대 사회인들의 참을성 부족한 경적 소리, 환경미화 차가 쓰레기를 수거하는 소리 등 대부분이 기계의 굉음들. 영어 수업이 들리지 않았다. 볼륨을 높였더니 머리가 아파서 잠시 고민하다 수업을 끝냈다. 방송이 나오고 있는 어플을 끔. 간단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고맙습니다 등이 필요 없는 일방적이고 주입식이며 수동적인 라디오 방송 수업. 그래서 몇 년째 실력이 고만하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여행도 못 다닐 실력이 될 거 같아서 겨우 붙들고 있다. 방송을 끄자 주변의 차들도 멈춘 듯 잠시 고요가 찾아왔다. 아주 찰나의 평온. 드릴 소리를 시작으로 소음은 곧 다시 시작된다. 사과를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싶다. 아삭 사각. 이 소리가 싫어서 사과를 안 먹는 사람들도 있던데. 이 맛있는 것을.     


얼마 전부터 청소기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자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나름 저소음이라는 제품을 쓰고 있는데도 귀가 피로하다. 청소기 대신 정전기 청소포와 물걸레 청소포를 사용해 무릎을 꿇고 청소를 하게 되니 쓰레기가 많이 나오고 몸이 피로하다. 피로사회. 어떤 피로함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고 그냥 조금 더럽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그건 더한 피로를 몰고 오겠지. 질병이라던가, 시각적 더러움을 참아내야 하는 인내라던가, 청소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라던가 하는 것들. 아, 피로하다.      


이 모든 예민함들이 이 아침에 갑자기 몰려오는 이유가 방학이 시작됐기 때문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이제 첫날인걸. 아직 아이가 일어나지도 않았는걸.     


입이, 아니 손가락이 방정이라고, 아이가 일어나서 나오며 잘 자서 뽀얘진 얼굴로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꾸벅 인사한다. 아홉 시 삼십삼 분. 학교 가기 피로해하는 아이를 억지로 깨우지 않아도 되는 건 평화.

거실을 한 번 쓱 훑어본 아이는 휘적휘적 걸어 테이블에 앉더니 어제 산 건프라 두 개 중 하나를 조립하며 휘파람을 불기 시작한다. 휘파바라바라밤. 헤이카카오, 비트박스 틀어줘. 볼륨 두 칸 올려줘. 엄마 나 꿀물 마시고 싶어. 시원하게 할 수 있지?



방학 첫날이 시작되고 있다.

이 모든 예민함들이 이 아침에 갑자기 몰려오는 이유가 방학이 시작됐기 때문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이제 첫날 아침인걸. 아이가 지금 막 일어났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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