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 너머로 배운 배려와 자유의 리듬
미국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한국과 다른 점이 눈에 띈다. 그중 하나가 앞유리와 앞 좌석 유리창에 짙은 선팅이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신호등 앞이나 좁은 도로에서 마주칠 때, 운전자들끼리 눈을 맞추는 일이 잦다.
서로가 어떤 액션을 취하려는지, 말이 아니라 눈빛으로 읽어내야 할 순간들이 많다. 처음 우버를 시작했을 때, 길이 익숙지 않아 헤매던 나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눈치채고 기다려주던 운전자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작은 배려 덕분에 나는 이 낯선 섬, 오아후에서 계속해서 핸들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샤카로 건네는 마음
하와이의 도로 위에는 늘 샤카(shaka)가 함께한다. 엄지를 펴고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린 손 모양.
한국에서는 비상등으로 “고맙습니다” 혹은 “조심하세요”를 표현한다면, 하와이에서는 창문을 내리고 샤카를 흔든다. 두 차선이 하나로 합쳐지는 구간에서 누군가 내 앞으로 들어올 때, 당연한 상황임에도 샤카로 인사를 건넨다. 깜빡이를 켜면 저 멀리서부터 속도를 줄여 주고, 기다려주는 운전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 마음씨 때문인지, 하와이 도로 위에서는 렌터카나 타주에서 온 차량들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샤카의 기원에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20세기 초, 하와이 카훌루이 설탕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하마나 칼릴리(Hamana Kalili)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기계 사고로 중간 손가락 세 개를 잃은 그는 경비원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기차가 지나갈 때 손을 흔들던 그의 독특한 손 모양이 지역 사람들에게 전해지며 오늘날의 샤카가 되었다고 한다. 이 손짓은 단순한 인사 이상으로, ‘괜찮아’, ‘고마워’, ‘편하게 지내’ 같은 하와이의 마음을 담고 있다.
광고판이 없는 길
운전대를 잡고 달리다 보면,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 하와이의 고속도로에는 광고판이 없다.
섬의 풍경을 가리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하와이를 지키기 위해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본토에서 차를 몰 때마다 맞닥뜨렸던 거대한 광고판들이 여기서는 없다. 그 대신 펼쳐지는 건, 구름 사이로 빛이 내려앉는 산등성이, 저 멀리 번져 있는 푸른 바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하늘이다.
운전석 너머로 스쳐가는 이 풍경은 어떤 광고보다 강렬하고, 오래 남는다. 하와이 외에도 미국에서는 알래스카, 메인, 버몬트 등 몇몇 주에서 옥외 광고판 설치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 곳들은 대체로 풍경과 자연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와이 역시 그 선택을 통해, 섬을 찾는 이들에게 “이곳은 자연이 곧 가장 큰 광고”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풍경 속에 남는 마음
우버 운전을 하며 가장 크게 배운 건, 길 위에서 나누는 눈빛과 손짓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는 것이다. 조금은 서툰 나를 기다려주던 운전자들의 눈빛, 샤카에 담긴 따뜻한 배려, 그리고 광고판 없는 고속도로 위에 펼쳐진 풍경.
그 모든 것이 모여, 이곳 하와이의 길 위에는 조금 다른 호흡이 깃들어 있다.
그 호흡 속에서 나는 여전히 배우고, 또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