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와 한국의 8월 15일

기억의 두 풍경

by 하이랜더 HiLander

8월 15일 아침, 하와이는 Admission Day(하와이 주 편입 기념일)라는 주 공휴일을 맞고 있었다.

캘린더를 훑다 잠시 멈추게 되었다.
“한국은 오늘 광복절인데… 같은 날이라니. 한국과 하와이가 정반대의 길을 간 운명의 장난일까?”
스쳐 지나간 생각이었지만, 곧 길 위의 풍경은 그 단순한 우연을 더 깊은 사유로 이끌었다.


아침부터 컨벤션 센터로 향하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고, 주변에는 수백 미터에 달하는 대기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곳에서는 매년 열리는 Made in Hawai‘i Festival이 한창이었다. 처음에는 Admission Day를 기념하는 행사일 거라 막연히 짐작했다.


컨벤션 센터에 가기위해 우버에 올라탄 손님에게 “공휴일을 기념하는 행사인가요?”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단호한 “아니오”였다. 짧고 단호한 답변에 살짝 놀랐지만, 하와이의 역사적 맥락을 떠올리면서 당연한 답변이겠지라고 생각이 들었다.


변곡의 기억

Admission Day는 Statehood Day라고도 불리며, 1959년 8월 21일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행정적으로는 21일이지만, 매년 8월 셋째 금요일을 공식 휴일로 지정하기 때문에 올해는 8월 15일이었다.


연방 정부의 지원으로 인프라가 확충되고, 관광 산업이 급성장했다. 주민들은 미국 시민과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얻었고, 하와이는 다문화 사회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Admission Day는 기회와 통합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리에는 화려한 퍼레이드도, 정부 차원의 대규모 기념식도 없었다. 하와이 원주민 사회의 많은 이들에게 Admission Day는 ‘축하할 수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1893년 왕정 전복 이후 이어진 주권 상실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며, 주 편입은 식민화 과정의 연속으로 인식된다. 관광산업 중심의 개발은 환경 파괴, 주택난, 높은 물가와 같은 문제를 심화시켰고, 이 날은 종종 기쁨보다 상실과 저항의 기억으로 남는다.


Made in Hawai‘i Festival이 던지는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벤션 센터의 “Made in Hawai‘i Festival”은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이 행사는 하와이에서 생산된 제품을 전시·판매하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나는 이 페스티벌 속에서 Admission Day의 복잡한 맥락과 이어지는 또 다른 함의를 발견했다. ‘경제적 종속’이라는 논란의 반대편에서, 하와이가 스스로의 창의성과 재능으로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경제와 문화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원주민 장인과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부스는 그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그들의 작품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지식과 기술, 역사를 담은 문화적 증언이었다. 이들의 존재는 Admission Day가 단순한 상실의 기억을 넘어, 계승과 재해석, 그리고 주체적 가능성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많은 부스에서는 하와이 왕국의 문양, 토종 식물, 전통적 상징을 모티브로 한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방문객들은 그 물건을 구매하면서 자연스럽게 하와이의 역사와 문화를 접했고, 소비 행위는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계기가 되고 있었다.


의도했든 아니든, Admission Day와 같은 공휴일이 이러한 지역적·문화적 실천과 맞물릴 때, 그 의미는 단순한 ‘주 편입의 기념’에서 벗어나 “하와이 그 자체를 기념하는 날”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의 8월 15일, 자유의 회복

이날을 바라보며 나는 자연스레 한국의 8월 15일을 떠올렸다. 광복절은 자유의 회복을 기념하는 날이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주권을 되찾은, 역사적으로 분명하고 단일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한국의 거리와 방송은 온종일 이 날의 의미를 환기한다. 하와이가 ‘변곡의 기억’을 안고 있는 날이라면, 한국은 ‘자유의 회복’을 기념하는 날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모두 이날을 통해 미래를 향한 힘을 다시 확인한다.


길 위에서 남은 질문

하와이의 8월 15일은 화려한 축제보다 침묵에 가까웠다. 그 조용한 풍경 속에서 나는 하나의 질문을 붙잡게 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고, 무엇을 잊으며, 어떤 순간을 역사로 남기는가. Admission Day의 침묵은 부재와 공백이야말로 새로운 해석을 열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길 위에서 스친 짧은 순간은, 역사를 다시 묻게 하는 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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