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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쏘쏘 Jul 15. 2019

몽마르뜨 언덕 가는 길, 눈 호강 입 호강

스물여덟에 갑자기 유럽 7편 - 파리(프랑스)

2019.07.03 후앙씨헝프앙스(프랑스), 파리(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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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게뜨는 역시 파리바게뜨


'아, 여기  프랑스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맛있는 아침이다. 바게뜨, 크로아상, 식빵, 다양한 과일쨈과 버터, 커피와 주스, 요거트. 유럽 숙소 조식의 기본 중에 기본이었지만 이제까지의 조식과는 하나 크게 달랐다. 바게뜨에서 말도 안되는 맛이 난다. 프랑스를 식감으로 실감한다.


빵만 보면 꽉찬 배도 확장시킬 수 있는 빵순이 생활만 28년이다. 한 입이면 파티셰와 나의 궁합이 나온다. 바깥은 바삭하나 속은 보드라운, 바게트의 기적같은 촉감은 아침부터 날 흥분시켰다. 파리에서 지방 2kg 추가 예약합니다.

프랑스 호스텔의 흔한 조식(프리미어 클라세 도미토리룸)


파리에 얽힌 추억이 있다. 수능을 앞둔 고3 가을, 출장을 다녀오신 아버지가 파리에서 태어난 다채로운 색깔의 마카롱 아가들을 한 박스 데려오셨다. 사온 아버지에게조차 단 한 개도 나눠주지 않았다. 한 입에 먹을 수가 없어서 반 개씩 쪼사 먹었다. 이런 나에게 마카롱을 사준 건 아버지가 유일하다. 내 생각에 내가 남자친구들에게 잘 만족 못하는 건 순전히 센스 높은 아버지 때문이다. 아니 마카롱 때문인가.

셀룰라이트를 부르는 파리의 디저트 가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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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뜨 가는 길, 눈 호강 입 호강



어머, 저건 찍어야 돼!


첫번째 파리 투어는 몽마르뜨 언덕이었다. 분명 간판에 카페라 쓰여있는데 이건 정원이다. 건물에 파스텔톤을 넣은 건 누구 아이디어야. 진짜 천재 아니야. 이 핫한 도시에 현대식은 없고 건물 애들이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다 비현실적으로 예뻐.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놓칠 수 없다. 연속 셔터각이다. 결국 자제력이 부족했던 나는 몽마르뜨 언덕에 가기도 전에 배터리가 다 달아 구글맵을 잃고 바보가 되었다. 오늘 눈이 참 호강한다.

파리의 예쁜 상점들과 아주 많은 사람들^^;;


걷다보니 사람들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사랑해 벽' 앞에 와있다. 뽀뽀 자세도 나라별로 좀 다른가? 그런 연구보고서를 내고 싶으면 이 장소를 추천해드립니다. 가지각색 포즈와 소리(?)의 뽀뽀를 나도 모르게 감상하는데 그 애 아버지가 어디가고 안 보이신다. 아버님,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연애에 있어서  적극적인데도 남 앞에선 이런거 오그라들어 견딜 수 없다. 한번은 이 애랑 같이 기타를 연주하는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드는데 걔 앞에서 헤벌레 한 내 모습을 공개하는게 너무너무 싫어 결국 내가 나온 부분만 잘라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이 애가 나랑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지경까지 만든 적도 있는, 나쁜 여자가 되보기까지했다. 평상시에 오지게 센 척 하느라 뽐뿌질된 이성 앞에서 감성이가 쫄보가 되버린거다. 파리에서 이 감성이를 재활치료해줘야겠다. 이렇게 생각만 비장하게 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곱창처럼 쫄깃쫄깃한 촉감이 입안에서 느껴졌다. 오늘 입도 참 호강한다.

뽀뽀 사진은 나와 당신을 위해 올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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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서울보다 6배나 작다



예쁘다!


뚜벅뚜벅 오르다 고개드니 보이는 사크레쾨르 성당이 태양 반사판을 받아 뽀샤시했다.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서 많은 파리의 사람들을 내려보고 있다. 이 작은 도시를 꽉 메우고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을 몇백년 바라보며 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작 70-80년 살면서 이렇게 애쓰며 욕심부리며 사는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인생샷 찍어봐야 갈 때는 빈손으로 가야 한다고. 그냥 지금의 행복을 찐하게 느껴보면 어떠냐고.

죽을 땐 들고갈 수 없지만 찍고 싶은 인생샷


성당에 들어가니 미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유명한 성당인데 자리가 텅텅 빈다. 하늘의 구원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을 중세시대 유럽인들에게 행복의 기준이 그것이었다면, 오늘날 행복의 기준은 뭘까. 나는? 성당 앞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절절하게 나나 다른 사람을 사랑해보긴 했나. 들떠서 종종거릴뿐. 성당의 위엄에 이 생각, 저 생각하다 전에 모시는 스님께서 절에 들어가면 보시를 하라던 말씀이 기억나 절은 아니지만 돈 내고 초 하나를 켜본다. 그리고 잠깐이라도 마음을 모아 고마운 것들을 떠올린다.

내 소원은 비밀이지만 너 소원은 궁금해


파리의 전망이 잘 보기 위해서는 사크레쾨르 성당 꼭대기 입장료 7유로 외에도 튼튼한 관절을 준비해가야 한다. 체력 상위 10% 제외하곤 중간에 한번은 쉰다. 좁디좁은 원형 계단을 오르다 약간의 폐쇄공포증이 느껴질 때쯤이면 빼꼼 하늘이 보여 기뻐하면 황당하게도 또 한번 더 원형 계단이 나온다. 다행히 다 오르면 무리한 관절들을 위해 앉을 수 있는 감사한 의자가 넉넉하게 준비되어있다.

지쳐서 웃음이 안나옵니다만


파리가 서울의 1/6밖에 안된대.


그 아이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저 멀리 에펠탑까지 파리는 정말 그 유명세랑 다르게 믿을 수 없이 작았다. 작을 뿐만 아니라 그 로망의 도시도 위에서 내려다 보니 서울이랑 다를게 하나 없었다. 누가 그런 얘기를 했었다.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곳에서 머물 수 있는 기간이 얼마 안되기 때문이라고.

사크레쾨르성당에서 바라본 6분의 1쯤 담긴 파리 전경


파리의 정수리에서 내려온다. 블로그 추천이 되어있는 근처 프랑스식 가정집에 가니 한국인 천지다. 서로 이 식당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아니까 괜히 민망하다. 옆 테이블 한국인들이 자리를 뜰 때쯤 달팽이요리가 나왔다. 달팽이요리 자체가 신기하긴 했지만 꺼내 먹기 굉장히 불편했다. 골뱅이랑 별 차이도 없었다. 오리 닭가슴살이 맛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파리스러운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달팽이요리는 빼먹는다고 고생해 사진찍을 생각도 못했다


Paris in the rain


파리에 가던 날도 여전히 빌보드 top이던 Lauv의 노래. 서울에서 이 아이와 통화하며 파리의 예쁜 거리를 손잡고 걷는 걸 상상했었다. 그리고 그곳을 지금 노을따라 걷고 있다. 그치만 파리 역시 대부분은 그냥 사람사는 동네다. 물론 에펠탑, 샹젤리제 거리, 센느강 같이 특별하게 예쁜 곳도 있지만 그건 파리의 극히 일부분일 뿐. 파리 역시 아름답다고 하면 참 아름답고 평범하다면 참 평범한, 그곳에 있는 사람에게 달린 많은 도시 중 하나일 뿐이다.


Anywhere with you feels like
Paris in the rain
We don't need a fancy town


너와 함께라면

그 곳이 빗 속의 파리야

멋진 도시도 필요없어


이 가사를 쓴 이 사람은 아마 그런 파리를 아는 것 같다.

파리보다 중요한게 옆사람이란 걸 와서야 알아


도움이 될진 모르겠으나 유럽여행 상담이 항상 열려있습니다.
(카톡 ID : one1w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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