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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쏘쏘 Jul 26. 2019

여행 중에 외국인 친구가 생겼다

스물여덟에 갑자기 유럽 14편 - 슈반가우(독일), 퓌센(독일)

2019.07.10 - 슈반가우(독일), 퓌센(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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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외국인 친구가 생겼다


오늘은 뮌헨 근교, 퓌센에 갈거다. 퓌센 옆 슈반가우란 마을에 말도 안되는 예쁜 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디즈니월드 성의 모티브인 노이슈반슈타인성.

디즈니월드, 임초딩의 버킷리스트^^*


뮌헨 텐트도 이틀째 되니 야무지게 담요를 두르는 스킬을 습득했다. 컨디션 좋다. 하지만 다신 돌아오지 않으리. 뮌헨 텐트를 기쁘게 체크아웃하고 터미널로 향한다.

상주 아이랑 영상통화 중인데 사람들이 갑자기 내린다. 급하게 따라 내리니 슈반가우다. 퓌센에서 내려서 슈반가우까지 버스타야 하는 줄 알았는데 직통이었다, 하하. 여행 중엔 때론 나보다 대세를 따르는게 낫다. 슈반가우 역엔 아침 8시부터 온갖 국적의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인기쟁이 노이슈반슈테인성


Can you speak Chinese?


아침을 못 먹어서 입구 매점에서 1.4유로짜리 프레즐을 들고 계산하러 착실히 줄을 섰는데 누가 말 건다. 거짓말 안하고 중국인이냐는 말을 하루에 두 번은 듣는 것 같다.

"No. I'm from Korea."
"Ok. If you're going to the castle, I wish we go together!"

승낙할 이유도 없지만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같이 가게 되었다. 그렇게 내 생애 처음으로 여행 중에 만난 친구가 생겼다. Olivia라는 눈이 참 예쁜 친구.


Taiwan is different from China.


중국인이냐고 물었다. 대만인이란다. 올리비아는 많은 사람들이 대만과 중국이 다르단 걸 모르지만 다르다고 얘기했다. 나도 한국에서 왔다하면 South냐 North냐 많이도 묻는다. 그때마다 'Korea is one.'이라고 말했지만 외국인들은 더 묻지도 관심갖지도 않았다. 나도 중국과 대만 사정을 잘 몰라 더 묻지 못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젠 국제 뉴스도 많이 봐야 겠다.


Koreans are the best photographers
in the world!


한국인 동행이 내가 처음이 아닌가보다. 학교에서 배운 '최상급' 문법을 한국인들의 사진 실력으로 듣게 되다니. 얼마 안 가 배달의 민족의 위대함을 눈 앞에서 실감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앞에서 내가 찍은 사진과 올리비아가 찍은 사진은 달랐다. 올리비아가 또 최상급 문법을 썼다. 비록 학교에서 죽도록 배운 영어는 입 밖으로 안나오더라도 배운 적 없이 길러진 이 구도에 대한 탁월한 감각 덕분에 한국인 동행은 아주 인기가 좋다.

올리비아가 찍어준 마리엔 다리 전망샷, 이건 인정^^


하지만 모델로서는 달랐다. 대만 모델의 포즈는 넘사였다. 머리를 살짝 넘기면서 땅을 보는 저 청순한 표정. 나중에 셀카봉과 함께 도전해봤는데 나는 도저히 안된다. 사완얼인가(사진의 완성은 얼굴).


Why don't you go inside the castle?


올리비아와 나는 찰떡동행이다. 둘다 성 내부에 들어가는 표를 끊지 않았다. 성이나 성당 내부에 감흥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나의 말에 올리비아가 격하게 공감을 보낸다. 둘은 그렇게 연신 사진만 찍었다.

예쁜 친구가 생겼다, 헿


12시면 뮌헨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는 올리비아 덕분에 노이슈반슈타인 성, 마리엔 다리 등 포토존을 빠르게 섭렵하고 이제 평지로 내려간다. 그런데 왠일, 내려가다보니 주변에 사람이 점점 없다. 어느새보니 Google map이 가라는 경로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11시가 되간다. 그때부터 말도 없이 한참 달렸다. 샛길 후 샛길, 저쪽에 올라올 때 봤던 매점이 보인다.


We made it!


아주아주 시크릿한, 우리 둘만 아는 길이라며 페이스북 라이브 촬영으로 기념했다. 내려오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했지만 시간이 없다. 페이스북 친구를 급하게 맺고 올리비아를 보낸다.


Call me when you visit Taiwan!


너 때문에라도 꼭 대만에 가고 싶어졌다.

둘만 아는 시크릿 로드 개척!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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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슈반슈타인성을 짓기까지 얼마나 외로웠니


저녁 9시 반에 잘츠부르크행 버스이기 때문에 남는 건 시간이다. 노이슈반슈타인성에 한번 더 오른다. 올리비아가 찍어준 사진이 2% 아쉬웠단 건 두 나라의 친선을 위해 비밀...

나는 키가 좀 작아서 특수 촬영기법이 필요해


알프스산을 배경에 둔 이 비현실적으로 고고한 성을 멍하니 바라본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내 인생 영화 '반지의 제왕'에나 어울릴 것 같은 이 산 속의 성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거야. 사람사는 동네랑도 멀고 왔다갔다하기도 엄청 불편한데 말이지.

노이슈반슈타인성에겐 생김새만큼이나 독특한 스토리가 있었다. 그 당시 독일 지역의 국가인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는 왕이 된지 2년 만에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참패한다. 주권을 잃고 왕이라는 칭호만 남은 루트비히 2세는 점점 게르만족 신화에 몰두한 채 몽상 속에 빠진다. 결국 이 슈반가우 산꼭대기인 자신의 어린 시절 고향에 자신만의 환상을 구현해내기 위해 일생과 온 재산을 노이슈반슈타인성을 쌓는데 보낸다. 목적이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성은 현실적이지 않게 지어져야 했었다.

비현실성이 이 성의 목적이라면 정말 완벽하게 성공했다


루트비히 2세가 짠하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끝까지 치유되지 못한 상처입은 마음은 이 노이슈반슈타인성이 다 지어지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고 한다. 돈이 없어서 성을 짓지 못했을 뿐, 내가 루트비히 2세였다면 과연 뭘했을까.

나의 노이슈반슈타인성은 영화, 드라마, TV 버라이어티, 음악이었다. 현실에 없는 러브스토리에 감정이입을 하고, 일상이 아닌 TV에서 웃음을 찾고, 안면식 없는 인디밴드에게 공감을 구하고. 재생목록이 다 끝나면 내 주변이, 내 일상이 그렇게 무료했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그게 어디라도 좋으니 떠나고만 싶었다.

왜 그 때 나는 내 옆 사람들에게 도망갈 생각은 못했을까. 왜 일생동안 루트비히 2세는 주변 사람들에게 여기서 꺼내달라 말하지 못했을까.

알 것도 같다.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으니까. 전쟁에서 진 것,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그거 나 때문이 아니야. 현실이 너무 잔인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라고.

루트비히 2세에게, 이불 안에 박혀있는 나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지금이 최선이고 너는 잘하고 있어.


이제는 혼자서 힘들어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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퓌센, 지금 모습으로 기다려줄래


노이슈반슈타인성, 호반슈반가우성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이제 퓌센역으로 가야 겠다. 퓌센에서 노이슈반슈타인성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이 많다. 자전거도로 덕에 뚜벅이도 쉽게 길을 찾아간다.


자전거도로 옆으로 높은 가로수들, 키작은 건물들 사이로 걷는 기분이 좋다. 뒤돌아보니 노이슈반슈타인성이 디즈니랜드 마크만큼 작아졌다. 뮌헨, 퓌센, 그리고 그곳의 나무들. 왠지 아쉬울 것 같아. 조금 더 천천히 걸을래.

한국에 가면 그리울 것 같은 독일의 Big 나무들!


왜 이렇게 예뻐?


슈반가우와 퓌센 사이의 레흐 강을 건넜다. 퓌센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그림인지 실물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교회가 나왔다.

진짜 그냥 내가 꼭 합성같음


노이슈반슈타인성 외엔 퓌센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게 없다. 그치만 교회 위로 뻗은 낮은 언덕엔 연노랑, 스카이블루, 연두 건물들이 정말 파스텔족인 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건물 위에 아기자기한 그림 그려놓은 건 너가 처음이야!


파리는 한번이면 족한 곳이었다. 아름답다는 느낌이 가슴에 닿기도 전에 내 두 다리 설 곳부터 챙겨야 했으니까. 알프스 융프라우도, 뮌헨 마리엔 광장도, 슈반가우 노이슈반슈테인성도 도착한 순간 떠나고 싶었다. 시각이 주는 자극보다 생존에 대한 본능이 훨씬 더 강력했다.

진해에 사는 내 친구는 군항제가 돌아오면 절대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더 듣지 않아도 안다. 여의도 불꽃축제 때 올림픽대로 위에서 밝았던 하늘에 노을이 질 때까지 버스에 갇혀 화난 마음을 달랬었지. 제주가 고향인 분이 관광지로 변해버린 제주를 보며, 팬티입고 수영하던 어릴 적 제주를 가슴 저릿하게 그리워하는 슬픈 소설도 기억에 진하게 남아있다.

내가 다시 가고 싶지 않을 정도인데 파리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조금 덜 예뻐도 좋으니까 조금 더 평화롭고 싶지 않을까.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 그 아름다운 마을에서 놀고 먹고 떠들고 싶은 나. 함께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퓌센이라 쓰고 평화라 읽습니다. 퓌센 with 레흐강


조용한 퓌센이 좋다. 기차가 오기 전 세시간동안 이 파란 하늘과 진짜 잘 어울리는 이 예쁜 건물들을 맘껏 누렸다. 바퀴가 달린 귀여운 목조의자가 있는 공원도, 저 멀리 노이슈반슈타인성이 보이는 이 두 건물 사잇길도, 얼굴만한 프레즐을 0.7유로(약 900원)에 파는 아이보리색 빵집도 다 너무 좋아.

이 바퀴의자 너무 귀엽잖아!


이상형을 드디어 만났는데 기차가 오고 있다. 나중에 한번 꼭 올게. 그때까지 지금의 모습으로 기다려줄래. 언젠가 너가 너무 많은 휴양객으로 지금의 모습을 잃게 되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아.

그냥 나 없이 찍는게 더 예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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