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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스망 Oct 23. 2021

전혀 솔깃하지 않은 다섯 가지 이야기

10. 휴먼 디자인을 통해 배우고 있는 것

■ 휴먼 디자인과의 만남, 9년 뒤에


휴먼 디자인을 만난 지 벌써 햇수로 9년이 됐다. 


공부할 초창기에는 어떻게 휴먼 디자인을 알게 되었냐고 사람들이 내게 물으면  '나도 알 수 없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이끌려 왔다'라고 답했다. 그 당시에는 그 대답이 진실이었다. 그렇게 답한 후로 아주 더디고 답답한 속도로 조금씩 공부를 해나갔다. 


9년이 지난 지금, 이젠 누군가가 내게 휴먼 디자인을 왜 공부하느냐고 묻는다면 나 스스로 납득할만한 어떤 얄팍한 이유 정도는 댈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은 흐른 듯 느껴진다.


똑같은 정보를 마주하더라도 그것을 체험하는 양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니, 당연히 휴먼 디자인을 접하고 배우는 사람들의 목적이나 이유도 사람들이 살아온 배경과 스토리만큼이나 각양각색일 것이다.


내가 휴먼 디자인 공부를 통해 배우고 있는 다분히 주관적 견해가 깃든 다섯 가지를 말해보려 한다. 


■ 휴먼 디자인을 통해 배우고 있는 다섯 가지  

난 휴먼 디자인을 접하면서 평생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풀 수 없었던 나만의 굵직한 삶의 이슈들을 해소할 수 있을만한 단서를 얻었다. 또한 내 안에 언제나 꿈틀거리고 있었던 이 삶의 거대한 신비에 대한 호기심에 대한 갈증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만한 단서도 약간은 얻은듯 하다.    


그러는 동안, 내 몸속 깊이 뿌리 박혀 있던 아주 오래되고도 깊은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되어 한 동안 아주 깊은 어둠의 시간들을 홀로 보내기도 했다. 또한 오랫동안 내가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던 뿌리 깊은 신념들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정보들을 접하면서 토가 나올 정도의 메스꺼움도 느꼈다.  


그렇게 나름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시간들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야, 내면 깊은 곳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아주 뿌엿고 희미하게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내게 일어난 변화, 그리고 그로부터 내가 배워 나가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다. 그로부터 '겸손'을 배우고 있다


휴먼 디자인은 소위 '마야에 대한 절대적 지식'이라고 불린다. 이 지식을 통해 그동안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세상과 인간에 대한 놀랍고도 충격적인 단면들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거대한 우주가 움직이는 프로그램, 그 거대한 우주에서 너무나도 미비한 인간의 위치, 그 거대한 우주와 미비한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놀랍도록 긴밀한 상호작용, 그 상호작용 가운에 펼쳐지는 인류 역사의 거대한 흐름과 진화, 그리고 인간의 몸이 작동하는 놀라운 방식 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관통하는 단어는 아마도 '메커니즘'일 것이다. 이 우주와 인간의 작동 메커니즘을 통해서 내 시선의 중심은 '인간(나) 중심'에서 '프로그램(전체성)' 중심으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이기적이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내가 이 삶에서  '겸손'이란 걸 배워나가고 있다.


이러한 미묘한 관점의 변화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내가 체험하는 삶의 양상을 서서히 바꾸어가고 있다. 신기하다. 인식의 틀에 따라 경험하는 실체가 바뀌는 것이 말이다.



둘째,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와 폭'의 변화다. 이를 통해 '지평'이 확장되고 있다.  


으레 일반 사람들은 삶의 어떤 한 측면만을 바라보며 다소 편협한 시각을 가지기가 매우 쉽다. 나 스스로가 지금도 가지고 있는 좁디 좁고 편협한 편견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휴먼 디자인은 분명 어떤 한 측면에 고정되어 있는 우리의 초점을 넓혀주며 자연스럽게 세상과 인간을 보는 그 시야의 깊이와 폭을 확장시켜준다.      


이 과정 중에 동반되는 감정적 불편함, 껄끄러움 등의 어려움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이 지구라는 땅 위에서 두 발을 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시선이 조금이나마 다채로와질 수 있고, 우리의 지평이 보다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반길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오랜 무지와 고통의 해소로부터 오는 '기쁨'이다. 이를 통해 점점 '자유'로와지고 있다.   


나도 모르게 오래되어 화석처럼 굳어버린 신념. 나도 모르게 내 무의식에 뿌리깊게 각인된 믿음, 의식적으로 알 수도 있겠지만 정작 나 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편향된 사고방식 중에는 사실 어떤 타당하고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에게는 나도 모르게 나의 일부로, 우리 사회의 일부로, 이 세상의 일부로 깊게 각인되어버린, 그래서 윤리적, 도덕적, 관습적 잣대로 어떤 것을 판단하고 비판할 수밖에 없었던, 그로 인해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혹은 스스로를 자책하고 책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들이 있다. 

          

우리 인간세상에 작동하는 다양한 측면을 ‘메커니즘’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동안 무지와 오해로 인한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역으로 다시금 느낄 수 있기도 했다.    


이를 단순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휴먼 디자인은 고통의 짐을 덜어주며 조금은 자유로와질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는 것은 아닐까 한다.

  


넷째, 선택권 없음의 '자유'다. 그로부터 삶에 대한 '신뢰'를 배우고 있다.  


휴먼 디자인에 따르면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온 유일한 이유는 단 하나다. 그것은 삶이 무엇인지 목격하는 것이다. 이는 소위 '승객 의식'이라 불린다.


모든 결정은 이미 내려져있으며 승객은 이미 내려진 결정을 선택한다. 휴먼 디자인은 이를 '선택권 없음'의 자유라고 말한다.


어떻게 선택권 없음이 자유가 될 수 있다는 말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머리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세련되고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휴먼 디자인을 공부하고 9년이 지난 지금에야, 마인드를 통해 생존전략을 탐색해 온 과정들이 얼마나 대단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피곤하고 고단한 일이었는지, 그리고 내 마인드가 내 삶의 자연스럽고 풍요로운 선택들을 얼마나 기를 쓰고 필사적으로 가로막고 있었는지 인식할 수 있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선택권 없음은 그동안 날 가둬두었던 정신적 감옥,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날 아주 조금씩 해방시켜주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고통, 저항, 불확실함, 두려움들은 여전히 내 안에 이글이글거리고 있다. 그러나 비록 그것들을 내 안에 가득 안고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내면 깊숙한 곳 어디선가에서는 아주 뻔뻔하리만큼 '괜찮다'라는 느낌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 삶은 내게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나는 안전하다'  '나는 괜찮다'. 이렇게 난 조금씩 삶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랑'이다.


휴먼 디자인은 우리는 완벽한 수준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메커니즘의 일부라고 말한다.


그 거대한 메커니즘 속에서 인류가 거하고 있는 보금자리인 창백한 푸른 점 지구를 바라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렇게 조언했다. '우리처럼 작은 존재들에게 우주의 광막함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건 오직 사랑뿐이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이러한 '의미'를 찾아야만 생존할 수 있도록 진화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휴먼 디자인을 공부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이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발견하고 실현하고 싶은, 미처 내가 인식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나를 내몰고 있는, 나도 모를 내면의 깊은 어떤 욕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태어난 이유와 목적,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나와 당신이 태어난 목적, 그리고 이렇게 서로 다른 우리가 지구라는 한 지붕 아래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 이유.


이 모든 것의 이유와 목적은 칼 세이건이 말한 '사랑'이 아닐는지. 나같이 냉정한 사람의 마음을 유일하게 눈 녹듯이 녹일 수 있는 유일한 그것, '사랑'말이다.


아마도 난 그 '사랑'의 의미를 찾는 여정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휴먼 디자인은 내가 그 여정을 걸어갈 수 있도록, 사랑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듯하다.


  ■ 우리를 인간으로 살아 숨 쉬게 하는 것들  


누군가는 겸손, 신뢰, 사랑, 자유와 같은 추상적인 말을 듣고 몹시도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룻밤 사이에 백만장자가 됐다는 이야기처럼  솔깃한 이야기가 전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그 솔깃하지 않은 미묘한 변화들이 내가 휴먼 디자인을 공부하는 근본적 이유다. 동시에 앞으로도 변함없이 내가 추구하고 배워나가고 싶은 것들이다.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너무나도 빨리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게다가 최근  놀라운 과학적 발견들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과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혹자는 이것을 '존재적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말하는 미래에 관한 예측서 「초예측」에서는 향후 미래의 첫 번째 어젠다로 인간이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제기하기도 했다.  다소 극단적이긴 이야기이긴 하나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 때문에 경제적 가치를 잃고 무용 계급으로 전락한 인간이 과연 어떤 의미로 살아가는 가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어쨌든 이렇게 기하급수적 변화가 일상이 되는 시대에 휴먼 디자인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겸손, 사랑, 신뢰, 자유와 같은 얼핏 솔깃하지 않을 수 있는 의미와 가치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이 가치들은 거대하고도 급속한 변화의 소용돌이에서도 변하지 않을 근본적 가치이자, 우리 인간이 계속 추구해야 하는 숭고한 의미이며,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풍요로움이다.   


우리를 정작 인간으로서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은, 거대한 부와 권력으로도 살 수 없는 바로 이러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들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가슴속 깊은 곳에 품고 있을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유용한 내비게이션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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