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정원과 영혼을 가꿔라”
-베로니카 쇼프스톨
내가 나를 만난 적이 과연, 언제였던지 가물가물하다. 항상 나는 물리적으로 나와 같이 있는데, 내가 ‘나’를 가장 알지 못하고, 내가 가장 멀게 느껴지는 ‘나’라는 것은 인생의 큰 아이러니다.
한때, 가끔 몸을 가지고 산다는 건 참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때가 되면 먹어야 하고, 때가 되면 일어나야 하고, 때가 되면 씻어야 하고, 때가 되면 화장실을 가야 하는 일이, 또 그렇게 이 몸을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 버겁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그렇게 힘들게 유지한 몸이 시간이 갈수록 늙어가고 힘이 빠져가고 볼품없어지는 것 또한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내 몸을 가지고 지금, 50대에 가까워진 40대 중후반이 됐다. 그렇다. 지구 시간으로 반백 년 가까이 숨을 쉬며 산소를 소비하고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며 살아가고 있다.
학업과 우정이 거의 삶의 모든 것이었던 10대 학창 시절을 지나 , 스트레스가 일상이 돼버린 직장인 신분으로 커리어에 목숨을 걸듯 살아온 지도 벌써 20년이 됐다. 그 유명한 웹툰 드라마 ‘미생’처럼 네모난 상자 같은 공간에서 상사, 동료 후배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울고, 기뻐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섰던 수많은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간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가는 게 죄가 아닌데, 왜 나는 자꾸 움츠러드는 걸까?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기에 이만큼 최적일 때가 또 있을까? 누구에게든 이러한 시간이 생애 몇 번쯤은 꼭 필요하리라.
하지만 막상 이렇게 나를 만나는 시간은 여전히 부끄럽고 어색하고 두렵다. 이 정도 나이면 이렇다 할 삶의 업적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 흔한 결혼과 육아도 경험하지 못한, 이렇게 남들 다하는 평범함조차도 갖추지 못한 것 같은 내 삶을 돌아본다 한들 과연 나에게 남는 그 무엇이 있을까?
하지만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은 조그만 상자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상자 밖으로 용감하게 이끌었다.어느덧 나는 그 상자 밖에 나와 상자 안 세상이 전부일 줄 알고 눈먼 장님처럼 살던 나를 마치 다른 사람인 양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마치 영화 ‘시네마 천국’의 남자 주인공이 영화 뒷좌석에 앉아 스크린에 비춘 자신의 과거 모습을 회상하듯 보는 것처럼 말이다.그러면서 스토리라고 할 만한 내 삶의 스토리가 스르르 떠올랐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었고,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왜 그렇게 사랑이 없는 메마른 삶을 살게 됐는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나는 내가 어떻게 사랑으로부터 단절되었는지를 이해해야만 했다.
그렇게 나와의 설레는 첫 데이트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