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이별하는 일 D-19 | 워홀의 전리품은 무엇이어야 하나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영국의 유명한 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가 만든 다큐멘터리 필름 'Exit through the gift shop'의 제목이다.
갤러리, 아쿠아리움, 뮤지엄 등의 관광 명소에서 기념품 가게를 지나야 만 출구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드는 상업주의를 비판하는 제목으로 내용은 프랑스 출신, LA 이민자 Thierry Guetta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라피티 아티스트를 동경해 그들의 작업 현장을 따라다니는 Guetta는 유명한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의 스타일을 모방하며 창작 활동을 하면서 본인 스스로 그라피티 아티스트로 거듭난다. 모작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품들이 급기야는 높은 가격으로 팔리기까지 하는데, 관객들 사이에서는 이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내용이 진짜인지 아니면 모큐멘터리(Mocumentary) 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2010년도 썬댄스 출품작으로, 아카데미 어워드에서도 베스트 다큐멘터리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바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런 뱅크시의 제목처럼, 새로운 경험 뒤에 늘 물건으로 기억을 남기는 관행이 어려서부터 체화돼서인지, 어떤 일의 끝자락에서 기념품을 사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번에도 역시 워홀을 끝내고 가려는 시점에서 '워홀의 전리품'으로 뭘 사가야 할지라는 자연스레 고민이 드는 걸 보며, 새삼 뱅크시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그런데 전리품은 전쟁에서 이긴 승자가 패자로부터 약탈한 승리의 표식이므로, 워홀 취업 전쟁에서 실패한 내가 전리품을 취한다는 건, 사실 논리가 맞지 않는 얘기다. 하지만, 전사보다 전쟁터에 대해 더 잘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여전히 승자는 아니지만 참여자의 눈으로 어떤 것이 고국에 훔쳐오고 싶을 만큼 탐났는지에 대해 설명해보려고 한다. 이 글의 제목이 되어준 뱅크시의 정신을 계승해, 귀국 때 사가야 하는 기념품 리스트보다는 영국에서 한국으로 훔쳐가고 싶을 만큼 좋아 보이는 것들을 비물질적인 대상들 위주로 정리해보려 한다.
1. 프로페셔널리즘
영국에서는 본인의 프로페셔널한 분야에 있어 못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꺼려한다. 개인적으로는, 이걸 가장 크게 느꼈던 공간이 학교와 미용실이다. 일단 방문 시 '손님 이건 고데기예요'는 기본적으로 예상하고 방문했던 이전의 미용실들과 달리, 영국에서는 'A, B 방식으로 해서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에 대해 최대한 맞춰 보겠다.'라는 식의 협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이 얘기는 어느 쪽이 실력이 더 좋고, 나쁘고를 따지자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소비자의 요구에 대응하는 방식이 영국에서 더 프로페셔널하다고 느꼈다. 또 다른 케이스인 학교는 워크숍에 상주하는 테크니션과 관련이 있었다. 미대 특성상, 기술적인 부분에서 테크니션 분들과의 조율을 통해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분들도 절대 '그 작업은 못한다거나, 그렇게는 안된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시도해본 적은 없으나, 한 번 새로운 방식을 써서 해보자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안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손님의 요구에 무조건 응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려운 부분에 있어서는 당연히 영국에서도 어렵다고 얘기를 한다. 하지만,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소비자 혹은 학생의 입장에서 납득이 가도록 설명을 해주는 부분, 본인이 경험해본 적은 없더라도 작업자 본인의 능력을 믿고 같이 해결해보자고 하는 에티튜드가 내 눈에는 좋게 보였다. 어쩌면 이건 개개인의 프로페셔널리즘이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익숙하지 않은 일을 시도해도 될 만큼, 실패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만 나올 수 있는 에티튜드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도 누구나 착취당하지 않을 만큼의 노동을 하면서, 전문 지식을 존중하고 그로 인해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는 그런 문화가 조금 더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프로페셔널리즘을 꼽았다.
2. 장애 이용자 시설
보통 장애 배려 시설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배려라는 말이 폭력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팟캐스트 '서늘한 마음 썰'의 '당신이 만났어야 할 사람들' 에피소드를 들으며 알게 됐다. 배려라는 말이 폭력적일 수도 있는 이유는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시설은 당연하게 존재해야 하는 공공재로 인식되는 반면, 장애인이 이용하는 시설은 비장애인의 '배려'를 바탕으로 한 시설이다라는 시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장애인구는 약 258만 명*이다. 우리나라 인구 약 5178만 명 기준* 4.9%가 장애를 가졌다. 이는 일상에서 친구를 100명을 사귀면 그중 5명은 장애인이라는 뜻인데, 나는 장애를 가진 친구 혹은 지인이 없다. 주변을 떠올려 봐도, 가족 구성원 중 장애가 있는 경우가 생각나지 않고, 학교의 '특별반'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과 같이 배치된 교실만이 내가 장애를 가진 사회 구성원과 한 곳에서 함께 생활한 유일한 케이스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일상생활에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상호 작용을 하는 정도가 낮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영국에서도 장애인들을 위해 대단한 일은 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정보의 접근성이 조금 더 높고, 비장애인의 권리만큼 장애인의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예를 들어, 갤러리나 뮤지엄에는 저시력자나 휠체어 유저를 위한 라지 텍스트 본이 늘 구비돼있다. 휠체어 유저의 경우 다른 관람객 보다 많은 공간을 차지 하기에, 관객들이 몰려있는 작품 설명에 다가가서 보려 할 때 동선이 엉키는 것을 걱정해 작품 설명을 읽지 못할 경우를 고려한 것이다. 또, 영국의 전철인 '튜브'의 노선도에는 에스컬레이터나 계단 이용 없이 역 입구에서부터 승강장까지 접근할 수 있는 스텝 프리 역(step-free)들이 심벌로 명시돼있다. 모든 버스에는 휠체어와 유모차를 끌고 내리기 용이하도록 경사로(Ramp)가 설치돼 있고, 그 경사로를 사용할 때 타 승객들도 눈치를 주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영국에 놀러 온 지인들로부터 종종 '영국에는 장애인이 많나 봐'라는 말을 듣는다. 영국의 장애 인구 비율은 실제로 한국보다 훨씬 높은 22%*에 육박한다. 그러나 이는 내 지인들이 언급한 거동 장애인 외에 기타 장애를 포함한 수치다. 한국에서 많이 보이지 않는 거동 장애인이 유독 영국에서 많이 보이는 이유는 분명 그 수의 차이에도 있지만, 장애 시설이 공공재로 설치된 비율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에도 이미 장애 시설 설치를 위해 힘쓰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앞으로시설 뿐 아니라 눈치 주지 않는 분위기, 불쌍하다고 여기지 않는 분위기 등이 조금 더 확산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3. 역사를 보존하는 방식
아무래도 영국은 수많은 식민지를 바탕으로 자기 발전을 이뤘기에, 식민 국가의 문화재는 약탈하고, 파괴하면서 자국의 역사를 보존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유리했을 것이다. 이건 그들의 부끄러운 문화라는데 이견이 없다. 영국 내 수많은 아카이브가 어떤 배경으로 지속 가능했는지 알지만, 그 종류와 수가 방대해서 늘 그 점이 부럽긴 하다. 가장 가깝게 접했던 곳이 학교라서 계속 학교를 예시로 들게 되는데, 예를 들어 모교에 있는 1900년대의 보그, 바자 등의 패션 잡지를 빼곡히 모두 모아둔 레퍼런스 컬렉션들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 외에도 고서적, 페인팅, 레코드, 하다 못해 자국민도 아닌 쇼팽이 생전 마지막 강의를 떠나기 전 들렀던 곳까지 블루 플라크로 만들어 아카이빙 할 정도로, 영국의 역사 보존 방식은 한국으로 훔쳐 가고 싶은 것 중 하나다.
참고 자료
우리나라 인구수 ('20, KOSIS 장래인구추계)
한국의 장애 인구수 ( KOSIS 전국 연령별, 장애등급별, 성별 등록장애인 수)
영국의 장애 인구 비율 ( UK Government Family Resources Survey 20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