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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책방 Oct 26. 2020

어른이 되어 읽는, 오즈의 마법사


아이가 노래 듣고 노는 걸 좋아하기에 우리집 AI 스피커는 하루 종일 노래 부르고 동화 읽어주느라 떠들기 바쁘다. 덕분에 나도 오래전에 부르고 들었던 동요나 동화를 듣고 있다. 며칠 전에는 스피커가 오즈의 마법사를 읽어주었다. 어릴 때 읽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이는 미끄럼틀도 타고 블록도 가지고 신나게 노는데 내 귀는 스피커로 향해 쫑긋하게 세우고 있었다. 이야기는 금방 끝나고 나는 얼른 <오즈의 마법사> 책을 주문했다. 밤에 아이를 재우고 읽기 시작했다.      





황량한 캔자스의 한 곳에서 강한 토네이도 바람이 불어, 그 바람을 타고 도로시는 오즈의 나라로 가게 되었다. 캔자스로 돌아갈 방법을 알려줄 마법사를 찾아 떠나는데 그 곳에서 함께 마법사를 찾아 떠나는 친구들이 생긴다. 뇌가 없어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허수아비,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싶은 양철 로봇, 겁이 많기에 용기를 가지고 싶은 사자, 그리고 도로시와 강아지 토토까지 그들은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 여러 모험을 하며 경험을 하게 된다. 모두의 소원을 가지고 이 소원을 이뤄줄 수 있을 가장 위대하다는 마법사 오즈까지 찾아갔다. 다른 친구들은 각자의 소원을 이루었지만 도로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얻지 못하고 남쪽의 착한 마녀를 찾아 다시 떠난다.      



오즈를 찾아 떠나는 중에 도로시의 친구들은 도로시에게 왜 고향으로 다시 가고 싶은지 물어본다. 도로시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고향이 아무리 황량한 잿빛이라 해도, 그리고 다른 곳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우리 사람들은 고향에서 살고 싶어 해. 고향만 한 곳은 없어.

<오즈의 마법사>  라이언 프랭크 바움 지음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하더라도 항상 엄마가 해 준 집밥이 그립고 고향집에 내려가면 아빠의 잔소리도 정겨울 때가 많았다. 더 새로운 곳에서 처음 해보는 것들을 하며 이 생활을 즐겼다 하더라도 아프면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고, 밖에서 무시당하고 쪼그라든 마음을 붙잡고 울고 있을 땐 세상에서 가장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고향집에 가고 싶었다. 도로시가 한 말 한마디에 고향을 떠올렸건 순간들이 기억났다. 작은 도시인 내 고향, 늘 새롭고 큰 도시로 나가고 싶었던 나였지만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마음속엔 늘 고향이 존재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학교 도서관에 자주 가서 책을 읽었다. 아마도 공부하기 싫은 마음이 나를 도서관으로 데리고 갔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생이 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는 않았지만,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세상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담은 책에 늘 눈이 가 있었다. 그때 ‘호주 워킹홀리데이’ 에 관한 책을 발견하고는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 당시에 나에게 어떤 작은 변화가 일고 있었다. 친척 아저씨 중에 한 분이 우리집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명문대 공대를 졸업하고 해외에서 몇 년간 긴 여행을 다니고 오신 분이었는데, 우리 집에 있는 지구본을 보시더니 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신다고 하셨다. 이 오래된 지구본, 삼촌이 나에게 사 주셨던 선물이었다. 그때 난 처음으로 해외 생활담을 생생히 들었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일기장엔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 목록에 하나를 더 채워 놓았다. 해외 여행 다니기 그리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말이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는 집 근처에 있는 대학에 지원하지 않으려고 했다. 고향을 떠나 큰 도시에서 살고 싶었다.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살아왔던 난, 이곳에서 벌어지는 여러 이벤트가 지겨워졌고 더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세상은 내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할 것 같았고 책에서 읽은 곳도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난 스무 살부터 고향을 떠나 살기 시작했다.      



새로운 곳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혼자 지내는 대학생활은 쉽지 않았다. 다 경험이고 나에게 큰 영양분이 되어줄거라 믿고 묵묵히 참을 때도 많았다. 한참을 학교에서 과제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잊지 않은 한 가지 약속이 있었다. 그건 ‘호주 워킹홀리데이’ 였다. 가는 것부터 타국에서의 생활이 두려우면서도 설레었기에 꼭 가야했다.      



호주로 가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 있으니 두려움이 컸다. 계획 했던 것들을 하나씩 실행하고는 있었지만 내 뜻대로 곧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새로운 곳에서 처음 해 보는 것들이 많았기에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매일을 보냈었다. 대학교 다닐 때와는 이건 차원이 달랐다. 세상이 무서울 때도 있고 아파도 도움을 받는 것도 힘들다는 생각에 지독하게 외로웠다. 아마도 내가 배고 자던 내 베개의 속통은 눈물로 엄청난 얼룩이 져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내 힘으로 구한 일자리에서 6개월 동안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일했고 번 돈으로 영어공부하고 여행도 다니고 돌아왔다.      



도로시는 고향으로 가고 싶은 소원을 품고 남쪽 착한 마녀를 찾아갔다. 하지만 마녀는 도로시가 신고 있던 은 구두가 고향으로 바로 데려다 줄 거라고 한다.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도로시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도로시 뿐만 아니라 도로시의 친구들 뇌가 없는 허수아비,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 모두 자신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고 해도 어느 위험한 순간이 닥쳤을 때 스스로의 기지를 발휘해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와도 그들은 어떻게든 해결해 나갈 힘을 가지고 있었다.  

    

“너의 은 구두가 사막을 건너게 해줄 거란다. 구두가 지닌 마법의 힘을 진작 알았더라면 오즈 나라에 온 첫날 엠 아줌마에게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랬다면 저는 훌륭한 뇌를 얻지 못했을 거예요. 농부의 옥수수 밭에서 평생을 보냈을 거고요.”

허수아비가 소리쳤다.

“저는 따뜻한 심장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숲 속에서 녹슨 채 서 있었을지도 몰라요.”

양철 나무꾼도 말했다.

“그리고 전 영원히 겁쟁이로 살아야 했을 거예요. 숲 속 어떤 동물도 저를 칭송하지는 않았을 거고요.”

사자도 거들었다.

“모두 옳은 말이에요. 저도 이렇게 좋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하지만 이제 모두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얻고 각자 다스릴 나라까지 생겨서 행복해하니, 저는 캔자스로 돌아가야겠어요.”

<오즈의 마법사>  라이언 프랭크 바움 지음        


   

도로시는 캔자스 고향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고향이 아닌 이 곳에서 정착하여 살고 있다. 타지에서 한국과 내 고향이 미치도록 그리워서 돌아가고 싶은 날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이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치열하게 지냈던 날들이 보석같이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 걸음, 한 걸음씩 성장하고 있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며 나는 나를 계속 돌아보고 어떻게 지내왔는지 짚어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라고 하기엔, 어른인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그때처럼 낯선 곳에 가서 일하고 공부하라고 하면 쭈뼛쭈뼛 망설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땐 어리고 무모할 만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몰랐기에 가능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난, 내가 자라고 정든 곳을 마음 깊이 품고 지금 내가 정착한 곳에서 고분고투하면서도 정겹게 살고 있다. 도로시외 친구들의 여정을 읽고 있으니 어렸던 내 모습과 부모님과 함께 살던 날들이 그리워진다. 이 마음 가득 안고 친정엄마와 영상통화 하며  달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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