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정여울 지음
매일 울고 싶었던 날이 찾아 왔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륵 흐르고 있는데, 눈물이 내 발등에 떨어지고 나서야 내가 울고 있는 것을 알았다.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나에게 달려와 나를 흔들고 괴롭히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아이를 돌보면서 집안일은 끝이 없고 뛰어다니면서 늘 엄마와 함께 놀고 싶은 아이와 씨름을 하느라 내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가을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올 초부터 아팠던 목, 어깨, 손목의 통증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늘 두통을 동반하고 있었다. 좀 쉬고 싶었다. 또 읽고 싶은 책이 많고 쌓여 있는데 하루에 3장이라도 읽을 시간과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게 속상했다. 밤에 겨우 책 조금 읽고 글도 쓰고 있는데, 이 시간마저 아이에게 빼앗기는 날에는 아이를 원망하고 싶었다. 이제 점점 하고 싶은 게 생기고 있는데, 아이와 함께하는 것이 아닌, 이제 내 것을 하고 싶은데, 이토록 힘들다니. 읽고 쓰는 것,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이고, 평생을 두고 하고 싶은 내 것인데 지금의 나에게 어떤 좋은 것을 주고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읽고 쓰고 싶은 마음이 아이와 남편을 힘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화살이 되어 나에게 돌아오기도 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 와선 육아에 열심히 남편을 두고 매일같이 잔소리를 해댈 수도 없고, 이 힘든 마음 좀 알아달라고 말하자니 똑같은 말의 반복인 것 같고, 남편도 노력하고 있고 힘든데 나만 왜 이렇게 징징대고 있는 걸까. 한숨이 눈물로 이어져 마음에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엄마일까, 나는 나 자신을 잘 돌보고 있는 걸, 남편에게 울면서 매일 하소연만 하고 있는데, 남편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읽고 쓰기는 나에게 어떤 좋은 점을 주고 있는 걸까. 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이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내 마음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 심리 상담을 받고 싶어서 집 주변을 검색하고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갈 시간도 나지 않았고 선뜻 용기도 나지 않았기에 다시 나는 책을 뒤적거렸다. 이런 나를 따뜻하게 안아줄 책이 필요했다. 그저 ‘괜찮아’, ‘좋아질거야’라는 단순한 긍정메세기가 아닌, 내 정신, 심리를 깊게 파고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해 주었으면 했다.
그러던 날에 이 책을 만났다. 평소에 정여울 작가의 책을 좋아하기에 당장에 읽지는 않아도 늘 책장에 구비하고 있다. 제목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를 보고 있으니,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나를 돌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이런 마음의 우울감이 치밀어 오르다니, 대체 이 책은 나에게 뭐라고 말해줄까 궁금해졌다.
책의 초반만 읽어도 나에게 필요한 책 이라는 것을, 단번에 느낌이 왔다.
<스타워즈>의 명대사, “포스가 함께하기를 May the force be with you”이야말로 ‘자기 안의 신화를 살아내라’는 융의 메시지와 일치한다. 포스는 곧 자기 안의 무한한 가능성이며, 자신을 믿어야만 비로소 발휘되는 무의식의 빛나는 재능이니까. 28쪽,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정여울, 김영사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스타워즈 시리즈의 명대사를 이렇게 해석하다니. 영화를 볼 때는 몰랐었다. 그저 영화가 끝난 다음엔 포스가 함께하기를 이라고 남편에게 말하며 킥킥대며 장난치고 웃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정여울 작가는 이 대사와 융의 메시지를 빌려, 나를 믿어야 내가 빛난다고 한다. 지금의 내 상황에서 내가 가진 이름표들이 부담스럽고도 버거웠는데, 내가 나를 믿으면 내 안의 힘을 끌어낼 수 있다고 하니...... 일단 마음의 문을 조금 여는 데는 성공했다.
이 책은 245쪽으로 얇은 편이지만 생각보다 긴 시간동안 천천히 뜯어가며 읽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읽다가도 멈춰 서서 밑줄 긋고 나를 대입해서 읽고 있으면 책은 나도 모르던 부분까지 깊게 들어가 마음상태를 파악해 주었다. ‘괜찮아, 나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대신에 ‘그래 계속해봐. 하고 싶은 말 해봐. 다 했어? 그럼 내가 말해줄게. 넌 지금 잘 하고 있는 거야’ 라고 안아주는 것만 같다.
고통이 엄습해올 때면 그것을 표출하기보다는 승화할 것을 꿈꾼다. 아프다고 소리치며 화를 내고 물건을 깨뜨리는 것은 표출이지만, 아픔을 오래오래 발효시켜 글이나 음악이나 그림 같은 또 하나의 미디어로 표현하는 것은 승화다. 이 승화의 과정이 우리를 끝내 구원한다. 106쪽
스트레스가 터질 듯 말 듯, 시한폭탄을 가슴에 안고 사는 것처럼 울화통이 울렁이던 날에 우리는 꼭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무언가를 찾는다. 단순히 목 터져나가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던져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목이 아프고 발이 욱신거리고, 무언가는 고장 나거나 찢어져 있거나 부서져 있다. 마지막엔 괜한 짓을 했다고 하며 꼭 후회를 한다. 이럴 때 정여울 작가는 ‘승화하라’고 한다. 이 말 한마디에 마음이 조금씩 계속해서 풀어졌다. 아이를 재우고 나도 같이 잘 법하지만, 자지 않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책 읽으려하고 밤에도 노트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쓰려고 하는 지금의 이 자세는 바로 ‘육아스트레스’를 승화하는 과정이다. 지금 당장에 들어오는 수입하나 없고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지만 괜찮다. 나는 지금 소리 지르지 않고 물건 던지지도 않으며 우아하게 글 쓰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마음이 잔잔해진 것도 잠시, 다시 파도가 치고 회오리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낀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육아!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안일! 사람이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이렇게 ‘일’이 된다는 것을 느끼는 날에는 한숨이 퍽퍽 나오며 어디 대나무 숲에라도 가서 소리를 지르고 싶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한소리 하고, 아이가 밤에 잠든 모습을 보며 나는 한없이 미안해진다. 나에게 와줘서 고맙고 사랑한다고, 마음속으로 수천 번을 말하고 또 말했다. 그 날 밤에 읽었던 문장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가족이기에 인간이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사랑스러운 존재가 내게 와줬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물론 지나간 모든 시간의 과오마저도 끌어안게 되는 더 큰 사랑이 바로 그것이었다. 240쪽
분명히 말하지만, 이 책은 육아에 관한 책, 엄마 마음을 달래주는 엄마 책도 아니다. 마음 치료에 관한 에세이고 심리학자의 말과 그에 관한 작가의 분석과 이야기가 있다. 읽는 상황에 따라 책을 받아들이는 게 달라지기에 나에게 이 책은 우울감에 일렁이는 육아맘을 달래주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육아맘이기에 육아책, 엄마 마음에 관한 책을 꼭 찾아서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일부러라도 육아 책을 찾아서 읽었지만 여러 권 읽고 나니 진정으로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엄마이기에 느끼는 감정을 말하는 책에서는 공감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거니와, 사람마다 느끼는 모성애와 우울감 차이는 컸다. 이러한 것들을 알고 나서는 ‘엄마책’을 자주 보지 않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알 것이다. 아이가 정말로 사랑스럽고 세상에서 가장 예쁜데 내 속을 뒤집어 버려 화가 나고 그에 따라서 우울감이 온다는 것을, 이런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동시에 온다는 것을 말이다. 그럴 때는 내 마음을 돌볼 여유도 없기에 이런 감정들을 제대로 짚어보지 못하고 애써 참고 넘기려 한다. 내 옷을 사러 쇼핑몰을 기웃거리다가도 아이에게 필요한 것, 집에 필요한 것이 갑자기 생각나서 쇼핑몰을 의도치 않게 닫아버리게 된다. 아이는 예쁜 옷 입히고 유모차에 태웠지만 엄마인 나는 썬크림 대강 바르고 모자 쓰고 함께 외출하는 날이 일상적이다. 엄마들이라면 알 것이다. 나를 돌볼 여유가 없는데 마음까지 신경 쓸 틈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다가 종종 울화통이 터져 울고 있을 그녀들에게 나는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일단 얇으니까 읽기에 좋다고 말을 할 것이며, 각 장마다 내 마음을 돌볼 틈을 주고 헤아려 준다고 할 것이다.
내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 그것은 내 인생의 주도권을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는 강인한 뚝심을 기르는 것이다. 내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한 순간도 잃지 않는 것이다. 245쪽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삶의 주도권을 어느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고 꽉 붙들고 있으라고, 용기를 가지고 살라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