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잘 때 같이 자면 되지 왜 책 읽고 있어요?’
블로그에 비밀댓글이 달렸다. 출산하고 일 년도 되지 않았을 때 달렸었다.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힘들면 자면 되지 왜 책을 읽는데? 왜 힘들다고 징징거리는데?’ 와 같은 뉘앙스가 풍기는 댓글이었다. 이 댓글을 보다가 화가 나서 지워버렸다.
그래, 내가 왜 안자고 없는 시간 쪼개서 책 읽고 글 쓰는 거지? 내가 왜 이렇게 하는데? 댓글을 쓴 사람처럼 힘들면 밤에 자면 되는데, 왜 안자고 이런 생활을 해 오고 있는 건지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뱃속에 꼬물거리던 아기가 태어나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아이는 20개월이 되었다. 매 순간 정신이 없었다. 말을 다 하진 못해도 이제 아기는 엄마 말을 알아듣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려 하고 있다. 옹알옹알 거리며 얼굴 표정으로 표현을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못알아들어도 엄마인 나는 아이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고 있다 아는 것 없이 우왕좌왕하며 툭하면 눈물 뚝뚝 떨어뜨리던 내가 제법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처음부터 엄마였던 사람은 없듯이, 초보엄마 티를 팍팍 내며 몸으로 부딪혀가며 육아를 하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금은 베테랑 엄마가 된 것도 아니지만 아이를 낳았던 1년 전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니 전쟁터였다. 아기의 시간에 내 시간을 맞춰 지낼 수밖에 없는 완전한 엄마의 시간으로 하루가 꽉 찼다. 밥과 반찬을 만들 정신도 없고 끼니에 맞춰서 먹기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아기에게 모유수유를 하기에 엄마가 먹는 것은 모두 다 아기에게 전달된다. 엄마가 잘 먹어야 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국에 밥 말아 후루룩 먹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서 아기를 안고 살살 흔들며 동요를 불러주기도 하고 집안에서 유모차에 태워 왔다 갔다 끌어보기도 했다. 아기 달래고 재운다고 동요 ‘곰 세 마리’를 부르며 나도 같이 눈물을 주룩주룩 흘렀던 날들도 많았다.
임신을 하자마자 지독하게 힘들게 했던 입덧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일상생활이 완전히 바뀌었다. 일상에서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져서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았다. 7년 동안 수많은 야근과 철야를 반복하며 일했다. 힘들게 배우고 일한 것은 어디도 가지 않고 몸에 제대로 각인이 된다고,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 안에서 경력을 알차게 쌓아 나가고 있었다. 경력과 지식이 같이 성장하니 자신감도 많이 붙었다. 경험과 실력이 쌓이며 커 가던 내 모습을 보며 여태 고생했던 과거를 들춰보며 스스로 대견했었다.
나는 회사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학교, 회사 안 밖에서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존재를 확인하곤 했다. ‘나’로 살면서 내 마음을 배부르게 하고 만족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엄마로 살면서 나보다 아기를 더 신경 쓰며 돌보고 있다. 당연한 변화라고는 하지만 곧바로 받아들이기에는 쉽지 않았다. 경제적 독립을 가능하게 했고 나를 전문적으로 일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던 일터가 없어졌다. 명상으로 고요한 정신을 유지했었던 날도 없어지고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롤러코스터를 타며 한 순간 우울감이 찾아왔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즐거워했던 날들이 없어졌고, 평온하게 자던 밤잠도 포기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점점 나약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 할 때,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때였다. 임신, 출산 전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나는 마음의 그릇이 너무나 작았고 약한 체력은 금세 바닥나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왔다.
그랬던 나였다. 그런 내가 아기를 안는 것부터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까지, 이 모든 게 처음인 초보라 늘 조심스러웠다. 아기에게 온 신경을 쓰며 엄마로 삶을 시작했다. 여태 살면서 이토록 행복한 순간이 어디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기를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엄마에게 와 줘서 고맙다고 수백 번을 말하고 얼굴을 쓰다듬어 준다. 하지만 아기를 보며 엄마로써 행복한 거지, ‘나 ’로써의 삶을 사는 데는 허전한 공백이 생겼다. 물리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출산 전보다 아주 많이 줄어들었다. 아니, 없다.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육아와 집안일만 해도 꽉 찼다. 그러다 보니 내 시간은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온전히 엄마로써의 시간들로 가득 찼고 나를 위한 시간은 만들어야 생겼다.
읽고 쓰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갈증이 시작되었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아기를 가지기 전부터 머릿속 물음표를 따라 지식을 열심히 읽어내고 즐기던 시간이 그리웠다. 뱃속에 아기를 품고 있었을 때 즐겁게 했었던 글쓰기가 떠올랐다. 블로그든 글쓰기 모임이든, 글로써 여러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고 교류하고 웃고 울었던 날이 생각났다. 또 회사 다니는 동안 아침시간에 책모임을 하며 언니 오빠들과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출근을 했었던 그 아침 시간이 그리웠다. 끝없는 한풀이에 그치는 대화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거기에다가 회사에서 일하는 존재가 아닌 엄마로 살기 시작하면서 집 안에만 있기에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단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회사는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고 있고, 그 자리를 대신 채워줄 사람이 들어온다. 내 자리는 이제 없는 것이었다. TV를 보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도 없으니 어떻게 사람들이 사는지도 모르겠고 세상에서 나의 흔적은 점점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나 여기 있어! 여기에 있다고!’
외치고 싶었다.
내 존재를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댓글도 남기면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렇게 글 쓰고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세상에서 내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나를 돌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나의 선택으로, 원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발버둥 치다보니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책 읽는 시간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만들어낸 시간이었다. 이 귀한 시간에 책 읽고 글도 쓰며,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살고 있다. 나의 이 일상 속에서 나는 세상 속에서 사라져가는 내 자리를 확인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 열심히 살 수 밖에 없다.
“아기 키우면서 어떻게 글 쓸 시간이 있어요?”
“네, 씁니다. 잠을 덜 자더라도 쓰고 싶어요. 짧게라도 써야 엄마가 아닌 '나'로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절박하니까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