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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책방 Jul 16. 2020

오늘도 품격있는 하루를 보내었다

낮잠 잘 시간이 다가오고 아이의 눈 커플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졸리는데 엄마랑 더 놀고 싶은 마음에 침대에 앉아 졸면서도 짜증내며 안 자려고 발버둥 친다. 한참을 실랑이 벌이다가 안 되는 날엔 음악을 틀어준다. 아이는 눈이 똥그래지며 음악이 들리는 휴대폰을 귀에다 갖다 대기도 하다가 점점 눈이 스르륵 감긴다. 드디어 잔다. 오늘도 베토벤이 날 구해주었다.      



밤이 되면 우리 집은 전쟁터가 되었다. 육퇴를 하고 잠시 쉬고 있으면 다시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진다. 밤마다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온 몸에 힘을 주고 땀이 날 정도로 울어댄다. 졸려서 눈을 마구 비비고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지만 눕혀 놓으면 발악을 하며 운다. 돌을 앞두고 한 달 전후로 돌 치레 한다고 하길래 이때가 지나면 괜찮아지리라 믿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림책 읽어주고 토닥토닥하며 재웠는데, 신생아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하루 종일 아이와 같이 있는 난, 밤이 되면 체력을 모두 소진하고 쉬고 싶지만 우는 소리를 내내 듣고 있으니 한껏 예민해졌다. 신생아 때도 많은 음악을 들려주곤 했는데 지금은 그때의 자장가였던 음악들이 아무 소용없이 울어대기만 했다.      




어릴 때 엄만 피아노학원을 오래 동안 하셨다. 동네에서 실력 있는 선생님이라, 학원생들을 데리고 대회에 나갔다 오면 각종 상을 받아오곤 했었다. 나는 자연스레 ‘피아노 선생님 딸’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피아노를 잘 칠거라고 생각했었다. 음악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반주를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내가 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늘 부담이 앞섰다. 그 상황이 너무나 싫었다. ‘피아노 선생님 딸’이란 이름표와 달리 난 피아노를 잘 치지 못했다. 그저 엄마가 치는 곡이나 어느 누가 치는 연주를 듣길 좋아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엄마가 만들어준 좋은 환경 덕에 클래식음악을 편안히 들으며 많은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고등학생 때 불면증에 잠깐 시달렸던 적이 있다. 병원 처방전을 받아 약을 먹기도 했었다. 그때 잠에 들기 위해 별별 노력은 다 했지만 쉽게 잠들긴 힘들었다. 자포자기하며 라디오를 틀었다. 그때 새벽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리는 베토벤의 비창. 분명히 피아노로 쳤었고 많이 들기도 했던 곡이었다. 베토벤의 강하고 인상적인 모습이 아닌 서정적 선율의 피아노 연주곡이라 평소에 좋아했던 곡이었다. 이곡을 어두컴컴한 방에서 조용히 듣고 있으니, ‘망했다’는 한숨이 점점 줄어들고 마음이 이내 편안해졌다. 어느새 잠들었다. 푹 자고 일어났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아이에게 <비창 제 2악장>을 틀어주었다. 잔잔한 반주에 맞추어 무게감이 느껴지는 분위기에 점점 빠져든다. 엄마의 불면증을 다스려 주었던 베토벤의 음악이 아이의 잠을 다스려 주고 있다니, 신기할 뿐이다.      



하지만 이 음악으로 모든 잠을 다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음악을 들려줘도 생떼 쓰며 울음이 그치지 않는 날도 있다. 너무 많이 울어서 탈수 올까봐 걱정되었던 날도 많았다. 베토벤이든 모차르트든 쇼스타코비치든, 다 필요 없다. 그래도 아이가 잠들락 말락 하면서 잠들기가 힘든 날에 제법 도움이 되었다. 아이를 잠재우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아이와 나를 도와주는 베토벤, 이제는 그가 작곡한 음악을 하나씩 알아가고 싶다. 거기에다가 그의 일생이 궁금해서 그에 관한 책도 읽고 있다, 그와 나의‘운명’적인 끌림이 시작되었다. 베토벤의 어린 시절부터 청각 상실까지, 어떠한 음악가와 교류를 하며 배웠는지 읽어가고 있다. 아이가 낮잠 자는 짧은 시간에 책의 절반을 읽어버렸다. 책 속의 이야기와 그때 탄생된 음악까지 연결해서 듣고 읽고 있으니 너무나 재미난 시간이 되었다.      



그의 진정한 성공은 귓병이 발병하고 난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유 음악가로서 경제적인 독립을 성취하고 귀족들의 도움으로 확고한 명성을 얻었지만, 음악가로서의 생명을 끝낼 수도 있는 치명적인 귓병을 앓았다. (중략) 그에게 더 강력했던 것은 귓병을 극복하고 음악가로서의 사명을 완수해야겠다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베토벤> 최은규 지음      




혼자 아이를 돌보는 건 회사 야근, 철야보다 체력이나 정신적으로나, 더 지쳐가고 있지만 아이가 커가는 만큼 나 역시 마음수양 하듯 성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아이에게 음악을 들려주지 않았으면 나도 이렇게 매일 같이 베토벤을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베토벤의 다른 음악들을 들으며 그의 책을 읽으려는 시도는 있을 수 있어도, 이토록 자세히 듣고 즐겁게 빠져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마 음악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같은 음악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도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 지니까 들었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되게 육아를 하고 있으니 베토벤의 음악이 더 절실하게 듣고 이 상황을 극복해보려 하고 있다.      




고된 육아 속에서도 잠시나마 음악을 들으며 말랑해진 감성은 잃지 않았다. 머리 질끈 묶고 헐렁하고도 편안한 잠옷을 입고 있는 나지만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 앞에 앉아 음악의 선율을 느끼고 있다. 오늘도 난 베토벤 음악을 들으며 아이와 함께 품격 있는 하루를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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