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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책방 Aug 14. 2020

머리 뚜껑열리는 날에도 책은 계속 된다

책이 육아맘을 달래고 깨우친다


나는 매일 육아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수십 번 왕복하고 있다. 우리집 아이는 이제 18개월에 입성했고 자아가 강해져서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고 있다. 손가락질과 ‘어, 어어’ 하는 말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하고 좋고 싫은 것도 명확하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대견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나를 들었다 놨다 하며 잔잔한 호수 같았던 내 마음을 파도치게 만든다. 말귀를 알아듣지만 몇 단어 빼고는 말을 하지 못하기에 아이는 알아듣기만 하고 결국 원하는 대로 하려 한다. 우리의 대화는 없다. 서로 원하는 것을 눈이나 손, 입으로 표현하고 있다. 배고프면 밥 먹으면 되는데, 간식의 맛을 알아서인지 곧바로 밥으로 손과 눈이 가진 않는다. 졸리면 자면 되는데 더 놀고 싶어서 침대에 앉아 졸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귀엽다가도 짜증이 섞인 칭얼댐과 울음이 터지면 ‘왜 안자는 걸까?’ 하며 궁금증이 생기다가도 답답해서 속 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들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는 아이의 18개월. 하는 짓이 정말로 예쁘지만 동시에 하루에도 몇 번이나 머리 뚜껑 열릴 정도로 욱할 때가 찾아오는 18개월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매일 경이로움을 느낄 기회가 있는데도 그것을 마다하고 감정의 마비상태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오프라 윈프리 지음




오프라 윈프리의 말처럼 아이와 함께 보내는 하루 중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대견하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순간은 여러 번 찾아온다. 밥만 잘 먹어도 기특하고, 포크질을 여유롭게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병풍 책에서 보았던 동물이 다른 책에도 있어서 그 책을 찾아서 오고, 포크레인 장난감에다가 비슷하게 생긴 포크레인 스티커를 가지고 와서 붙이고 똑같다고 엄마한테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도치맘의 모습으로 나는 변신 한다. 하지만 아이와 기 싸움을 하며 속이 뒤집어 질 때면 이런 경이로운 순간은 한 순간에 묵인되고 나는 흔들리고 만다. 아이에게 화가 난건지, 참지 못하는 내 모습에 화가 난건지, 아니면 이렇게 키우고 있는 것이 맞는 건지도 모르게 활활 불타던 내 마음은 한 순간에 얼어버린다.



육아를 하며 나는 매일 수십 번도 더 참고 또 참는다. 몸에 사리가 나온다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회사에서나 일하는 도중에 받은 스트레스를 풀어내려 맛있는 디저트를 먹기도 하고 밖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하며 ‘으아~’ 온갖 설움을 꺼내어 토로해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마음껏 즐기지도 못하는 날이 되었다. 그래도 집에서 맥주 한 캔 꺼내어 책을 읽으며 홀짝거리고 있으니 나쁘지만은 않다.




결혼 전에는 혼자 살았기 때문인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가 있었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인 직장인이었지만, 그래도 집에서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으며 내 의지대로 내 것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이 상황이 좋았다. 지금은 갖기 힘든 시간인 새벽시간, 회사 다닐 때 20분이든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 책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나를 잘 다스리고 지켜내야 집 밖의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내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조용한 새벽에 나를 지키는 독서를 했었다.



다산은 진정한 신독이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스스로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신중하게 다듬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 조윤제 지음



다산 정약용은 오랜 유배생활동안 고난의 시기를 감내하고자 송나라 학자인 진덕수의 책, <심경>을 읽으며 마음 다스리고 마음공부를 완성하려 했다고 한다. 육퇴를 하고 밤에 만난 책의 문장은 오래전 나의 회사 다닐 적 시절의 모습을 상기시켜 주고 흔들어 놓았다. 집 밖의 생활을 하지 않아도 집 안에서 육아를 하고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잘 다스리고, 마음을 안정화 시켜야 육아도 잘 할 수 있었다. 밤이 되면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리고 나빴던 순간을 다시 드러내어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내가 조금 더 참았으면 어땠을까, 아이를 혼내지 않아도 되었을 상황인데 욱하는 마음에 아이를 다그쳐서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많았다. 나를 돌보고 다듬는다는 것은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것만은 아니었다. 육아에서의 내 모습에도 분명 해당되었다. 책을 읽다가 잠시 덮고, 부끄러웠던 내 모습을 반추하고 있는 이 모습이 소중하고도 필요했었다.




어디선가 본 적 있었던 글귀가 떠올랐다. ‘엄마 마음부터 돌보자’ 라는 말, 그 말의 의미를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내 의도대로 되지 않는 육아 앞에서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아이와 남편에게 뭉친 화를 쏟아 내기 전에 엄마인 내 마음을 돌보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라는 것, 이제야 나는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나부터 잘 다스려야 감정마비인 상태를 깨버리고, 아이의 기특하고도 예쁜 모습을 가장 먼저 볼 수 있고 또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를 안아줄 수 있었다. 온종일 아이와 함께하며 아이의 감정과 아이의 행동이 우선이었기에 어쩌면 나는 아이에게 끌려 다니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짜증과 칭얼댐으로 짙어진 감정마비 상태가 풀리고 육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깜깜해진 밤에 책을 읽고 글 쓰던 중에 아이는 온 집이 떠나갈 정도로 정신없이 울어댄다. 아이 아빠가 달래지도 못할 정도로 울고 있어, 나는 아이에게로 갔다. 책 읽고 글 쓰는 조용하고소중한 나만의 시간이었는데, 아이의 울음과 함께 와장창 깨졌다. 역시나 나를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은 육아맘에겐 잘 오지 않는다.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달래고 아이를 달려보려 한다. 왜 이렇게 자지러지게 우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무서운 꿈을 꾸었구나’, ‘많이 크려고 아픈가보다’ 아이에게 속삭이며 꼭 안아주었다. 내일이 되면 책의 내용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머리 뚜껑열리며 욱하면서도 꾹꾹 참아보려 하는 나로 돌아갈지도 모르지만 괜찮다. 다시 책 읽고 마음 다스리면 된다. 책이 육아맘을 달래고 깨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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