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일 입덧이 끝나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초여름부터 시작된 입덧, 푹푹 찌는 무더위와 함께 나를 많이도 괴롭혔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서 퇴사를 했고 집에서 본능에 충실한 생활을 했었다. 살면서 이렇게 구역질을 많이 해 본적도 없을 것이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나 고생스러웠단 말이 절로 나온다.
이 죽일 입덧. 처음으로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로 아기집을 확인하고 난 후 병원을 나온 후부터 시작이 되었다. 5개월 가까이 노란 신물이 올라 올 때까지 꺽꺽 거리며 토하고 또 토했다. 한 여름의 무더위가 끝나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니 내 입덧이 끝나가고 있었다. 구역질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해서 아기 몸무게가 늘지 않을까, 너무 예민한 내 성격이 아이에게 모두 다 전달이 될 까봐, 병원 갈 때마다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미식거림이 덜 올라오니 이런 걱정들과도 점차 안녕을 고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내 일상은 참 단순했다. 아침에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고 냉장고로 달려가 방울토마토를 한웅큼 집어 먹었다. 냉장고 냄새를 피해서, 출근 전 남편이 차려준 밥을 먹고 앉아 있거나 반 쯤 누워 있었다. 점심이 되면 지갑을 가지고 집 밖으로 나와 무언가를 사 먹는다. 그리고 잠시 걸어 다니다가 집에 들어와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잠시 잠들기도 했다. 입덧 때문에 밥만 잘 먹어도 다행이지만 무료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좋아해서 매일같이 읽던 책도 읽을 수가 없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활자들은 날아다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책과 처음으로 단절되었던 날이었다.
시간이 점차 지나 입덧이 끝나가니, 나는 시간부자가 되어 있었다. 회사를 가지 않으니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내가 쓸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난 무엇을 할까, 생각에 빠졌다. 아이를 가졌으니 좋은 감정과 좋은 나의 행동들이 아이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태교를 위한 뭔가를 해야 싶었다. 태교를 검색하면 수많은 태교 방법이 나온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든가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는 바느질을 한다든가, 하지만 나에겐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하루 종일 음악을 틀어놓고 살고 있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자주 듣고 있었다. 또 아기 손 싸개 바느질 키트를 사서 해 보기도 했다. 평소에 바느질하길 귀찮아하고 싫어해서 미루다가 한 참 뒤에 꼭 해야 할 때 하곤 했는데, 역시나 바느질은 나와 맞지 않았다. 태교를 위한 바느질이지만 내 급한 성질을 다듬기엔 역부족이고 오히려 답답해서 성질을 돋우고 있었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자! 좋아하는 걸 하면 내가 느끼는 기쁨, 행복이 아기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을까. 오랜만에 책장 앞에 서서 책을 꺼내 들었다. 무슨 책을 읽을지 잘 모를 때는 읽었던 책 중에 좋아했던 책을 다시 읽으면 된다. 책이 두껍거나 모두 다 읽기도 힘들 땐 플래그를 붙여 놓았던 부분만 읽기도 했다. 날 관통하고 휩쓸고 지나간 문장들이기에 이것만 읽어도 충분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많은 시간을 책읽기에 쏟아 부을 수가 있다니! 그토록 원하고 또 원하던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더 좋은 것은 ‘커피’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입덧이 시작된 후부터는 커피를 전혀 먹지 못했다. 매일 좋아서 마시는 커핀데도 울렁거려서 먹을 수 없었는데, 입덧도 끝나니 커피가 먹고 싶어졌다. 집에서 디카페인 한 잔 내리고 빵과 함께 먹으며 책 읽는 하루가 행복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토네이도 급으로 강한 회오리바람 같은 입덧이 날 덮쳐 상당히 고단하게 했다. 몸의 변화를 충분히 느껴가며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게 지냈다. 살면서 이렇게 단순하게 지냈던 적이 있었을까. 입덧도 이제 내 몸에서 나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 행복으로 하루를 가득 채우면 되었다. 이 죽일 입덧이 끝나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이고 책이 날 반갑게 기다리고 있었다. 뱃속 아이가 내게 준 첫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