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아책방 Aug 28. 2020

취미부자, 이제 관심없습니다

 오로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향해 읽는다 



출산 전에는 아무리 회사일로 바쁘다고 해도 출근 전 새벽과 퇴근한 후의 밤 시간을 내 의지로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 때는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렸을지는 몰라도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하려 노력했었다. 취미 부자였던 날들이었다.



예전에는 베스트 샐러가 된 책, 주변에서 추천하는 책 그리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책, 모두 다 읽고 싶어서 재빠르게 책을 읽어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해서 자기계발을 위한 독서도 많이 하고, 닥치는 대로 마구 읽기도 했다. 그렇게 사서 모은 책을 읽지 않고 오랜 시간 방치해 두기도 하고, 읽어낸다고 한들 나에게 아무 감흥이 없는 책도 많았다. 또 책을 통해 내 취미생활을 발전시키려 했던 날도 수없이 많았다. 한 때는 베이킹에 빠져서 퇴근하고 늦은 시간까지 머핀이나 쿠키를 구웠다. 인터넷 레시피 보며 따라하다가 일관성이 없는 ‘떠돌이 레시피’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베이킹 서적을 여러 권 구매한 적도 제법 있었다. 어떤 날은 해 보지도 않은 캔들을 만들어보겠다고 책부터 사서 보다가 실제로 만들어보지도 않은 채 책만 남기고 끝난 적도 있었다. 자꾸만 뻗어가는 나의 관심사를 충당하기 위해 나는 많은 책을 사 놓고 그 책을 읽든, 행동으로 무언가를 해도 헛헛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던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이 올 때마다 나는 다른 책을 읽거나, 다른 분야에 관심을 돌려보기도 했었다.



아이를 가지고 낳고 키우며 엄마로 살다보니 이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더 한정적이었다. 내가 예전에 즐겼던 취미가 무엇이 있었나? 떠올리지 않으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외출이 힘드니 밖에서 할 수 있는 것 말고, 집 안에서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나의 관심사는 점점 좁아지고 집중되어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제한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 변화였다. 적당히 하면서 즐겼던 취미는 나와 멀어져갔다. 책장 정리까지 하고 나니 깊은 울림을 주지 않았던 것을 잔가지 쳐 내듯이 치워내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 책이나 읽을 수 없다. 한 권을 읽어도 나에게 맞는 책, 내가 원하는 질의 정보와 충분한 감동, 감흥을 얻고 싶었다. 내용이 좋고 배울 것도 많지만 내 상황과는 무관한 책이어도 지금의 상황에 빗대어 읽어가고 있다. 또 앞으로 내가 되고 싶은 모습,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얼마 전에 출판사 마음산책의 20주년 기념으로 나온 책 <스무 해의 폴짝>을 샀다. 단지 좋아하는 작가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샀는데, 두툼한 두께에 놀라고 말았다. 어서 읽고 싶은 마음과 내용이 많아서 오래 읽겠다 싶은 마음을 동시에 품고 가장 처음에 나오는 평론가 신형철의 인터뷰를 읽었다. 책을 편지 오래되지 않아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날 설레게 했던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나이가 먹다 보니 관심사가 점점 좁아져요. 한 가지 주제도 제대로 알기는 정말 어렵다는 낭패감을 깊이 느끼고요. 저에게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만 잘 말해보고 싶다, 작품이 요구하는 수준까지가 아니라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져요. (p.28)

<스무 해의 폴짝> 신형철 인터뷰, 마음산책



<스무 해의 폴짝>은 마음산책 20주년 기념으로 정은숙 대표가 문학 작가들과 함께 인터뷰를 하고 엮은 책이다. 20년 동안 마음산책에서 출판한 책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떤 분과 만나 인터뷰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짐작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읽을 책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떤 날은 읽고 싶은 책이 없어서 계속 책장을 기웃거리고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도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아무 책이나 읽고 싶지 않기에 읽을 책도 대강 고르지 않는다. 그렇게 정성껏 고르고 난 책을 읽으며 마음을 흔들어 놓는 문장을 발견하면 뿌듯하다.



나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기에 신중하게 책을 고르고, 더욱 집중해서 읽어나가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고 아이와 집안일에 매달려 집콕 중인 육아맘이란 이름표를 달교 있는 내 모습이 나는 밉지 않다. 여유시간이 많을지언정 산만했던 관심사가 이제는 오로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향해 방향이 설정되어 있다. 잡다한 관심사와 취미는 필요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며 살면 그만이었다. 요즘 난 진심으로 책을 대하고 깊게 읽어나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취미부자, 이제 나에게는 아무 의미 없다. 책 읽으며 나를 더 알아가는 이 쾌감,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즐겁다.

이전 01화 아기 잘 때 자지, 왜 책 읽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