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자전거 값 27만 원 때문에 법원에서 난 친구를 잃었다. 돈 문제 때문에 친구를 잃어본 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다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일이 커지면서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고작 자전거 때문에 꼭 법적인 과정을 밟아야 했을까.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노력을 할 생각은 아예 없었던 걸까.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기는 했을까. 소송이 종결되고 나서도 오만 가지 생각을 한동안 했었다.
그 이후로 친구를 사귈 수가 없었다. 누구와 친해져도 돈 문제가 엮이면 가차 없이 나를 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기존에 알고 지내는 친구들도 소송으로 돈을 받아내려고 했던 그 친구와 별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 의심했다. 겉으로는 친한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 이해관계를 열심히 따질 것이라 짐작했다. 툭하면 인간관계는 다 부질없다고 한숨을 쉬곤 했다. 소송을 겪고나서부터 나는 완전하게 감정의 감옥을 세우게 되었고, 그 안에서 단절된 상태로 숨어 지내길 선택했다.
자전거를 도둑맞은 것이, 통보는 했었지만, 자물쇠를 안 채우고 간 내 잘못이라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당황했다. 내가 자전거를 놓고 가고, 오래된 기간이 지난 후에 연락이 왔었다. 갑자기, 거치대에 있던 자전거를 도둑맞았는데, 내가 잘못한 일이기 때문에 배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새 자전거를 사야 한다면서 그 값을 내가 배상하라고 했다. 친구를 잃기 싫었던 나는 순순히 알겠다고 해버렸다. 잃어버린 헌 자전거 값과 비슷한 액수를 달라고 할 줄 알았다. 친구 사이에 최소한의 정과 예의는 있을 줄 알았다.
근데 그 친구가 달라고 한 돈은 너무 많았다. 중고가로 10만 원도 안될 것 같은 오래된 헌 자전거를 도둑맞은 건데, 새 자전거 값으로 55만 원을 달라고 했으니 어이가 없었다. 나는 일단 이의제기를 했다.
자물쇠를 안 채우고 간 지 오래되었는데 지금 와서 잃어버렸다는 것은 네가 그동안 방치한 잘못도 있는 것 아니냐, 내 잘못이라고 해도 헌 자전거 값을 물어주면 되는 거지 왜 새 자전거 값을 물어달라고 하는 거냐 등등, 말이 안 되는 부분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친구는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말만 늘어놨다.
합리적인 값을 달라고 했으면 배상하려고 했다. 사실 만약에 새 자전거를 사도, 다 쓰러져 가던 헌 자전거 값 정도만 달라고 할 것이라 믿었다. 난 그 친구와 친하다고 생각했고, 돈 문제로 친구를 잃기 싫었다. 달라는 대로 주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가 제시한 금액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
자전거 일주 때 길 잃고 헤매도, 알아서 자기 집까지 찾아오라고 하면서 매정하게 대했던 것이 생각났다. 같이 자전거를 타기로 해놓고 먼저 가버린 것도 생각났다. 나에 대한 과거의 태도가 생각나서 화가 났다. 그냥 당하고만 있기는 싫어졌다. 내가 얼마나 호구로 보였으면 그런 많은 액수를 달라고 말했을까. 그 친구의 눈에는 내가 인간관계에 절절매어서, 해 달라고 하면 뭐든지 선뜻해주는 바보로 보이는 건가 싶었다.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단호하게 못 준다고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정당한 방법으로 받아내겠다고 했고,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몇 달 후, 특별송달 우편이 내 앞으로 도착했다.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우편에 고개를 갸우뚱했고, 집배원도 같이 갸우뚱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편을 자세히 봤다. 전면에 'OO지방법원', 편지봉투의 빨간색 입구에는 '민사과'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간담이 서늘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안에는 민사소송 소장과 증거자료, 소송 안내자료 등이 있었다. 소장을 읽어보고는 경악했다. 그 정당한 방법이 민사소송일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소송을 제기하고 몇 달 만에 나에게 도착했던 것이다. 날짜를 보니, 대화로 해결이 되지 않자 바로 소송을 건 것으로 보였다. 소장에는 전에 했던 주장이 그대로 적혀있었고, 요구하는 금액은 27만 5천 원이었다. 증거자료에는 새 자전거 영수증 캡처 이미지와 물품대금과 관련된 메시지 캡처 이미지가 있었다. 전후 사정을 다 빼놓고 본인한테 유리한 내용만 증거로 냈었다.
열이 받았지만, 한편으로 당황했던 나는 민사소송에 대해 알아봤다. 적극적으로 항의하기 위해 답변서를 제출했고, 법률상담을 받기도 했다. 정해진 재판 날짜에 참석하지 않으면 원고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재판에 꼭 참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정해진 기일이 되었고, 난 법원에 들어갔다. 법원의 공기는 참 무거웠다. 사람들의 침울한 표정, 어딘가 지쳐 보이는 표정, 엘리베이터 안에서 의뢰인이 변호사를 쥐 잡듯이 잡는 모습 등을 법정으로 향하면서 보았다. 어두운 분위기에 나도 물드는 것만 같았다.
예정된 법정 앞에 다다르니 바깥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법정 안에도 사람이 꽉 차 있었고, 계속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일 앞쪽에는 피곤한 표정의 판사가 본인 양옆으로 수없이 쌓여있는 서류들을 검토하며 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판사 앞에는 법원직 공무원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키보드로 열심히 치고 있었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마음이 푹 가라앉았다.
법정 입구 옆 모니터에 시간별로 예정된 재판의 명단이 있었다. 그 명단에 내 이름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법정 내 방청석에 앉아 기다렸다. 재판은 원고와 피고가 지정된 시간까지 도착해 기다렸다가, 판사가 사건번호를 부르며 호명하면 진행되는 시스템이었다.
참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통신비 문제로 통신사와 다투기도 했고, 대금 지불 문제로 친구와 다투기도 했다. 변호사가 대신 참석한 회사와 회사 간 다툼도 있었다. 다른 재판을 지켜보며 기다리다, 내 차례가 왔다.
사건번호 ~~, 원고 OOO 피고 OOO, 자리에 앉아주세요.
내가 나를 가치 없다고 여기면, 남들은 당연히 나를 가치 없다고 여긴다
내가 가장 의문이었던 것은 단 몇십 만 원에 친구관계를 포기할 만큼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었냐는 것이었다. 사건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나와의 관계가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과연 걱정했을까 궁금했다. 이에 대해서 알 수는 없었지만, 내 생각에는 친구관계를 이어가는 것보다 돈 몇 푼을 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그 친구는 생각했던 것 같다.
친구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길 수는 있다. 다만, 꼭 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필요가 있었는가 싶었다. 딱 한 번만이라도 더 대화를 해보고, 서로 양보를 했으면 더 좋게 마무리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누구 하나 상처 받지 않았을 것이고, 계속해서 친구관계가 이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돈을 받아내야겠다는 고집이 강했던 것 같다.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대로 소송을 통해 강제로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 입장에서는 어려울 것이 없는 방법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심적으로 어려운 과정이었다. 재판이 열리기까지 반년 넘는 기간이 소요되었고, 나는 정말 큰 상처를 받았다. 어린 나이에, 친했다고 생각하고 믿었던 친구에게 소송을 당했다는 것이 너무 창피했고,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친구로서 매력이 없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더욱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자전거 일주를 떠나서 나에게 소홀했던 것도 서러웠고, 친구관계에 대한 염려나 배려 없이 바로 소송으로 자전거 값을 받아 내려고 했던 것도 서러웠다. 서러운 감정에 인간관계에 대한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대체 왜 나는 호구로 보였을까, 왜 나는 가치 없는 사람으로 남들이 판단하는가 등의 의문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예전부터 늘 친구에게 배려받는 사람이 아닌, 배려해주는 사람이었다.항상 상대방에게 맞춰주고 배려해줘야만 친구관계가 유지될 것이라 믿고 살았다. 내가 배려해준 만큼 상대방은 나에게 배려해주지 않았는데, 나는 항상 타인에게 매달렸다. 그래야 사람들이 내 곁에 있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태도 때문에 나는 호구로 보이면서, 가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남에게 항상 먼저 손을 내밀었고, 배려해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 옆에 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내가 먼저 나를 매력 없고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여겼고, 다른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선 먼저 다가가고, 배려해주고, 잘해줘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나에게 내리는 평가가 정말 낮았던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존감이 낮았던 것이다.
내가 감정의 감옥 속에서 지내게 된 것은 그렇게 살아왔던 나 자신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타인에게만 집중하고 배려하며 살았다.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적어서 늘 외로웠다. 그래서 나 자신을 낮춰야 타인이 나를 좋아해 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정작 내 자존감은 챙기지 않고 소홀했다.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도 사랑받을 만하고 배려받을 만한 사람이란 것을 잊고 살았다. 이전까지는 모르고 살았다가, 이 일을 겪으며 냉정하게 직시하게 되었다. 난 정말 한심하게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 실망감에 나 자신이 싫어졌고, 사람 자체가 싫어졌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은 만큼 베풀 줄 모르는 존재라고 치부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존재라고 믿으며 타인을 내 마음속에 들이지 않았다.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기 싫었고,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단지, 혼자서 상처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격앙되고 우울했던 감정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소송을 당해 피고 석에 앉게 된 것도 힘들었지만, 재판이 끝난 후에 했던 그 친구의 말이 더욱 날 힘들게 했다. 그 말 때문에 타인과 단절하여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더욱 강해졌고, 감정의 감옥의 문을 굳게 닫아야겠다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