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계속되면 호구인 줄 안다

친구를 잃는 법적인 과정 (1)

by 빨간모자

꼭 그렇게 법원에 가야만 속이 후련했을까

과 내에서 따돌림을 받은 것도 모자라, 얼마 안 돼서 또 큰 일을 당해버렸다. 20대에 법원에 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 때문에 난 민사재판 피고 석에 앉아볼 수 있었다.


내가 윗사람에게만 미움을 샀었다면, 지금보다 더욱 개방적이고 밝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친했던 친구에게도 큰 상처를 받아버렸다. 그 일 때문에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닫아버리게 되었다. 회피하고 싶은 사람의 범위가 더욱 넓어졌고, 거기에 마음의 상처도 컸었기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되었다.




수많은 선배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쓴소리를 모른 채하며 첫 학기를 겨우 보내고, 방학이 찾아왔다. 그나마 나와 어울렸던 몇몇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로 짧은 여행을 떠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멘탈이 바사삭 무너진 내가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다.


근데 난 자전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탈 줄도 몰랐다. 네발 자전거를 타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냥 안 간다고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심적으로 힘들어서 사람이 너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안 간다고 하면 왠지 약속 자체가 파투 날 것 같았다. 나 하나 희생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았다. 약속을 주선한 친구가 집에 중고 자전거가 있으니 그거라도 타라고 했다. 덥석 승낙해버렸다.


왕복 40~50km 정도 되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일주하려면 일단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 했다. 약속 당일 날 일찍 가서 자전거 타는 연습을 했다. 아침 일찍, 혼자 비틀비틀 낑낑 대며 연습했다. 출발시간 직전에 어느 정도 탈 줄 알게 되었다.


준비를 다 끝내고 출발했는데, 내 자전거는 안 나가도 너무 안 나갔다. 친구들은 다 멀쩡한 자전거였는데, 난 10년 전에나 탔을 법한 낡은 자전거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관리도 참 오랫동안 안 한 것 같았다.


내 속도가 너무 느려 답답했는지, 친구들은 다 자기들끼리 야속하게 먼저 가버렸다. 다 같이 자전거를 타는 걸 상상했었지만, 현실은 나 혼자 쓸쓸하게 타게 돼버렸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지리도 잘 몰랐는데, 그냥 길 따라 쭉 가면 된다고만 말해주고 사라졌다.


20여 km는 되는 시골길과 자전거 도로를 낡아서 페달도 잘 안 굴려지는 자전거를 타고 정말 힘들게 갔다. 자전거 일주 루트의 종점까지는 어영부영 잘 갔다. 근데 문제는 종점에서 돌아가는 길에 발생했다. 혼자 가던 내가 어느 순간 길을 잘못 들어서 길을 잃어버렸다. 전과는 다른 길이 계속 펼쳐졌고, 나는 자전거를 빌려준 친구에게 길을 잘못 들어온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철했다. 갔던 길 다시 가면 되는데 왜 못 오냐는 말만 할 뿐, 길을 찾아주려는 노력은 없었다. 적어도 네비 찍고 오라는 말은 해줄 줄 알았는데, 그런 걱정하는 말 조차 없었다. 난 그냥 알아서 찾아가겠다고 해버렸다.


지도 앱을 봐가며 낯선 시골길을 헤매었다. 중간중간 넘어지고 논두렁을 구르기도 했다. 흙탕물을 못 피해 베이지색 바지에 흙이 튀기도 했다. 긴장한 채로 뜨거운 햇빛 밑에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느라 온몸이 땀 투성이었다. 너무 목이 말라 처음 보는 마을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다. 계속 길을 찾으며 낯선 시골길만 돌고 도니, 조금 무섭기도 했다.


몇 시간을 헤매다 겨우 친구 집 앞에 도착했다. 몰골은 개판이었고, 자전거에 매달고 다녔던 자물쇠도 잃어버렸다. 아마 논두렁에서 굴렀을 때 떨군 것 같았다. 집에 가려면, 자전거 거치대에 탔던 자전거를 다시 놓아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본래 성격 대로라면 자물쇠를 하나 사서 채워놓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불친절하고, 배려심 없었던 친구가 너무 꼴 보기 싫었다. 그리고 점심도 굶어가면서 혼자 60km 정도를 반나절 동안 헤매어 너무 힘들었었다. 그래서 CCTV도 있겠다, 자물쇠 없이 자전거를 거치대에 주차해놓고 이 사실을 친구에게 알렸다. 그리고는 집으로 가버렸다. 흙에, 풀에 잔뜩 더러워진 옷을 입고 버스를 타고 가, 결국 힘겹게 집에 도착했다.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자전거를 도둑맞았다며, 자물쇠를 안 채워 놓고 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계속 Give하면 언젠간 Take할 것이라는 믿음이 등에 칼을 꽂다

난 참 호구였다. 친구들 한번 만나겠다고 인터넷으로 자전거를 새로 샀었다. 계속 불량품이 와, 교환하고 환불하기까지 했다. 자전거가 없으니까 자기들끼리 가라고 했으면 됐었는데, 거지 같은 낡은 자전거를 타면 된다고 하면서 억지로 만나려 했다. 탈 줄도 모르는 자전거를 타겠다고 일찍 도착해서 연습까지 했다. 내 자존심과 편의를 희생하면서 친구들에게 맞춰줬다.


내 진심을 알아달라는 의미에서, 힘드니까 내 옆에 있어달라는 의미에서 난 그렇게 노력한 건데 철저히 무시당했다. 진실된 마음으로 친구를 대했지만, 돌아오는 건 냉대와 이기주의였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어버렸다.


사람은 자신을 진정으로 배려하고 좋아해 주는 사람을 호구 취급하는 버릇이 있다.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진심을 다하면 상대방도 그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대다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도리어 만만하게 바라보고, 본인이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좋아해 줬으니까 그렇게 해도 본인을 계속 좋아해 줄 것이라 단순하게 믿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솟아 나오는 듯하다. 정말 오만한 태도이다.


친구에게서 본 그 오만함에 난 더더욱 사람과 단절하고 싶어 졌었다. 내가 진심을 다해도,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것이란 의심이 강해졌다. 내가 노력해도 다른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간관계에 정말 깊은 회의감을 느꼈었다.


일부의 인간 부류에게 쌓아두었던 마음의 벽이 점점 많아졌다. 친구도 믿을 만한 존재가 못된다는 생각과 노력하더라도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믿음까지 겹쳐졌다. 이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마음의 벽을 쌓기 시작했다. 상처 받은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의 벽이, 마음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나를 둘러쌌다. 마음의 벽이 사방팔방 쌓여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진 것 같았다. 마치 회색 빛깔 콘크리트 감옥 같았다. 바깥을 빼꼼 살펴만 볼 수 있는 정말 작은 창 외에는 벽으로 꽉꽉 막혀있는 감옥 말이다.


이때부터 감정의 감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아예 사람 만나기를 피했다. 특히, 예의 없고 타인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또 만날까 봐 두려웠다. 그런 사람을 만났다가 또 상처 받으면, 앞으로 영원히 혼자만의 공간에서만 지내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타인이 참 무서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감정의 감옥은 더욱 견고해졌는데, 다음에 이어지는 사건을 겪고 나서 완전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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